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남한산성에서 청의 침공에 맞서다 - 병자호란
인조와 서인 정권은 명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후금을 멀리하는 정책을 뚜렷이 하였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후금은 조선을 1 차 침공하여 적대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돌아갔다(정묘호란1627).
세력이 커진 후금은 나라 이름을 ‘청’이라고 고친 다음, 명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였다. 조선에 대해서도 임금과 신하 관계를 맺을 것과, 명의 공격에 필요한 물자를 제공할 것을 요구하는 등 압력을 크게 강화하였다. 조선이 이를 거절하자, 청은 대대적인 침공을 하였다(병자호란 1636). 조선 조정은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항전을 하였으나 오래 견디지 못하고, 결국 청의 요구를 모두 받아들인 채 강화를 하였다.10)
그 결과, 인조의 두 왕자, 청과의 싸움을 주장한 신하, 그리고 일반 백성들마저 청에 끌려가 많은 고통을 겪었다. 이후 이에 대한 보복으로 청을 정벌하자는 북벌론이 일어나기도 하였으나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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