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 한국사Ⅳ 고려 귀족 사회의 성립과 발전① 민족을 다시 통일한 고려

나.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다

고려 태조는 건국 직후부터 고구려의 옛 영토를 되찾기 위한 열망으로 북진 정책을 폈다. 나라 이름을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고려’라고 하였고, 고구려의 수도였던 평양을 ‘서경’이라 하여 중요하게 여기고 북진 정책의 전진 기지로 삼았다.

태조는 각 지방에서 큰 규모의 호족 세력들을 중앙 귀족으로 받아들이고 작은 규모의 호족들은 지방의 통치를 담당하도록 맡겼다.

고려가 왕권이 안정되고 중앙 집권적 체제를 확립하게 된 것은 제4대 광종 때였다. 광종은 후삼국 시대 혼란기에 호족들이 불법으로 차지하고 있던 노비들을 조사하여, 원래의 신분인 평민으로 회복시켜 주었다. 또 광종은 중국의 과거 제도를 받아들여 유능한 인재들을 선발하여 관리로 등용하였다. 이러한 개혁들은 호족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것이었으며 결과적으로 왕권이 크게 강화되었다.

성종 때에 이르러 국가 통치 체제가 확립되었다. 성종은 호족이 관리하던 지방에 중앙 관리를 보내 직접 다스렸으며, 지방의 호족들은 향리(지방 관리)로 편입하여 통제하였다. 중앙의 정치 기구를 고려의 실정에 맞도록 정비하였으며, 유학 교육에도 힘써 최고 교육 기관으로 국자감을 설치하였다.

고려의 지방 행정은 전국을 경기1)5도, 양계로 크게 나누고, 그 밑에 군·현을 두었다. 그러나 모든 군·현에 관리를 파견할 수는 없었다.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는 곳도 많았다. 이러한 곳은 중심이 되는 군·현의 지방관이 함께 다스렸으며, 실제적인 행정 사무는 그 지방의 향리들이 담당하였다. 또, 전국 각지에 ‘’를 두어 국가나 관청에서 필요한 금, 은, 철, 도자기, 종이, 먹, 소금 등 각종 자원이나 생활 용품을 생산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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