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 한국사Ⅳ 고려 귀족 사회의 성립과 발전② 번영하는 귀족 사회

마. ‘코리아’로 세계에 알려지다

고려는 건국 후 송을 비롯하여 거란, 여진, 일본 등 외국인의 출입을 자유롭게 허용하며 대외무역을 장려하였다. 예성강 입구에 있는 벽란도는 국제 무역항으로서 개경으로 들어가는 관문에 해당하였다. 이 곳에는 송나라, 동남 아시아, 그리고 아라비아 상인의 무역선까지 드나들었다. 세계를 무대로 활발한 무역 활동을 벌였던 아라비아 상인들에 의해 고려는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세계 무대에 알려지게 되었다. 벽란도는 세계를 향해 열린 창이었다.

중국 상인들이 가져온 비단, 약재, 서적, 차 등은 고려 귀족들 사이에 인기 상품이었다. 이슬람 상인들이 가져온 상아, 수정, 호박과 같은 보석, 후추와 같은 향신료, 수은, 양탄자 등도 인기를 누렸다. 고려의 수출품으로는 삼베, 인삼, 종이, 먹 등이 있었는데, 종이와 먹은 당시 세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였다.

한국의 문화 유산

고려 예술의 혼 청자

청자는 신라 토기와 발해의 자기, 송의 도예 기술을 종합하여 고려인의 독창적인 기술로 발달시킨 것이다.
청자는 고려 시대에 일상 생활에서 널리 사용된 첨단 제품이었다. 청자는 각종 그릇뿐만 아니라 향로, 문방구, 기와, 의자, 베개, 장식용 타일 등 일상 생활의 모든 영역에 두루 사용되었다. 그릇의 모양은 참외, 대나무, 죽순, 표주박 등 자연과 예술이 결합되어 다양하였다. 청자는 따뜻하거나 찬 온도를 오래 유지해 준다. 입술에 닿는 느낌이 부드럽고, 내용물의 향과 맛을 한층 높여 준다. 특히 차 마시는 풍습은 청자의 발달을 더욱 촉진시켰다. 청자 제작 기술은 귀족 사회가 발달하였던 12 세기 전반기에 절정에 달했다. 고려의 독창적인 반투명의 은은한 비색청자가 완성되고 상감청자도 만들어졌다. 상감은 문양을 붓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릇 표면에 무늬를 파낸 다음 그 곳에 다른 흙을 채워 넣어 문양과 색을 내는 독특한 제작 기법이다. 상감청자의 문양으로는 구름과 학(운학)이 유명하며, 국화, 매화, 모란, 연꽃 등의 무늬도 넣었다. 당시 고려청자는 중국 기술을 뛰어넘는 세계 최고의 수준이었다. 주로 귀족들이 사용했던 고결한 비색 청자 이외에도 일반 백성들은 녹청자를 널리 사용하였다.
상감청자
중국 무역선
(1976년, 신안 앞바다에서 발견된 복원 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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