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제1장 나라 이름과 왕 이름에 담긴 의미5. 국왕을 이름으로 심판하라

왕의 혼령과 시신을 모신 장소를 부르는 호칭, 전호와 능호

조선시대 국왕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특별한 존재였다. 그것은 살았든 사망하였든 국왕이 머무는 장소를 특별하게 부르는 경우에서 잘 드러난다. 예컨대 살아 있는 왕이 머무는 곳이 궁전이었다.

사망한 경우에도 왕의 시신이나 혼령이 머무는 곳은 특별하게 호칭되었다. 그런데 왕이 사망한 경우에는 몸과 혼령이 분리된다고 생각하였으므로 몸이 머무는 곳과 혼령이 머무는 곳을 구별하여 불렀다. 예컨대 국장(國葬) 이전 왕의 시신을 모시는 곳을 빈전(殯殿)이라 하고 국장 이후 시신을 모신 곳을 능(陵)이라 하였다. 삼년상을 받든 이후 혼령을 모신 곳을 종묘라고 하였으며, 국장 이후 종묘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혼전(魂殿)이라고 하였다. 빈전, 능, 종묘, 혼전은 모두 사망한 이후에 국왕의 몸과 혼령이 머무는 장소를 특별히 호칭하는 것이었다.33)

<정조의 빈전>   
『정조건릉산릉도감의궤(正祖健陵山陵都監儀軌)』에 실린 빈전 그림이다. 빈전은 국장 이전 왕의 시신을 모시는 곳을 말한다.

이 중에서 빈전을 제외한 능, 종묘, 혼전에는 그곳에 모신 특정 국왕을 나타내는 호칭이 있었다. 능호(陵號), 묘호(廟號), 전호(殿號)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었다.

이 중에서 전호는 국장 이후 삼년상 동안 왕의 신주를 모시는 혼전의 이름이란 뜻이었다. 왕의 국장은 사후 5개월 이후이므로 전호는 그 이후에 쓰게 되는데, 묘호와 마찬가지로 미리 결정하였다. 전호도 시호, 묘호를 결정할 때 같이 정하였다. 전호는 앞의 두 자 와 뒤의 전(殿)이라는 글자까지 합하여 세 글자로 이루어지는데, 전은 왕이나 왕비가 거처하는 건물이라는 의미였다. 전호도 묘호나 마찬가지로 신료들이 세 가지를 추천하면 국왕이 그 중에서 하나를 골라 결정하였다.

순조의 전호가 결정되는 경우를 살펴보면, 신료들이 헌종에게 추천한 전호는 ‘효성전(孝成殿)’, ‘효숭전(孝崇殿)’, ‘효륭전(孝隆殿)’의 세 가지였다. 이 중에서 헌종은 첫 번째인 ‘효성전(孝成殿)’을 선택하였다. ‘효성전’이란 ‘효를 완성하는 전’이란 의미로서 헌종이 순조를 추모하는 마음을 담은 것이었다. 이처럼 전호에는 후계 왕이 선왕의 혼령을 추모하며 효도를 행한다는 의미의 글자, 예컨대 사(思), 모(慕), 효(孝) 등의 글자가 많이 사용되었다.

능호는 말 그대로 왕릉을 부르는 호칭이었다. 국상이 난 후 5개월 이후에 국장을 치르므로 왕릉의 능호도 5개월 이후부터 사용되지만 미리 결정하였다. 능호도 시호, 묘호, 전호를 결정할 때 같이 정하였다. 능호는 능(陵)이라는 글자까지 합하여 두 글자로 이루어지는데, 능은 말 그대로 왕릉이라는 의미였다. 예컨대 순조의 사례를 통해 보면 순조의 시호와 묘호를 정할 때 능호도 함께 정하여 올렸는데, 그것은 ‘인릉(仁陵)’, ‘헌릉(憲陵)’, ‘경릉(景陵)’의 세 가지였다. 이 중에서 헌종은 첫 번째인 ‘인릉’을 선택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능호에서 능이라는 글자 대신에 묘(廟)라는 글자를 사용하기도 하였는데, 예컨대 광릉(光陵)을 광묘(光廟)라고도 하였다. 이 능호는 묘호와 마찬가지로 특정 왕을 지칭하는 이름으로 사용되었다. 예컨대 순조를 인릉이라고도 하고 세조를 광릉이라고도 하였던 것이다.

조선시대의 전호와 능호는 비록 세상을 떠났다고 하더라도 왕의 혼령이나 몸이 머무는 곳을 특별한 곳으로 존중하는 호칭으로서 최고 권력자인 왕의 독보적인 지위를 잘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필자] 신명호
33)신명호, 앞의 책,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