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 한국사Ⅴ 양반 중심의 조선 사회⑤ 일본 및 청나라와의 전쟁

나. 수군의 승리와 관군의 반격

육군의 패배와는 달리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의 수군은 부족한 장비를 가지고 있었지만 전술과 뛰어난 성능을 가진 거북선 8)으로 여러 해전에서 왜군을 격파하였다. 남해의 한산도에서는 쳐들어오는 왜군에게 물러가는 척하여 한산도의 지형과 바닷물, 암초 등을 교묘히 이용하여 적을 역습하여 대승하였다(한산대첩). 왜군은 서해를 통해 북상을 할 수 없었으며, 보급품을 제대로 전달할 수도 없었다.

각 지방에서는 유학자, 승려 등이 의병을 일으켜 큰 전과를 올렸다. 육지의 관군도 초기의 패배를 딛고 점차 반격을 하였다. 명나라 군사의 지원을 받은 조선군은 반격하여 평양을 되찾고 남하하였다. 권율 장군은 행주 산성에서 대승하여 왜군을 남쪽으로 몰아 냈고, 진주성에서는 치열한 전투 끝에 전라도로 진격하려던 왜군을 격파하였다. 승리가 어려워지자 왜군은 휴전을 제의하였다. 그러나 휴전 회담은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실패하였다. 왜군은 군비를 정비하여 다시 침공해 왔다(정유재란 1597).

왜군은 이순신이 지휘관에서 물러난 틈을 이용하여 조선의 수군을 격파하였으나, 육지에서는 조선 관군과 명군의 저지로 북상하지못하였다. 조선 수군이순신 장군이 다시 기용되면서 왜군을 크게 격파하였다. 목포 앞바다 울돌목(명량)에서는 암초와 바닷물 흐름을 이용하여 크게 이겨 왜군의 서해 진출을 차단하였다. 마침내 토요토미가 죽자 왜군은 철수하였다. 이 때 패퇴하는 왜군을 노량 앞바다에서 또 크게 무찔렀으나, 이순신 장군은 조선을 위기에서 건지고 끝내 전사하고 말았다. “적에게 내가 죽었다고 하지 말라.”라는 마지막 유언은 조선을 끝까지 지키려는 애국심의 표현이었다. 이로써 7년에 걸친 전쟁이 막을 내렸다.

한국의 문화 유산

도자기 기술자를 강제로 끌고 가다

일본의 사쓰마 현에는 400 년 동안 도자기를 굽는 일을 하고 있는 심수관 가문이 있다. 심수관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 끌려온 조선의 도자기 기술자 심당길의 14대손이다. 심당길의 집안은 일본에 끌려 와서 대대로 도자기를 구우면서도 한국성을 지키고 한국말을 하고, 한국 풍속을 유지하였다. 12대손부터는 ‘심수관’이라는 이름을 이어서 쓰고 있다.
당시 일본인들은 도자기가 없어 나무 그릇을 사용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은 조선의 고급 도자기나 막사발 등을 닥치는 대로 약탈하였다. 조선의 막사발은 일본에서는 정치 지도자들이 고급 찻잔9)으로 사용할 만큼, 당시 조선의 도자기는 첨단 기술로 만들어졌다. 이 때문에 일본군 장수들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많은 도공을 일본으로 납치해 갔다. 일본은 조선 도공이 구운 도자기를 자신들이 사용하기도 하고, 팔아서 많은 이익을 남기기도하였다. 납치된 조선 도공들은 일본의 도자기 기술을 발달시키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이 때문에 일본 여러 곳에는 조선 도공의 신위를 모시는 도자기 신사가 많이세워졌다.
일본의 도자기 신사(아이치현) 조선인 도공을 모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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