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 한국사Ⅴ 양반 중심의 조선 사회③ 사림의 성장과 집권

마. 주변국을 놀라게 한 성리학 수준

유학의 한 분류인 성리학은 고려 말에 들어와, 조선 시대에는 나라를 다스리고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기본 학문으로정착되었다. 그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전개되었다. 성리학은 고려 말, 조선 초에는 정치 이념으로 역할을 하였으나, 연구가 진전되면서 그 학문적·철학적 원리를 밝히려는 노력이 이루어졌다. 특히 인간과 자연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다. 사물의 본질이며 인간과 자연의 움직임을지배하는 내부 힘을 뜻하는 이(理)와 겉으로 드러난 현상이며 인간과 자연을 움직이는 외향적 힘을 뜻하는 기(氣)의 관계를 놓고, 수준 높은 연구와 논쟁이 벌어졌다.

조선의 성리학 연구 수준은 발상지인 중국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한국의 성리학이황이이에 의해 정리되어 학파를 형성하였다. 이들의 이론은 일본에까지 전해져 일본 성리학의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수준 높은 성리학 이론은 일반인들이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것이어서, 일반 사람들의 생활에는 커다란 영향을 주지 못하였다. 더구나 성리학 연구는 점차 추상적인 이론에 집중되어,백성들의 현실 생활과는 동떨어진 채, 집권층 사이에 정치적 논쟁거리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한국의 문화 유산

세계 기록 유산 - 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은 태조부터 철종 때까지 25대 472년 간(1392년~1863년)의 일을 일어난 순서대로 기록한 역사책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정치·경제·외교·군사·산업, 교통, 풍속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친 다양한 내용과 방대한 분량, 객관적 기록으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실록을 쓰는 데는 정부의 문서나 기록, 사관이 그때그때 기록해 놓은 사초(史草), 왕의 비서 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승정원의 일기, 그리고 개인 문집 등 다양한 자료들이 이용되었다. 중요한 기록 문서는 사관사초이다. 사관은 왕의 언행이나 정치하는 현장, 궁중의 움직임 등을 소상히 기록하였다. 이들은 독립과 비밀을 제도적으로 보장받아서 어느 누구의 지시나 간섭을 받지 않았다. 그리하여 사초의 내용은 사관만이 볼 수 있었고, 국왕이라도 함부로 볼수 없도록 제한하여, 역사 기록의 생명인 진실성 유지에 전력을 기울였다. 완성된 왕조실록은 분실을 우려하여 4 질을 발간하여 전국 네 곳에 사고(역사서 보관창고)를 짓고 나누어 보관하였다. 안전을 위해 될 수있는 한 깊은 산 속에 보관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네 곳의 실록은 불타고, 다행히 전주 사고실록이 남아 현재까지 전해져 조선 시대의 역사를 알수 있는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은 현재 유네스코 세계 기록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오대산 사고
오죽헌(이이의 생가)
퇴계 종택(이황의 종손이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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