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 한국사Ⅴ 양반 중심의 조선 사회② 조선의 사회 모습

나. 생산업은 상민의 몫이었다

상민(평민)의 대부분은 농민이었고, 일부가 공인과 상인이었다. 조선 초 정부는 어느 정도 농민을 보호하는 정책을 폈다. 억울하게 노비가 된 사람을 양인으로 풀어 주고 지나치게 많은 소작료나 세를 받는 것을 금하였다. 조선 정부의 이러한 정책은 농민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이 농민의 생활 자체를 넉넉하게 만들어 준 것은 아니었다.

농민은 국가에 대해 여러 가지 의무를 졌다. 먼저, 농사를 지으면수확량의 1/10 을 세금으로 냈다. 성인 남자의 경우 16세부터 60세까지 병역의 의무를 져야 했다. 때로는 나라에서 수행하는 건설·토목 공사에 동원되기도 하였다.

농기구 등을 생산하는 사람이 공인이며, 물건을 거래하는 사람이 상인이다. 농업은 예부터 천하의 가장 기본이 되는 업이라 하여 중시하였다. 그리하여 농민은 공인이나 상인보다 우대받았다. 이들세 신분층이 나라의 대부분 생산과 경제 활동을 주도하였다.

원칙적으로 농민들은 공부를 하여 과거 시험에 합격하면 벼슬길 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어려운 농사일로 공부하기는 힘들었다.그 결과 실제로 과거 시험에 합격하여 양반이 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양안(토지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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