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장시에서 마트까지 근현대 시장 경제의 변천을 내면서

역사를 시대적으로 구분해 보면 사회적으로 큰 변화가 일어나던 때가 있다. 우리 역사에서 경제적 측면, 특히 상공업의 발달이라는 면에서 커다란 변화가 나타났던 시기 중 하나는 조선 후기였다. 그 이전 시기에는 보이지 않던 많은 변화의 모습이 이 시기에 들어 여러 방면에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다양한 물품이 상품화되었으며, 대외 교역도 전례 없이 활기를 띠었다. 상품 유통이 대량화·상설화되었으며, 본격적인 화폐 경제 시대가 열렸다. 또한 권력이 없더라도 부(富)를 소유하고 확장해 나갈 수 있게 되었으며, 부에 대한 사회적 가치관과 관념도 바뀌었다. 19세기 후반에 조선을 여행한 서양인이 당대 최고의 권력자였던 한 인물을 가리켜 그가 곧 조선 최대의 상인이라고 이야기한 것도 당시 경제에 관한 사회적 인식이 예전과 크게 달라졌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양반 사대부가 본분을 잊고 천업(賤業)인 상업에 관여하고 있다는 기존 양반 관료들의 비판과 개탄은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되었다. 조선 후기 이래 심화되기 시작한 경제관의 변화는 실로 이전 시대와 뚜렷하게 차별되는 것이었다.

이 책은 조선 후기 이후 나타나기 시작한 이런 새로운 현상들이 개항기와 일제 강점기를 거쳐 광복 이후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전개되어 갔으며, 아울러 시대와 상황이 바뀜에 따라 어떠한 변화 양상을 보였는가를 추적해 보았다. 그럼으로써 조선 후기-개항기-일제 강점기-광복 이후를 관류(貫流)하는 상공업 분야의 전반적인 흐름을 파악하고, 앞으로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살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를 진단해 보고자 하였다.

먼저 제1장에서는 조선 후기 이후 성행하기 시작한 장시(場市)의 성립과 발달상을 살펴보았다. 장시의 기본적 성격과 기능 및 그 변화의 과정을 계기적으로 검토하여 상업사에서 장시가 어떠한 역사적 의미를 지니는가를 구체적으로 드러내 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대동법(大同法) 실시에 따라 더욱 확산된 장시가 내부적으로 어떠한 질적 변화를 겪게 되는가를 고찰하였다. 이어 각 지방 장시들 사이에 나타나는 연계성의 강화와 시장권이 형성되는 배경을 살폈다.

한편 17세기 이후 장시의 발달과 함께 나타난 상업계의 변화 가운데 주목되는 포자(鋪子)의 설치와 관련하여 그 기본적인 성격을 살피고, 포자의 기능과 장시 발달과의 접합성을 고찰하였다. 아울러 장시가 확산되면서 나타나기 시작한 전국의 유명 장시에 대한 개별적인 검토를 통하여 해당 장시가 지니는 상업사적 의미를 부각시키고자 하였다. 아울러 약령시, 우시장과 같은 특수 시장의 상업적 특성도 검토하였다.

장시는 상업적 교역 시장으로서의 의미가 가장 컸지만, 각종 정보가 수집되고 홍보되는 사회적·문화적 기능도 수행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장시와 일반 백성들과의 관계가 비단 물화(物貨)의 교역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드러내 보이고자 하였다. 끝으로 유형원, 유수원, 우하영, 정약용 등 대표적인 실학자들이 장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고, 장시의 미래 방향을 어떻게 설정하고 있었는가를 검토하여 당대의 지식인들이 지니고 있던 장시, 나아가 상업에 대한 관념의 일단을 들여다보았다.

제2장에서는 조선 후기에 활성화되기 시작한 다양한 상품의 생산과 유통 과정을 검토하였다. 쌀과 곡물, 인삼, 담배, 직물, 채소 등 상업적 작물의 생산과 상품화 과정을 알아봄으로써 조선 후기의 상업 발달상의 일면을 살폈다. 이어 민영화 과정을 통하여 발달해 가고 있던 수공업계의 변화상을 조선 전기를 비롯한 이전 시기와의 비교를 통해 구체적으로 알아보았다. 공장에서의 장인(匠人)의 이탈과 수공업의 민영화 개혁에 따른 수공업 제품 생산의 활성화 과정이 주된 검토 대상이었다.

상품 유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도로, 수로 같은 유통로에 대한 검토가 앞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에 따라 전국 도로망의 상황과 여건, 이를 통한 물류의 이동 현상을 살폈다. 이어 수로의 관리 상태와 물자 운송을 위한 선박의 건조와 유지 및 확보를 위한 대책의 수립과 시행, 나루의 성장과 함께 새롭게 형성되기 시작한 신흥 도시의 발달 모습을 검토하였다. 아울러 물자의 보관을 위한 조창(漕倉)과 같은 창고의 설치, 물류 이동에 따른 지역 향촌 경제의 활성화 양상을 구체적 물종(物種)의 예를 통해 살폈다.

19세기 말 외국 열강과의 통상 조약이 잇따라 체결됨에 따라 상업계는 이전과는 또 다른 양상의 변화를 겪게 되었다. 제3장에서는 이 시기의 상업 발달과 대외 무역을 다루었다. 먼저 개항 이후 상업계의 동향과 상업관의 변화상을 살폈다. 이어 외국 상인의 침투가 본격화되기 바로 전 단계의 국내 시장의 발달 모습을 검토하고, 근대적인 상회사들이 설립되는 배경과 전개 과정을 알아보았다. 아울러 조선 후기 이래 발전해 오던 상업적 농업의 좀 더 진전된 모습을 추적하기 위해 개성 지방 중심의 인삼 경작과 홍삼 가공업, 연초 제조업의 발달 과정을 검토하고, 이러한 분야들이 일제에 의해 재편되는 과정을 고찰하였다.

