주제로 본 한국사형정풍속도(刑政風俗圖)를 통해 본 조선의 형정(刑政)4. 형정풍속도의 내용과 특징2) 고문의 내용과 특징

바. 그 밖의 혹형

앞에서 살펴본 신장, 곤장, 압슬, 주리, 낙형 등은 비교적 알려진 고문으로 행형의 규정이 마련되어 있어 지나친 남용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다. 문제는 법적 근거 없이 사적으로 은밀히 진행된 고문이 더욱 폭력적이고 가혹했다는 것이다. 혹형(酷刑)은 종류와 방식이 무척 다양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국왕의 명령을 특례로 규정해 수록해 둔 『형전사목(刑典事目)』의 「남형금지사목」에 소개된 몇 가지 혹형을 소개해 보면 다음과 같다.

〔사료 4-2-6-01〕

  • 1) 도적을 다스릴 때 나무집게로 죄인의 요해처1)를 집어 자백받는 고문
  • 2) 곤장의 모서리로 사람의 정강이 또는 발꿈치를 때리는 고문
  • 3) 사람을 형판에 결박하고 곤장의 양단으로 엉덩이에 마찰을 하여 피부가 벗겨지게 하는 고문
  • 4) 사람을 결박하여 거꾸로 달고 콧구멍에 잿물을 주입하는 고문
  • 5) 사람의 족경(足脛)을 거핵기(去核機)2)에 넣고 보라목(甫羅木)3)을 끼우기도 하여 심한 자는 노끈으로 두 발의 큰 발가락을 묶고 삼능목(三稜木)4)을 끼워 거꾸로 달아 그 노끈을 치는 고문

『형전사목(刑典事目)』 「남형금지사목」

첫 번째 사례는 죄인의 국부를 나무집게로 집어 고통을 주는 일종의 성고문이었다. 잔인하고 악독함이 주뢰보다 심했다고 하니 그 치욕과 고통이 가히 상상을 뛰어넘었을 것이다. 두 번째 사례는 곤장형의 변칙적인 사례인데, 곤장의 각진 모서리를 이용해 볼기보다 통증을 많이 느끼는 정강이와 발뒤꿈치를 가격하여 고통을 극대화한 고문이었다. 세 번째 사례 또한 곤장형의 변형 사례로 죄수의 볼기를 미리 곤장 양면으로 문질러 생채기를 낸 후, 그 부위를 때려 고통의 강도를 높인 고문이었다. 네 번째 사례는 사람을 거꾸로 매달아 콧구멍에 잿물을 주입하는 고문으로 김윤보의 〈도42〉 〈비공입회수(鼻孔入灰水)〉와 방식과 내용이 일치한다.

거꾸로 매달기와 콧구멍에 잿물 넣기는 어느 것 하나만이라도 참기 힘든 참혹한 고통인데 하물며 두 개를 동시에 사용하면 아무리 강한 인내력을 가진 사람도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다섯 번째 사례는 거핵기, 보라목, 노끈, 삼능목 등 다양하고 생소한 고문 도구가 단계별로 추가되면서 복잡한 양상을 보인다. 그러나 그 원리가 정강이와 엄지발가락을 비틀거나 때리는 것으로 보아 변형된 주리형 또는 난장이었다.

앞서 소개한 고문과 또 다른 몇 가지 혹형이 형정풍속도에서 추가로 확인된다. 〈도43〉와 〈도44〉은 ‘학무(鶴舞)’라는 형벌인데 죄인의 형벌 받는 모습이 마치 학이 춤추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에서 유래한 고문 이름이다. 고문은 죄수의 팔을 뒤로 묶은 후 매달아 어깨에 고통을 가하는 동시에 늘어뜨린 발을 회초리로 때려 이중의 고통을 주는 형벌이다. 이 고문도 매달기와 때리기가 동시에 가해져 이중의 고통을 느끼게 하는 혹형의 형태이다.

