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4 지배 정치 이념의 구현: 유교건축03. 종류별 유교건축향교

2. 입지와 건물배치

<충청도 홍주목(洪州牧) 지도(『여지도서』)>   
성 밖 우측 가까운 곳에 향교가 있다. 홍주는 현 홍성 지방의 조선시대 지명이다.

향교가 설립된 곳은 대개 읍성 밖의 한적한 곳이었다. 성밖에 자리한 것은 번잡한 성내보다는 아무래도 교육환경이 성밖이 더 좋았을 것이고, 또한 넓은 터를 얻기에도 용이했기 때문이다. 거리로는 보통 읍치에서 4리 이내로 아주 먼 곳은 아니였다. 이처럼 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한 까닭은 향교가 중앙의 조직에 의한 관학이었으며, 또한 강학의 장으로써만이 아니라 지방민의 교화사업에도 큰 몫을 담당하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일부 향교에서는 호랑이 출몰로 향교를 옮겼다는 사실도 있어 꽤 한적하고 외진 산중에 위치했던 향교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향교가 자리한 지형은 크게 평지와 경사지형으로 구분된다. 이러한 지형의 문제는 강학과 제향 구역의 설정에 있어 중요한 요인이 된다. 전체적으로 평지를 택한 향교는 일부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향교는 구릉성 산록에 자리 잡았다.

<고려 영해향교 배치 추정도>   

향교의 건축구성은 성균관과 매우 유사하다. 다만, 규모 등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즉, 문묘가 반드시 있고 이와 함께 공부할 수 있는 독자적인 영역(강학 구역)이 별도로 마련되었다. 한편, 고려시대 향교에서는 지금의 향교처럼 건축적으로 두 구역이 분리되지 않고 한 건물 또는 하나의 영역에 공존한 묘학동궁(廟學同宮)의 향교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예로 고려 충렬왕(1347) 때 이곡이 지은 「영해향교 기문」87)따르면 한 건물에 묘와 학이 함께 하고 있어 너무 무례하므로 대성전을 독립시켜 공자의 상을 모시고 그 앞 좌우로 무(廡)를 지어 공부하는 곳으로 삼았다고 되어 있다. 공간상으로 그 전보다 상당히 예적 질서를 찾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충청남도 홍주향교 제향 구역(문묘)>   
<전라남도 낙안향교 강학 구역>   

조선시대에 조성된 향교는 제향과 강학 구역의 배치가 모두 4가지 유형으로 정착이 된다. 즉, 다양한 건축적 구성이 있는데 거기에는 지형을 세심히 고려한 흔적이 보인다.

<향교의 배치유형-(가) 전묘후학>   
<향교의 배치유형-(나) 전학후묘>   
<향교의 배치유형-(다) 좌묘우학>   
<향교의 배치유형-(라) 좌학우묘>   

‘가’ 유형은 문묘가 앞에 오고 강학 구역이 뒤에 오는 ‘전묘후학(前廟後學)’유형이다. 이 유형은 우선 향교가 입지한 곳의 지형이 반드시 평지이다. 즉, 동일한 선상에서 유교적 위계성은 ‘후(後)’보다 ‘전(前)’이 당연히 앞선다는 논리이다. 이 형식의 건축적 규범이 잘 드러난 향교로는 조선시대 부와 목의 큰 고을에 건립됐던 경주·전주·나주향교와 이 외에 함평(현)향교·영광(군)향교·정읍(현)향교 등도 있다. 한편, 평지이면서도 전묘후학의 배치형식을 취하지 않은 향교도 몇 곳이 있는데 이들은 주로 향교의 기능이 쇠퇴한 조선 중기 이후에 설립된 향교들이다.

‘나’ 유형은 ‘가’ 유형과 반대로 앞쪽에 강학 구역이 오는 ‘전학후 묘(前學後廟)’ 형식이다. 이 유형은 한국 향교 건축 배치의 절대적인 유형으로 전국(남한) 향교의 약 90%가 이 유형으로 되어있다. 이 배치 유형을 결정짓는 물리적 요소는 무엇보다도 지형인데 거의 대부분 선택된 입지는 야트막한 야산의 산록 경사지가 되고 있다. 이는 건축적으로도 공간의 위계성(상·하 개념)과 잘 부합되는 조영 규범으로 여겨진다. 즉, 자연지리상 평지의 발달보다는 산지가 많은 우리나라의 형편을 감안할 때 전학후묘의 배치기법은 자연과 건축, 그리고 유교의 기본 정신이 3박자로 조화된 우수한 건축 기술로 여겨진다. 한편, 경사지에 입지한 향교 중 ‘전묘후학’ 형식을 한 향교는 한곳도 없다.

<전라남도 나주향교 배치도>   
전형적인 전묘후학의 배치구조를 보여준다.

‘다’와 ‘라’ 유형은 두 구역이 직렬이 아닌 병렬식으로 놓이는 형식이다. 좌향 기준으로 좌측에 문묘가 놓이면 좌묘우학(左廟右學), 그 반대이면 좌학우묘(左學右廟)가 된다. 전국적으로 ‘다’ 유형은 제주향교 등 4개소, ‘라’ 유형은 밀양향교 등 12개소가 보인다. 이러한 형식은 주로 남 부지방 향교에서 많이 보이고 건립시기도 조선 후기로 한정된다. 지형은 경사지와 함께 평지도 보인다.

<강학 구역의 건물조합 형식>   
경상남도 울산향교(전재후당형, 17세기 조성)(좌) 전라남도 고흥향교(전당후재형, 18세기초 조성)(우)

전학후묘 배치에 있어 강학 구역 내의 건물 조합 패턴에도 ‘전재후당(前齋後堂)’과 ‘전당후재(前堂後齋)’의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이러한 구조는 지역적으로 경상도 지역에서는 전자 유형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후자 형식은 익산향교 한 곳만을 제외하고 전라도 지역의 모든 향교가 전당후재 형식으로 되어 있다. 중부 및 강원도 지역은 두 형식이 혼재되어 있다. 이상과 같이 영·호남지방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단순히 지역 유림에 의한 조영 인식의 차이인지 아니면 영남학파와 기호학파라는 성리학적 사상이 내면에 있는지는 향후 검토해 볼 과제로 여겨진다.

[필자] 김지민
87)『동문선』 권71, 「영해부 신작소학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