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교육, 정치이념
고대 사회에서는 음악을 관장하는 관리의 권한이 컸다. 중국 주나라의 각종 관직의 종류와 역할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주례(周禮)』 춘관(春官)·종백(宗伯)에는 음악을 관장하는 직책을 맡고 있는 대사악(大司樂)의 역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적어 놓았다.
대사악은 성균(成均)의 법을 관장함으로써 나라를 세울 수 있는 학문과 정치를 다스려 나라의 자제들을 합치시킨다. 덕(德)이 있는 자와 도(道)가 있는 자에게 가르치도록 하고, 그가 죽으면 음악의 조상(樂祖)으로 삼아 고종(瞽宗)에게 제사지내게 한다. 악덕(樂德)으로 나라의 자제들을 가르치니 충성스럽고 온화하며 공경하고 떳떳하며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와 우애하도록 한다. 악어(樂語)로서 자제들을 가르치니 좋은 일을 일으키고, 옛 일로 써 지금을 간절하게 하며, 글을 외우고 큰 소리로 창하며, 질문하고 답한 것을 기술하도록 한다. 악무(樂舞)로서 자제들을 가르치니 운문(雲門), 대권(大卷), 대함(大咸), 대소(大韶), 대하(大夏), 대호(大濩), 대무(大武) 등을 춤추게 한다. 육률(六律), 육동(六同)과17) 오성, 팔음, 육무18)로 악을 크게 합치시키고, 천신과 인귀, 지기가 이르도록 하며, 여러 나라를 화락하게 하고, 만민을 어울리게 하며 빈객을 편안하게 하고, 먼 데 사람들을 달래며, 모든 동물을 부렸다.19)
위의 기록을 보아 대사악의 역할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곧 나라의 자제들을 가르치는 교육에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귀족 맏아들 교육은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 강조되는데, 이들이 언젠가는 나라를 다스리는 인물로 성장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에서 대사악이라는 관직을 담당할 사람의 자격 요건은 매우 까다로왔다. 예와 악은 물론 덕을 갖추어야 하고 말하기, 글쓰기, 춤 등의 내용에 이르기까지 그들을 가르쳐야 하였다. 귀족의 자제들을 잘 가르쳐야 하는 것은 곧 덕을 갖추어 정치를 잘 할 수 있는 사람으로 키우기 위한 것이었다.
이미 고대로부터 음악을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 강조되고 있는 것은 음악교육의 궁극적 목적이 곧 덕을 갖춘 사람으로 키우는 데 있기 때문이다. 유가 악론의 정수를 기록하고 있는 『예기』 악기의 핵심 내용도 곧 ‘예악을 통한 교화’에 있다. 『예기』 악기에서 “예와 악을 모두 터득한 것을 일러 덕이 있다고 하니, 덕이란 터득하였다는 것이다.”라고20) 강조한 사실에서도 예와 악을 배우고 닦아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한 것이 곧 덕을 갖춘 인격의 완성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학적 이념으로 건국하였고, 예악정치를 추구하였던 조선 사회가 건국 초기부터 예와 악을 강조하였던 맥락의 한 단서를 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성음(聲音)의 도는 정치와 통한다.”는 『예기』 악기의 명제는 유교를 국시로 하는 국가의 통치자나 지식인들에게 ‘음악은 정치의 반영’이라는 방식으로 이해되었다. 이들은 “치세(治世)의 음은 편안하고 즐거우며, 망국의 음은 슬프고 시름겨우니 백성들이 곤궁하기 때문이다.”라는21) 악기의 내용을 빌려 이상적 전형이 될 만한 음악의 특징을 제시하기도 하였고, “성음이 촉박해지는 것을 근심하였는데 얼마 안 있어 임진왜란이 일어났다.”는22) 역사적 예를 거론하면서 음악이 세태의 반영이라는 논리를 현실적으로 입증하기도 하였다. 또 실제 연주되고 있는 음악의 상태를 조절하기 위한 방안들이 마련되기도 하였다.
음악사의 현장에서 드러나는 이러한 현상들은 음악을 ‘즐기기 위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와 상반되는 것으로 음악과 사회의 관계를 고려하고, 음악이 인간의 정서에 미치는 영향 및 음악을 통한 교화의 가능성 등에 대해 진지하게 받아들인 결과이기도 하다. 조선 사회에서 음악이 갖는 의미와 기능을 진단해 본다면, 그 맥락이 이해된다.