김화진의 『한국의 풍토와 인물』에 따르면 포도청에서 죄인을 고문할 때 포교가 주로 은어를 사용했다고 하는데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사료 4-2-6-02〕

  • ‘밥을 내어라’ - 고문을 하라
  • ‘모양을 내라’ - 잔뜩 묶어라
  • ‘거문고를 타라’ - 죄인의 발목을 나무, 돌 틈에 잡아매라
  • ‘대장으로 모시어라’ - 죄인의 목에 칼을 채워라
  • ‘학춤을 추게 하라’ - 어깨를 뒤로 묶어 매달고 회초리로 발을 때려라

위와 같이 다양한 고문 방식이 은밀히 진행되었고 위 그림과 일치하는 학춤의 고문도 포함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람을 매다는 고문이 실제 어느 정도 시행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많지 않다. 조선 후기 일부 탐학한 관리가 가렴주구(苛斂誅求)를 통해 사적인 부를 축재하기 위해 다른 고문과 함께 사용되었던 사례가 보이기도 한다. 예컨대 1827년(순조 27) 초산 부사 서만수는 백성들로부터 산삼을 징수하기 위해 ‘몽둥이로 치고, 회초리 때리고, 주리 틀고, 묶어 매다는’ 등 온갖 음형(淫刑)을 동원해 가렴주구를 일삼았다. 결국 그는 의금부 조사 결과 2년 동안의 죄상이 착복, 남형, 살인 등으로 밝혀졌고, 곧 추자도로 유배되었다가 그곳에서 물고(物故)되었다.

다음으로 〈도45〉 〈안피지쇄수이살(顔被紙灑水而殺)〉은 죄수의 얼굴에 종이를 붙이고, 물을 뿌려 호흡을 방해하는 일종의 물고문이다. 그림 속에서 포졸이 입에 머금었던 물을 죄수의 얼굴에 뿜는 장면이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 혹형이 물고문을 통해 종국에는 죄수를 죽이는 데 그 목적이 있음을 그림의 제목이 밝히고 있다.

난장(亂杖)의 형태는 김준근의 〈도46〉 〈금부난장(禁府亂杖)〉, 〈도47〉 〈피점난장타살(被苫亂杖打殺)〉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심재우의 『네 죄를 고하라』에 의하면 난장은 두 가지 고문 방식을 혼용하여 쓰는 말인데, 하나는 죄수의 몸을 집단적으로 무차별하게 때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죄수의 발바닥을 때리는 것이었다. 〈도46〉, 〈도47〉 집단 구타의 형태인 난장을 묘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도46〉은 의금부 나장 8명이 죄인을 중앙에 두고 신장을 휘두르며 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정강이를 가격하는 모습이다. 8명이 동시에 신장을 들고 도는 모습 자체만으로 죄수에게는 위협적이어서 실토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도47〉도 포졸 3명이 가마니로 덮은 죄수에게 동시에 몽둥이질을 하는 모습이다. 이는 마을의 규율을 어긴 사람을 동네 사람들이 뭇매를 가하는 ‘멍석말이’와 유사하다. 그림 속 포졸들이 치켜든 몽둥이 모양이 곤장과 신장처럼 매끄럽지 않고 거친 모양인 것으로 보아 비공식적인 고문이었으며, 이 또한 제목처럼 결국에는 난장을 쳐 살해하는 고문이었다. 〈도46〉과 〈도47〉은 같은 종류의 난장이었지만, 사용처에 따라 전자는 자백을 받아 내기 위한 것이었고, 후자는 살인을 위한 것으로 그 목적이 달랐음을 알 수 있다. 영조는 노년까지 일관되게 형정의 폐단을 줄이고자 노력하였는데, 1770년(영조 46) 참독한 난장으로 도적을 다스리는 형정은 조선 밖에 없다고 자책하며 그것을 폐지하였다.

1)인용자 : 국부
2)목화씨를 뽑아내는 기계
3)나무쐐기
4)세모가 난 나무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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