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제2장 불교 사상의 확립과 일상의 신앙생활2. 신앙의 실천과 불교 대중화

지장 신앙

<지장보살도>   
지옥의 중생을 구제한다는 지장보살을 그린 고려 후기 불화이다. 신라의 지장보살은 참회 실천행의 경향이 강하였다.

지장보살은 석가가 입멸하고 나서 미륵이 출현하기까지의 부처가 없는 혼탁한 말법 시대에 석가의 부촉을 받아 곳곳마다 몸을 나타내어 하늘에서 지옥에 이르는 모든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바람을 세운 보살이다. 지장 신앙은 특히 지옥까지 구제한다는 점에서, 망자 구제 신앙으로 폭넓은 기반을 이룰 수 있었다. 지장 신앙의 근본 경전은 『대승대집지장십륜경(大乘大集地藏十輪經)』·『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願經)』·『점찰선악업보경(占察善惡業報經)』 등이다.

신라의 지장 신앙은 진표에게서 가장 두드러진 모습을 볼 수 있다. 8세 기에 활동한 진표는 출가하여 진정한 계를 얻기를 원하여 명산을 두루 찾아다닌 뒤 부안 지방의 선계산 부사의암에서 몸을 던지는 망신참의 수행에 의해 지장보살의 청정한 계를 받았다. 다시 정진한 진표는 이제 미륵으로부터 『점찰경』과 수행을 증명하는 간자 189개를 받았다. 진표는 이전부터 시행되어 오던 점찰법에 미륵과 지장 신앙을 강조하여 새로운 점찰법을 수립하였다.141)

<석굴암>   
가난한 김대성이 육륜회에 시주하여 재상의 집에 환생한 후 현생과 전생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와 함께 창건하였다고 한다. 토함산 중턱에 백색의 화강암을 이용하여 인위적으로 석굴을 만들고, 내부 공간에 본존불인 석가여래불상을 중심으로 주위 벽면에 보살상, 제자상, 역사상, 천왕상 등 총 40구의 불상을 조각하였으나 지금은 38구만이 남아 있다.
<석굴암>   
흑백 사진은 1913∼1915년에 이루어진 1차 중수 이전에 촬영한 것이다.

진표는 이를 바탕으로 금산사에서 점찰법과 참회행을 실천하는 교화를 펴서 태현과는 다른 법상종의 한 계열을 이루었다. 금산사에 이어서 속리산과 아슬라주(阿瑟羅州, 지금의 강릉 지방)에서 계법을 설하고 금강산에 발연사를 세워 점찰법회를 열었다. 이러한 진표의 활동은 경덕왕을 비롯한 많은 사람의 후원을 얻을 수 있었다. 진표의 활동은 제자 영심의 속리산 길상사로 이어지고, 다시 헌덕왕의 왕자 심지에게 전해져 동화사에서 전개되었으며, 신라 말에는 석충에 의하여 왕건에게 연결되었다.

진표가 선도한 지장 신앙은 점찰계법에 의한 계율의 실천을 강조하는 적극적인 신앙이었는데, 경주에서 떨어진 지방의 일반 서민에게 깊숙이 전파되어 왕성한 면모를 이루었다.

신라 사회에서 점찰법회는 일찍이 원광 이래 꾸준히 이루어졌다. 원광은 계율에 의지하여 참회하는 법으로 우매한 사람을 깨우치기 위해 자신이 머물던 가서사에 점찰보를 설치하여 지속적으로 유지되도록 하였다. 안흥사의 지혜는 경주의 서쪽에 있는 선도산 신모의 시주와 권유로 매년 봄가을로 선남선녀를 모아 널리 일체중생을 위해 점찰법회를 열도록 하였다. 원효와 교유하였던 사복 모자를 위해 창건된 도량사에서는 매년 점찰회가 행하여졌다. 불국사를 창건한 김대성(金大城)은 신문왕 때에 점개가 흥륜사에 육륜회(六輪會)를 설치하려 하자 토지를 시주하였고, 이 공덕으로 재상의 집안에 환생하였다고 하는 설화를 남겼다. 육륜회는 점찰의 세 가지 내용인 십륜·삼륜·육륜 중에서 과거·현재·미래 삼세의 과보를 점치는 육륜상법을 실천하는 모임이었다.

[필자] 정병삼
141)홍윤식, 「신라 시대 진표(眞表)의 지장(地藏) 신앙과 그 전개」, 『불교학보』 34,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1997, 355∼3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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