유가의 악론(樂論)이 조선왕조의 음악 정책에 어떠한 방식으로 반영되고 펼쳐지는지 살펴보자. 주지하듯이 유가 악론의 이념적 기반을 이루는 것은 공자의 예악사상이고, 이후 『예기』 악기에 이르러 그 사상이 집대성된다. 따라서 악기의 이해는 조선조 음악사상의 근간을 파악하기 위한 중요한 방법이 된다.
악기에서 말하는 음(音)과 악(樂)의 원론적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대체로 음이 일어나는 것은 인심으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것이며, 인심이 움직이는 것은 외물(外物)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인심이 외물에 감응하면 움직여 성(聲)으로 나타나고, 소리가 서로 응하여 변화가 생겨난다. 변화 하여 일정한 질서를 이룬 것을 음(音)이라 하고, 음을 배열해 연주하여 간척우모(干戚羽旄)에23) 이르는 것을 악(樂)이라 한다.24)
성·음·악의 3단계 구도는 악기의 악론을 이해하기 위한 기본적 개념이다. 악기에서는 이 세 가지 개념을 각각 구분하여 사용하는데, 사람의 마음이 외물에 감응하여 비로소 움직여 나타난 것이 ‘성’이고, 소리가 서로 감응하여 변화가 생겨 문장을 이룬 것이 ‘음’이며, 음을 배열하여 악기로 연주하면서 춤까지 곁들인 악·가·무, 즉 기악·성악·무용을 모두 갖춘 종합예술이 ‘악’이라 하였다. 이처럼 성·음·악의 의미는 엄밀히 구분된 것이었다.
다음의 내용은 이를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대체로 음은 인심에서 생겨나는 것이고 악은 윤리와 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은 알지만 음을 알지 못하는 자는 금수이고, 음은 알지만 악을 알지 못하는 자는 뭇사람들이다. 오직 군자만이 능히 악을 안다. 그러므로 성을 살펴서 음을 알고, 음을 살펴서 악을 알며, 악을 살펴 정치를 알아서 치도를 갖추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성을 알지 못하는 자와는 더불어 음을 말할 수 없고, 음을 알지 못하는 자와는 더불어 악을 말할 수 없다. 악을 알면 예에 가까워진다. 예와 악을 모두 터득한 것을 일러 덕이 있다고 하니, 덕이란 터득하였다는 것이다.25)
공, 성(聲)만 아는 자는 금수(禽獸)이고, 음(音)만 아는 자는 뭇사람들이며, 군자라야 비로소 악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나아가 악을 알면 예에 가까워지며, 예악을 모두 얻은 것을 덕이 있다고 하였으니, 예악이란 덕을 갖추기 위한 필수 사항인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예와 악을 아울러 갖추어야 한다는 논리는 예악정치를 표방하는 조선조 사회에서 실질적으로 강조되기에 이르렀다.
무릇 음이란 인심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정(情)이 마음 속에서 움직이는 까닭에 성(聲)으로 나타나니, 성이 일정한 질서를 이룬 것을 음이라 한다. 그러므로 치세의 음은 편안하고 즐거우니 그 정치가 화평하기 때문이고, 난세의 음은 원망에 차있고 노기를 띠고 있으니 그 정치가 어긋나 있기 때문이며, 망국의 음은 슬프고 시름겨우니 백성들이 곤궁하기 때문이다. 성음의 도는 정치와 통하는 것이다.26)
“치세(治世)의 음은 편안하면서 즐거우니 그 정치가 화평하기 때문이다.”라고 하는 악기의 설명은 음악이 정치의 반영이라는 맥락을 극대화한 표현이다. 공, 그 시대에 연행되는 음악의 상태는 곧 위정자의 통치상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라는 내용이다.
『시경』의 채시설(采詩說)을 상기해 보면 음악이 정치의 상황을 그대로 반영한다는 논리는 매우 구체적이다. 천자가 제후국의 정치상황을 살피기 위해 60세 이상의 노인에게 시를 채집하도록 하여 모은 풍시(風詩)는 실제 천자가 매우 유용한 통치수단으로 활용한 방법이기도 하다. 이때의 시란 노랫말이 있고 선율이 있는 ‘노래’를 말한다. 시를 채집하도록 한 것은 시악(詩樂), 즉 노래를 통해 정치의 득실을 모두 파악할 수 있다는 전제 아래 진행된 것으로 음악은 정치의 반영이라는 명제를 뒷받침해 준다. 성음의 도는 정치와 통한다는 악기의 논의가 실제 통치자들에 의해 받아들여지는 맥락이 드러난다.
