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 한국사Ⅶ 국가를 개방하다② 국가의 문을 열다

나. 개화를 서두르자 - 갑신정변

개항을 한 후 조선 정부는 외국의 앞선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였다. 일본에는 수신사조사 시찰단을, 중국에는 영선사라는 사절단을 보내 발전된 근대 사회와 제도, 기술 등을 배워 오게 하였다. 정부 조직도 근대식으로 바꾸었고, 군대를 강화하기 위하여 양반 청년 중심으로 ‘별기군’이라는 신식군대를 조직하여 신무기로 훈련하였다. 그런데 일본 교관이 훈련시키는 별기군은 대우가 좋은 반면 구식 군대는 대우가 좋지 않았다. 봉급도 제대로 주지 않았고, 오랜만에 주는 쌀에 겨와 모래 등이 섞여 있었다.

오랫동안 차별 대우에 화가 나 있던 구식 군대는 반란을 일으켜, 정부 책임자를 죽이고, 일본 공사관을 불태우고 교관을 살해하였다(임오군란 1882). 이 사건이 일어난 후 보수파인 대원군이 다시 집권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난을 진압하기 위하여 청나라 군사가 진입하였고, 군란 주동자를 처형한 후, 대원군을 주모자로 몰아 중국으로 납치해 가 버렸다.

민비측 세력이 다시 세력을 잡았으나 청나라와 연결되어 개혁이 느렸다. 이에 참지 못한 젊은 개화파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등은 우정국3)개국식 때 군대를 동원하여 보수파를 제거하고 정변을 일으켰다(갑신정변 1884). 그들은 정부를 새로 조직하고, 사회 개혁안을 발표하였다. 이것이 한국 근대화 운동의 시작이었으나, 다시 청나라 군대가 들어와 정변 주도 세력을 몰아 냈다.

결국 근대화 운동은 3일 만에 끝나고 말았다(삼일천하). 의욕적인 개혁 운동이었으나 소수의 젊은 지도자가 중심이 되어, 일본이라는 외세에 의지한 채 너무나 서두른 것이 문제였다.

별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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