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 한국사Ⅱ 삼국이 중앙 집권 국가로 발전하다② 해상으로 뻗은 백제, 동북 아시아를 호령한 고구려

다. 고구려, 동북 아시아의 대제국으로 발전하다

백제의 공격을 받아 곤경에 빠졌던 고구려는 불교를 받아들여 사상적 통일을 꾀하고, 율령을 반포하여 통치 조직을 새롭게 정비하였다. 광개토 대왕(391~413) 때에는 백제와의 대결에서 승리하고, 나아가 동북 아시아의 대제국으로 발전하였다.

18 세에 즉위한 광개토 대왕은, 수만 명의 철갑 기병과 보병을 이끌고 만주 일대에 대한 정복 전쟁을 벌여 동북 아시아의 최강국으로 성장하였다. 그리고 한강 유역까지 진출하여, 고구려를 동서남북으로 가장 넓게 확장시킨 대왕이 되었다. 고구려가 남으로 확장하면서 백제와의 연합 세력이었던 가야와 왜의 세력까지도 압박하였다. 강력한 고구려에게 백제는 한강 이북의 영토를 거의 빼앗겼으며, 금관 가야를 중심으로 한 전기 가야 연맹은 신라에게 해체당했고, 신라는 고구려왕에게 ‘섬기겠다’는 충성 언약을 하기에 이르렀다.

고구려는 광개토 대왕의 뒤를 이은 장수왕 때 가장 전성기였다. 한반도 북부와 만주 일대를 장악했던 고구려는, 중국 북부를 통일하였던 ‘북위’로부터 “그 국력이 강하여 우리로서도 어쩔 수 없다.”는 평가를 듣기도 하였다. 장수왕은 백제·신라를 더욱 압박하면서 오늘날의 충청도 지역까지 세력을 확대하여, 광개토 대왕 때보다 더 남하하였다. 그리고 수도를 평양으로 옮겨 남진 정책을 강화하였다.

5 세기의 고구려는 이제 자타가 공인하는 동북 아시아의 최강국으로 성장하였다. 그리하여 중국과 대등한 외교 관계를 맺었으며, 신라와 백제를 내려보며 스스로 천하의 중심으로 자처하였다.

한국의 문화 유산

고구려의 고분과 벽화

2004년 유네스코는 북한의 평양 부근과 중국의 동북 지방에 있는 고구려의 고분과 벽화를 세계 문화 유산에 등재했다. 고구려의 초기 수도였던 압록강 중류와 5 세기 이후 수도였던 평양 부근에는 일찍이 수많은 고구려 고분이 발굴되어 보존되고 있다. 이 고분들 가운데 상당수는 돌로 방을 만들고, 그 위를 흙으로 덮어 봉분을 만든 굴식 돌방 무덤인데, 이 곳에는 내세에서의 새로운 삶을 믿었던 고구려인들이 남긴 다양한 벽화를 볼 수 있다. 돌 위에 석회를 바르고 천연 염료로 그린 이 벽화들은 당시 사람들의 생활 모습은 물론, 그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까지 알려 주는 소중한 유산이 아닐 수 없다.
고분의 내부 벽화
광개토 대왕비(중국 지안현)
전성기 고구려(5세기 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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