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제5장 개항기 외국 여행가들이 본 조선, 조선인3. 오리엔탈리즘과 왜곡된 조선 인식

‘은둔의 왕국’과 ‘조용한 아침의 나라’

외국인 여행기에서 조선을 표상하는 대표적인 수식어로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 ‘은둔의 왕국’ 등이 있다. 조선이 ‘은둔국’이라는 인식에 큰 영향을 미친 것 중의 하나는 윌리엄 그리피스(William E. Griffis)의 저서 『은자의 나라, 한국(Corea, the Hermit Nation)』일 것이다. 1882년에 초판이 나왔는데, 1906년 8쇄, 1911년 9쇄로 증보판을 냈을 정도로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다. ‘은둔국’이라는 단어가 책 제목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어 외국인들에게 각인(刻印)되기 쉬웠을 것이다.391) 그는 초판 서문에서 일본은 은둔하였지만 나라의 문을 열고 세계의 시장 속으로 뚫고 들어온 나라, 조선은 봉쇄하고 의문에 쌓여 있는 나라로 묘사하며, “일본이 그러한 조선을 개방시켜도 좋지 않은가?”라고 노골적으로 일본의 조선 지배를 옹호하였다.392) 이러한 ‘은둔국’ 이미지는 이후 여행가들에게 다양한 요소로 형상화되었는데, 여기에는 ‘진보해 가는 문명에서 멀리 떨어진 오랜 땅’, ‘부동(不動)과 고립(孤立)’ 등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393)

한편 ‘고요한 아침의 나라’는 ‘조선(朝鮮)’을 한자 풀이한 것에서 유래 하였다. 이에 대해 겐테는 원래 ‘신선한 아침의 나라’로 해석해야 하는데, 이를 ‘고요한 아침’으로 잘못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394) 그러나 이는 해석을 잘못한 것이라기보다는 국명에 빗대어 외국인들이 원하는 조선의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듯하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는 “정체적이고 비역사적이며 문명과 문화의 발전에서 벗어난” 이미지와 연결되며, 이러한 조선은 유럽인들에 의해 문명으로 인도되어야 하는 ‘신비와 은둔, 금단의 나라’였다.395)

<‘아침의 나라’를 제목으로 쓴 견문기>   
퍼시벌 로웰이 지은 『조선 : 조용한 아침의 나라(Choson : The Land of the morning calm)』이다. 모두 ‘아침의 나라’를 제목에 넣은 견문기이다. ‘조선(朝鮮)’을 한자의 뜻대로 풀이한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이미지는 오랫동안 조선의 표상으로 자리를 잡았다.
<‘아침의 나라’를 제목으로 쓴 견문기>   
새비지-랜더가 1895년에 간행한 『한국 혹은 조선 : 고요한 아침의 나라(Corea or Choson : The Land of the morning calm)』이다.
<‘아침의 나라’를 제목으로 쓴 견문기>   
노르베르트 베버(Norbert Weber)가 1915년에 간행한 『고요한 아침의 나라(Im Lande der Morgenstille)』이다.

프랑스인 장 드 팡주(Jean de Pange)는 1904년에 발표한 기행문에서 ‘은둔국’과 ‘조용한 아침의 나라’의 이미지를 다음과 같이 형상화하고 있다.

특급 호텔과 급진적으로 이루어진 ‘미국화’ 물결에 열광하면서도 푸대접하는 근대 일본의 구획되고 개발된 장소를 빠져나온 사람이라면, 조선에 첫발을 들여놓은 순간 느끼는 고요함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아프리카 지중해 해안 사람들과 같이 풍성한 흰옷을 입고 있는 다소 무기력해 보이는 조선인들을 대면하는 순간, ‘황인종 진출의 위협’이란 깨끗이 사라진다. 잠재적인 부와 세계 최대의 해로로 통하는 지리적 입지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 끼여 목소리 한번 제대로 높여 보지 못하고, 서양 문명의 흐름에서 멀리 비켜나 있는 ‘은둔의 왕국’은 극동의 모로코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396)

팡주의 조선에 대한 인상은 “고요함, 무기력함, 서양 문명에 대해 개방하고자 하면서도 움츠러들기만 하는 모습”이었다. 여기에서 무기력함은 패배를, 고요함은 체념을 의미하는 것이다.397) 고요함, 조용함 등은 사람에게도 적용하였는데, 조선의 아이들은 “천성적으로 조용하고”,398) 장정들과 소년들은 “섬약(纖弱)하고 조용해 보인다.” 등의 기술이 바로 그것이다.399)

이와 같이 ‘조용한 아침의 나라’와 ‘은둔의 왕국’은 정체, 생명력의 부재, 무기력, 진보해 가는 문명에서 멀리 떨어진 오래된 땅, 고립과 부동, 단조로움 등의 이미지를 포괄하며 조선을 표상하는 전형적인 클리셰(Cliché)로 자리 잡았다.400)

[필자] 홍준화
391)이태진, 『고종시대의 재조명』, 태학사, 2000, 136∼137쪽.
392)이태진, 앞의 책, 138쪽.
393)프레데릭 불레스텍스, 180∼181, 197, 205쪽.
394)지크프리트 겐테, 앞의 책, 138쪽.
395)이지은, 앞의 책, 296쪽.
396)프레데릭 불레스텍스, 앞의 책, 165쪽 재인용.
397)프레데릭 불레스텍스, 앞의 책, 165쪽.
398)새비지-랜더, 앞의 책, 85쪽.
399)비숍, 앞의 책, 90쪽.
400)프레데릭 불레스텍스, 앞의 책, 164∼16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