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제4장 일제강점기의 배움과 가르침5. 여성 교육

일제강점기 여성 교육 현황

개화기에 여성 교육의 필요성은 자식의 문명 개화와 관련하여 제기되었고, 1905년 을사조약 이후 일본의 영향력이 강해지면서 관심도 크게 늘어났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여성을 대상으로 한 교육은 여성 자신에 대한 개명 의식과 일제의 교육 의도가 일치하면서 크게 확대되었지만 여전히 남성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었고, 상급 학교로 진학할수록 차이는 더욱 벌어졌다.

1943년 당시 관·공립 국민학교, 사립 도지사 인정 학교와 2년제 간이학교, 사립 각종 학교의 학생 약 215만 명 가운데 여학생은 68만 9,677명이었다. 중등 교육의 경우 전체 학생 10만여 명 가운데 관·사립 고등 여학교, 여자 실업학교, 실과 여학교, 사범학교 총 100여 개교의 여학생은 2만 2,276명이었다. 고등 교육의 경우 전체 28개 대학, 전문학교, 전문 정도의 각종 학교의 학생 5,504명 가운데 여학생은 1,255명이었다.

여성 전체로 살펴보면, 1944년 조선에 거주하는 여자는 약 1,260만 명 정도인데 이 가운데 전혀 교육을 받지 못한 여성은 1,121만여 명으로 전체 의 89% 정도였다. 교육 경험자 11% 가운데 고등 교육 이수자는 약 3,600여 명으로 전체의 0.02%, 중등 교육 이수자는 약 3만 7,000여 명으로 전체의 0.3%, 초등 교육 이수 또는 중퇴자는 약 54만 5,000여 명으로 전체의 약 4.3%, 초등학교 재학자는 약 80만여 명으로 전체의 약 6.4%였다.

일제강점기 여성들의 교육 욕구는 남성들의 그것과 같았다. 이는 1925년 경성 어느 여학교의 졸업생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으니 90%가 전문학교에 진학하고 싶다고 한 것에서 잘 드러난다.203) 하지만 여성들의 교육 기회는 극히 적었다. 여성 교육에 대한 부모들의 낮은 인식과 여성 교육 기관의 부족 그리고 여성이라는 차별 때문이었다. 식민지에서 여성은 기본적인 민족적 차별에 성 차별까지 받고 있었다. 식민지에서 여성 교육은 철저하게 성의 구분을 토대로 하였다. 대학 수준에서도 여자 교육 기관과 남자 교육 기관은 엄격히 구분되어 남녀 공학이 거의 없었고, 여학교의 교과 과정도 성 구분을 강화하는 성격이었다.

[필자] 김태완
203)『동아일보』 1925년 11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