악기의 가장 앞부분에서도 강조하였듯이 “음이나 악이 인심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것이므로, 사람이 만드는 음악에는 반드시 마음의 상태가 반영된다.”는 원리가 유가 악론의 출발이다. 여기에서 ‘음악은 성정을 순화시킨다.’는 음악의 효용성이 제기되고, 아울러 정치교화적인 측면에서 필요한, 또는 적어도 인간의 성정을 순화시키는 데 유용한 음악의 상이 제기될 수 있다.
악이란 음으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것이니 그 근본은 인심이 외물에 감응하는 데에 있다. 그런 까닭에 슬픈 마음을 느끼는 자는 그 소리가 윤기가 없으면서 쇄미하며, 즐거운 마음을 느끼는 자는 그 소리가 밝으면서 완만하며, 기쁜 마음을 느끼는 자는 그 소리가 막힘이 없으며 잘 뻗어나고, 성난 마음을 느끼는 자는 그 소리가 거칠면서 사납고, 공경하는 마음을 느끼는 자는 그 소리가 곧으면서 청렴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느끼는 자는 그 소리가 온화하면서 부드럽다. 이 6가지는 본성이 아니라 외물에 감응한 뒤에 움직인 것이다.27)
음악이 만들어지는 것의 맥락을 이야기하고 있다. 외물(外物)에 감응되지 않은 마음은 ‘성(性)’에 해당하지만, 일정한 음의 배열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은 마음이 외물에 감응되어 나타난 결과이므로 정(情)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바로 이 지점이 유가악론에서 음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마음이 외물에 감응하면 움직여서 정으로 드러나는 것이며, 드러난 바의 결과가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다시 말하면 외물에 감응하는 조건의 조성 여하에 따라 악의 상태가 규정된다는 논리이다.
음악이 생겨나는 것은 인심이 외물에 감응하는 바의 결과로 드러난다고 강조하는 유가악론의 맥락은 음악을 일종의 사회현상으로 관찰한 결과이다. 이는 유가악론의 특징 가운데 하나이기도 한데, 음악 또는 음악 작품을 사회와 무관하게 단순한 개인의 활동이나 정서상태의 결과물로 간주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어떤 ‘음악’으로 드러난 정서는 특정한 사회성을 구비하였으므로, 그 가운데에서 한 사회의 정치와 윤리, 도덕정신의 상태를 엿볼 수 있다고 본다. ‘음악을 살펴 그 정치를 알 수 있는 것’이나28) ‘성음의 도는 정치와 통한다.’는29) 악기의 논리도 그러한 맥락에서이다. 한 개인이 아닌 한 집단, 또는 사회의 정치·윤리·도덕의 상태를 가늠하는 척도가 음악이므로 예악정치를 지향하는 조선에서 음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맥락은 매우 자연스런 일일 것이다.
따라서 유가의 악론에서는 이러한 맥락으로 인하여 인재를 교육하는 데 음악의 역할을 강조한다. 주자의 『서전(書傳)』 순전(舜典) 집주(集註)에서는 음악이 인재를 교육하는 데 일으키는 작용에 대해 강조하면서, 학생이 원래부터 가지고 있는 마음과 우주정신의 본체와 작용이 서로 일치하는 중화지덕(中和之德)을 배양하는 것과 외물의 영향을 받아 비로소 생겨난 편향성을 바로잡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주자는 순전에서, 유우씨(有虞氏)가 기(夔)를 전악(典樂)에 임명하면서 “너에게 전악을 명하노니, 귀족의 맏아들을 가르쳐라(命汝典樂 敎冑子)”라고 말한 대목에 대해 “고대 성인이 음악을 만든 목적이 정성(情性)을 기르고 인재를 키우며 신명을 섬기고 위와 아래를 화합시키는 데 있다.”고 하였다.30) 음악 교육의 궁극적 목적은 기예의 차원을 넘어 ‘덕’을 갖춘 훌륭한 인재를 만들기 위한 데에 있었다.
