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 한국사Ⅷ 나라를 빼앗긴 설움② 독립 운동을 계속하다

다. 우리의 힘을 키우자

우리 민족은 일제에 대항하고 독립을 되찾기 위해서는 민족의 힘을 키우는 것이 중요함을 깨달았다. 첫째는 우리의 군사적 힘을 기르는 것이요, 둘째는 정신적 힘을 키워 나가는 것이었다. 민족의 힘을 기르는 데는 교육이 가장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고, 서당, 야학, 강습소 등을 세워 문맹 퇴치 운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사립 학교를 세우고, 민간인 중심의 대학을 설립하는 움직임도 일어났다.

경제적으로는 우리가 생산한 상품으로 쓰자면 ‘조선 물산 장려 운동’이 전개 되었다. 또한, 절약, 금주, 금연, 도박 안하기 등 ‘생활 습관 개선 운동’이 일어났다. 한편, 농촌에서는 일본인 지주의 착취에 대항하는 농민 운동이 일어났으며, 산업체에서도 일본인 경영자의 부당한 대우에 항거하는 노동자 운동도 일어났다.

문화적 저항 운동도 강하였다. 일제는 한국사 대신 일본 역사를, 한국어 대신 일본어를 강제로 가르치는 등 식민지 교육을 점차 강화해 갔다. 한국인의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도록 하고(창씨 개명), 신사 참배 7)를 강요하는 등 일제의 압박이 강해졌다. 이에 민족학자들은 우리말 사전 편찬, 표준어 제정, 한글날 제정 등의 일을 하였고, 역사학자들은 민족 사학을 일으켰다. 영화계에서는 영화 ‘아리랑’을 만들어 문화 활동을 통하여 민족정신을 일깨웠다.

한편, 군사의 힘을 길렀다. 민간인 중심의 독립군은 일본군의 압박으로 많이 약화되었다. 그리하여 중·일 전쟁(1937)이후 임시 정부는 광복군을 창설하여 미래의 전쟁에 대비하였고, 제 2차 세계대전 때에는 일본에 선전 포고를 하고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하였다. 인도, 미얀마 등에서도 영국군과 연합하여 일본군에 대항하였다.

당시의 세계는

독일을 선두로 이탈리아, 일본이 무력을 강화하여, 평화 기구인 국제 연맹을 탈퇴하고, 주변국을 침략하였다. 독일이 오스트리아, 체코를 점령하더니 폴란드를 침략하였다. 이에 불안을 느낀 영국, 프랑스, 러시아가 연합하여 독일에 대항하여,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이 발생하였다. 이탈리아(1943), 독일(1945. 5)이 연합국에 패하고, 일본은 원자폭탄의 세례를 두 번이나 받고서야 항복하였다. 일본은 1인승 비행기에 자폭군인을 태워 적의 군함에 자폭 공격도 하였다. 그러나 비인간적 전쟁은 세계 최초 핵폭탄의 비극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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