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 한국사Ⅲ 통일 신라와 발해의 발전④ 새 세상을 꿈꾸던 사람들

다. 견훤과 궁예, 새 주역으로 떠오르다

9 세기 후반에 이르러 신라 왕실이 직접 지배하는 지역은 겨우 신라의 동남부 일대에 지나지 않았다. 지방의 여러 지역에서 세력을 키운 많은 호족 세력들이 각기 독립적으로 지배를 하고 있었다. 후에는 이들 호족 세력들도 점차 몇 개의 강력한 정치 세력으로 통합되었다.

신라 군인으로서 서남해를 지키던 견훤은, 옛 백제 지역을 중심으로 신라 왕실에 대항한 세력으로서 성공하였다. 그는 900년에는 전라·충청 일대의 호족들을 통합하여‘후백제’를 건국하였다.

몰락한 농민들과 생활하던 궁예는, 스스로 미륵불임을 자처하며 고통받는 민중들에게 새 세계를 열어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는 폭발적인 농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한반도 중앙부의 호족들을 통합하여 ‘후고구려’를 세웠다(901).

통일 신라는 통일을 완수한 지 220여 년 만에, 백제와 고구려의 계승자를 자처하는 세력과 함께 후삼국으로 다시 분열되었다. 통일된 신라가 신분 계층과 지역의 차이를 완전히 해소하지 못한 것이 분열을 가져온 것이다.

인물탐구

장보고와 청해진

“나 일본 승려 엔닌, 청해진 대사 장보고 장군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대사의 돌보심이 아니었다면 어찌 그 험난한 바다를 건널 수 있었겠으며, 당나라에서의 수행이 가능했으오리까!”
일본의 승려로서, 당에 유학하였다가 귀국하여 일본 불교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던 엔닌의 일기 가운데 일부다. 장보고는 서남해 지역 출신으로 당에서 군인으로 성공한 다음, 서해를 무대로 한 국제 교역을 통해 신라의 발전에 큰 공을 세운 사람이다. 청해진은 그가 귀국한뒤 지금의 전라 남도 완도에 만든 해상 군사 기지였다.
당에서 무역에 종사하던 장보고는, 수많은 신라인들이 해적에 의해 끌려와 노예로 팔리는 것을 목격하고 귀국을 결심했다. 그리고 남해의 완도에 군사 기지인 청해진을 만들어 해적을 모두 제압하고, 신라를 중심으로 당과 일본을 연결하는 국제 무역을 주도하였다. 이 과정에서 신라인들의 해상 진출도 활발하였다.
당의 동쪽 연안에는 신라인들의 집단 거주지(신라방)가 많이 만들어졌다. 일본의 항구에는 신라의 무역선이 드나들었으며, 신라의 항구에 아라비아 상인들이 드나들기도 하였다. 장보고는 장군으로서 경제인으로서 국제 교역인으로서 당시 신라 사회를 국제화시키는 데 앞장선 인물이었다.
장보고는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명장으로서 국제 교역인으로서 숭배하고 있는 인물이다. 중국 산뚱 반도에 있는 적산법화원이란 절에서 장보고를 모시고 있으며, 일본에서도 신사를 짓고 신라명신으로 받들고 있다.
장보고의 활동 무대
후삼국으로의 분열(10세기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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