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 한국사Ⅴ 양반 중심의 조선 사회⑤ 일본 및 청나라와의 전쟁

라. 광해군의 복구 정책과 중립 외교

일본과의 전쟁이 끝나고, 선조의 뒤를 이어 즉위한 광해군은 전쟁의 상처를 수습하고, 피해를 복구하기에 힘썼다. 농업 생산력을 높이고, 농지 조사 사업을 실시하여 재정 수입을 늘렸으며, 국방력을 강화하였다.

그 때 강성해지고 있던 후금의 위협을 받은 명이 임진왜란 때 도와 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원병을 요구하였다. 광해군은 어쩔 수 없이 원병을 파병하였으나, 후금과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기 위해 중립 정책을 택함으로써, 결국 전쟁에 휘말리지 않게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광해군의 정책은 일부 사림 세력과 충돌을 빚었다. 더구나 광해군선조의 왕비였던 인목대비와 갈등을 빚고 있었다. 광해군은 인목대비의 아들인 영창 대군을 죽이고, 인목대비를 궁궐에 가두어 버렸다.

사림 세력은 광해군의 이러한 패륜 행위와 명에 대해 의리를 지키지 않은 것을 비난하였다. 결국 서인 세력은 정변을 일으켜 광해군을 몰아 내고 새롭게 인조를 왕위에 앉혔다(인조반정 1623).

창덕궁 (조선 후기의 정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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