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 한국사Ⅳ 고려 귀족 사회의 성립과 발전② 번영하는 귀족 사회

가. 거란의 침략을 물리치다

110 세기 초, 한반도에는 고려, 중국에는 송나라, 만주에는 거란족의 요나라가 새로이 등장하였다. 거란이 세력을 확장하면서 북진 정책을 펴는 고려와 충돌이 일어났다. 고려는 건국 초기부터 거란에 대해서는, 발해를 멸망시킨 야만족이라 하여 배척하였다.

한편, 중국을 다시 통일한 송도 고려와는 외교 관계를 가지고 있었으나, 거란과는 대립하였다. 이에 거란은 송을 공격하기 위해 먼저 배후 세력인 고려를 침입하였다.

처음 침입때는 문관인 서희가 나서서 외교적 담판을 벌였다. 그 결과, 고려가 고구려의 후계자임을 인정받는 한편, 송과의 관계를 끊는 대신 압록강 동쪽의 6주를 돌려받는 것을 조건으로 화해하였다. 그러나 고려가 여전히 송과의 친선 관계를 유지하면서 거란과는 관계를 멀리 하자 재차 침입해 왔다. 이 때 개경이 함락되는 어려움을 겪었으나, 다시 거란과의 친선을 조건으로 강화를 맺었고, 그 때 물러가는 거란군을 크게 격파하였다. 불만을 갖고 이어 거란은 3차 침입을 하였으나, 이 때에는 강감찬 장군이 귀주에서 거란군을 거의 전멸시키는 전과를 올렸다.

전쟁이 끝난 뒤 고려는 개경 주위에 나성을 쌓고 국경 일대에 천리장성을 쌓아 북방 민족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인물탐구

거란을 물리친 두 영웅, 서희강감찬

서희는 본래 문관이었으나 문무를 겸비하였으며, 사리도 분명하여 왕의 총애를 받았다. 거란이 쳐들어 왔을 때, 고려에서는 서경 이북의 땅을 떼어 주고 화해하자는 주장이 우세하였으나, 싸울 것을 주장한 서희는 적장 소손녕을 만나 당당한 태도로 담판하였다. 서희는,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로 압록강 안팎이 고려의 영토이니, 만약 여진을 내쫓고 우리의 옛 땅을 되찾게 해 주면 당신네 나라와 통교할 것이다.”라고 설득하였다. 서희는 창과 활 대신‘세치의 혀’로 적을 감탄시키는 담판을 한 것이다. 서희의 주장이 옳음을 인정한 적장 소손녕은 서희의 요청을 받아들이고 군대를 되돌렸다. 고려는 싸우지 않고 적을 물리쳤으며, 영토를 압록강까지 확장하는 성과를 올렸다. 역사상 가장 값진 승리였다.
강감찬은 고려 건국에 공을 세운 호족 집안의 후손으로 과거에 장원 급제하여 높은 관직에까지 올랐다. 거란의 소배압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입하자 강감찬은 총사령관이 되어 곳곳에서 거란군을 격퇴하였다. 강감찬은 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강물을 막았다가 이를 터뜨려 공격하여(수공 작전) 큰 전과를 올렸고, 거란군이 개경으로 침공해 들어오자 주민과 식량을 모두 다른 곳으로 옮기는 전술로 적을 격퇴하였다. 이어 퇴각하는 거란군을 귀주에서 거의 전멸시키는 큰 전과를 올렸다. 이를‘귀주 대첩’이라고 한다.
서희 동상(경기도 이천)
강감찬 동상(서울 낙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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