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 한국사Ⅳ 고려 귀족 사회의 성립과 발전③ 무신이 지배하는 사회

나. 수도를 서경으로 옮겨야 나라가 산다

고려는 이자겸의 난으로 많은 사람이 죽고 궁궐이 불타는 등 민심이 흉흉하고, 금나라의 압력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 때 묘청정지상 등은 풍수지리설을 이용하여 수도를 서경으로 옮기자고 주장하였다. 개경의 땅 기운이 쇠약해져 나라가 혼란하다고 설명하였다. 따라서, 서경으로 천도하면 국운이 새롭게 일어나고 금나라가 스스로 항복할 것이며, 주변의 많은 나라들도 고려의 신하가 될 것이라고 설득하였다. 또 이들은 왕을 황제라 부르고 우리 나라의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자고 주장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개인이나 국가의 운명이 집이나 궁궐이 위치한 지형의 모습에 따라 결정된다는 풍수지리설을 믿고 있었다. 서경은 일찍부터 땅기운이 왕성한 명당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인종도 그 뜻을 따라 서경에 궁궐을 짓고 수도를 옮기려고 하였으나, 반대 세력의 반발로 서경 천도가 중단되고 말았다. 이에 묘청 등은 서경에 새로운 국가를 세우고 고려 정부와 맞섰으나, 개경 세력 김부식이 이끈 정부군에게 1년 만에 진압되고 말았다.

읽기자료

삼국사기’는 우리의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 저술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우리 나라의 역사책 가운데 가장 오래 된 삼국사기는 왕의 명령에 따라 김부식이 편찬하였다. 김부식(1075~1151)이 활동하였던 시기는 이자겸의 난묘청서경 천도 운동 등으로 사회가 혼란에 빠지고, 여진족의 침략에 굴복하는 수모를 당했던 때였다. 이처럼 사회가 어지러워지자 당시 인종과 최고 실력자였던 김부식은 국가의 명예와 통치 질서를 정비할 필요를 느꼈다. 그리하여 삼국사기를 편찬하였다. 당시 고려의 지식인들은 중국의 역사는 잘 알면서도 우리의 역사에는 무관심하였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김부식은 유교적 역사관에 서서, 삼국 시대까지의 우리 나라 역사를‘삼국사기’란 이름으로 정리하게 되었다. 삼국사기에는 삼국의 정치, 전쟁, 외교 등에 관한 것을 기록하면서, 충효와 정절 등 유교적 덕목을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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