17) | 六律과 六同. 12율 전체를 말함. 6율은 12율 중의 기수 위치에 있는 여섯 음의 陽律, 즉 黃鐘, 太簇, 姑洗, 蕤賓, 夷則音을 말하며, 6동은 우수 위치에 있는 여섯 음의 陰呂, 즉 大呂, 夾鐘, 仲呂, 林鐘, 南呂의 여섯 음을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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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 六舞는 黃帝의 <雲門大卷>, 唐堯의 <大咸>, 虞舜의 <大韶>, 夏禹의 <大夏>, 商湯의 <大濩>, 주나라의 <大武>의 여섯 악무를 말한다. |
19) | 『周禮』 春官宗伯 大司樂, “大司樂掌成均之法 以治建國之學政 而合國之子弟焉 凡有道者有德者 使敎焉 死則以爲樂祖 祭於瞽宗 以樂德敎國子中和祗庸孝友 以樂語敎國子興道諷誦言語 以樂舞敎國子舞雲門·大卷·大咸·大韶·大夏·大濩·大武 以六律六同五聲八音六舞大合樂以致鬼神示以和邦國以諧萬民以安賓客以說遠人以作動物 乃分樂而序之以祭以享以祀.” |
20) | 『禮記』, 「樂記」 樂本, “禮樂皆得 謂之有德 德者得也.” |
21) | 『禮記』, 「樂記」 樂本, “治世之音 安以樂 其政和 亂世之音 怨以怒 其政乖 亡國之音 哀以思 其民困 聲音之道 與政通矣.” |
22) | 『星湖僿說』 권13, 「人事門」 國朝樂章, “上每迎詔于西郊 樂自殿陛奏之 至崇禮門方闋 更奏至慕華館方訖 宣祖初年 樂漸促數 自殿陛至廣通橋己闋 知者深憂其噍殺 未幾有壬辰之變.” ; 송지원, 「『星湖僿說』을 통해 본 성호 이익의 음악인식」, 『韓國實學硏究』 4, pp.224∼225 참조. |
23) | 干戚羽旄는 일무를 출 때 손에 들고 추는 도구인데 여기서는 일무 자체를 가리킨다. |
24) | 『禮記』, 「樂記」 樂本, “凡音之起 由人心生也 人心之動 物使之然也 感於物而動 故形於聲 聲相應 故生變 變成方 謂之音 比音而樂之 及干戚羽旄 謂之樂.” 이하 『樂記』의 번역은 조남권·김종수가 공역한 『역주 악기』, 민속원, 2000를 참조하였다. |
25) | 『禮記』, 「樂記」 樂本, “凡音者 生於人心者也 樂者通倫理者也 是故 知聲而不知音者 禽獸是也 知音而不知樂者 衆庶是也 唯君子 爲能知樂 是故 審聲以知音 審音以知樂 審樂以知政 而治道備矣 是故 不知聲者 不可與言音 不知音者 不可與言樂 知樂則幾於禮矣 禮樂皆得 謂之有德 德者得也.” |
26) | 『禮記』, 「樂記」 樂本, “凡音者 生人心者也 情動於中 故形於聲 聲成文 謂之音 是故治世之音 安以樂 其政和 亂世之音 怨以怒 其政乖 亡國之音 哀以思 其民困 聲音之道 與政通矣.” |
27) | 『禮記』, 「樂記」 樂本, “樂者 音之所由生也 其本在人心之感於物也 是故其哀心感者 其聲噍以殺 其樂心感者 其聲嘽以緩 其喜心感者 其聲發以散 其怒心感者 其聲粗以厲 其敬心感者 其聲直以廉 其愛心感者 其聲和以柔 六者非性也 感於物而後動.” |
28) | 『禮記』, 「樂記」 樂本, “審聲以知音 審音以知樂 審樂以知政.” |
29) | 『禮記』, 「樂記」 樂本, “聲音之道 與政通矣.” |
30) | 『書傳』, 「舜典」, “蓋所以蕩滌邪穢 斟酌飽滿 動蕩血脈 流通精神 養其中和之德 而救其氣質之偏者也……聖人作樂 以養情性 育人才 事神祇 和上下 其體用功效 廣大深切如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