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 한국사Ⅶ 국가를 개방하다① 국가를 강하게 만들기 위해

다. 척화비를 세우다

프랑스와 미국의 침공 외에 독일 상인의 괴이한 행동은 대원군과 조선인의 감정을 더욱 자극하였다. 오페르트라는 독일 상인이 대원군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다 주민에게 들켜 달아난 일이 있었다.

조선은 ‘동방의 예의바른 나라’(동방예의지국)로서 조상을 극진히 모시는 풍속이 있다. 조선인으로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을 당한 대원군은 매우 분노하였다. 대원군은 서양 세력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느끼고, 서양 세력을 강력히 거부하였다. 그리하여 백성들에게 서양 세력이 침입하면 기어이 싸워 물리치도록 곳곳에 비석(척화비)을 세웠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였는데 싸우지 않고 화해하면 나라를 파는 것이 된다.” - 나의 후손에게 경계하노라

탐구활동

제너럴 셔먼호 사건

‘제너럴 셔먼’호 사건으로 한국과 미국이 처음 싸우게 되었다. 조선은 결국 미군을 격퇴하였다. 대원군은 미군을 격퇴하고 자신감에 싸여 있었고, 그 결과 척화비를 전국에 세웠다. 한국과 미국의 전쟁 상황이나 전투 능력에 비추어 어떻게 한국이 승리하게 되었는지 조사하여 이야기해 보자.
척화비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