개항 이후 새롭게 등장하고 발달하기 시작한 신흥 개항장을 중심으로 시장권이 형성되고, 이를 근간으로 전개된 상품 유통의 양상도 중요한 관심의 대상이었다. 이어 서울, 개성, 인천 등 대표적인 상업 중심지에서 성장한 도시 거상(巨商)의 활동에 대해서도 검토하였다. 한편 개항장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객주(客主)의 존재와 이들의 상업적 추이도 이 시기 상업사에서 매우 주목받고 있는 고찰 대상이었다. 아울러 객주의 활동을 위축시키고 자국 상인의 활동을 보호·강화하기 위한 일제의 침투 과정의 특성과 이에 대한 객주들의 대응 방식과 형태 등을 함께 검토하였다.

마지막으로 외국과 체결한 통상 조약의 성격과 이를 통해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열강의 무역 경쟁 양상, 구체적인 품목별 수출입 현상 등을 살피고, 외국과의 불평등 조약에 의해 왜곡되어 가는 국내 산업 구조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제4장에서는 일제 강점기 기간 동안 서울을 비롯한 조선의 전통적 상업계가 식민지 구조 속에서 어떠한 변화를 겪게 되었으며, 광복 이후부터 산업화 단계에 이르는 시기의 현대 서울에서는 어떠한 시장 변화와 상품 유통이 이루어졌는가를 검토하였다. 먼저 철도의 개통 등 새로운 교통 운송 체계의 등장과 시장 규칙(市場規則)의 반포 등으로 말미암아 변화할 수밖에 없었던 도시의 상권과 지방 장시의 모습을 고찰하고, 다량으로 유입되었던 외국 상품의 거래 양상 등을 살폈다.

본격화되는 일본 상인의 침탈과 이에 맞섰던 민족 상인들의 상권 수호 노력은 이 시기 경제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목의 대상이다. 시전(市廛) 상인들의 폐점, 철시 운동, 1920년대 초부터 1930년대 말까지 전개된 경제 자립 운동의 전개 과정과 특징,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성장해 가던 민족 상인들의 활동과 상회사 설립 운동 등에 대한 고찰을 통하여 민족 상인들이 벌였던 항일의 움직임을 살폈다.

이어 남문 안장에서 남대문 시장으로의 변화 과정과 조선 상인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던 동대문 시장의 운영 실태 등을 검토함으로써 전통 시장의 변모 양상을 알아보았다. 또한 전혀 새로운 형태의 영업장으로 등장한 백화점의 경영상의 특성과 의미 등을 종로와 충무로에 자리 잡고 있던 조선인과 일본인이 운영하던 백화점의 예를 통하여 구체적으로 검토하였다.

끝으로 광복 이후 새롭게 재편되는 서울 상권의 변화상과 이전 시기에는 없던 새로운 상품의 등장으로 나타나는 거래의 양상을 검토하였다. 아울러 경영자와 체제, 운영 방식 등에서 많은 변화를 겪은 백화점 업계의 경영사적 특징을 알아보고, 슈퍼마켓과 대형 할인점 등의 등장으로 인한 상권과 유통 및 판매와 거래상의 특성 등을 살폈다.

요즈음 한국 사회에 열풍처럼 일고 있는 전 국민적 관심사의 하나는 주식, 펀드, 부동산 등을 매개로 한 재테크 분야이다. 마치 재테크만이 현대 한국인들의 삶의 목적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스스로 자신의 자산을 늘려 나가겠다는 데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이의를 달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여러 연구자들이 이미 지나간 시대일 뿐만 아니라, 얼핏 보기에 현실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조선 후기부터 광복 이후까지 상업사의 전개 과정을 살펴보는 까닭은 무엇일까.

과거의 조상들과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여건은 분명 다르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의 선조가 어떻게 부를 축적하였으며, 한편으로는 왜 그렇지 못하였는가라는 점은 현재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옛날의 부의 축적 방식이 지금에도 통할 수 있는가 하면, 질적으로 전혀 달라진 측면도 있다.

그러나 항상 귀 기울일 만한 이야기는 돈은 돈답게 벌어서 돈답게 써야 한다는 말이 아닐까 한다. 특히 자본주의의 역사가 일천한 우리나라에서는 방법과 수단의 정당성을 버려둔 채 부의 축적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이들이 많다. 돈은 무엇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써야 한다는 속언도 있지만, 축재의 방법이 정당성을 상실한다면 존경은커녕 지탄의 대상이 되기 마련이다. 우리에게 감동을 자아내는 이는 평생 동안 힘껏 벌어 아껴 쓰며 저축한 귀한 돈을 사회에 선뜻 기부한 시장의 할머니 같은 분들이었다. 근래에 대기업을 경영하는 분들 중에도 사회적으로 칭송받을 만한 선행을 하는 이들이 나타나고 있지만, 대자본을 축적한 큰 부자에게 감동받은 기억은 거의 없다. 내가 애써 번 돈을 무조건 남에게 내놓으라는 사회 파괴적 요구를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선진국의 존경받는 기업인들이 남의 강압적 요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존경받을 만한 일들을 하는 사례를 상기해 보았으면 한다.

과거의 상인들이 벌였던 상행위 중에도 상도(商道)에 어긋나는 예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용과 정직, 근검과 봉사를 신조로 하는 상인다운 상인도 분명 존재하였다. 상당수의 개성 상인이 그러하였으며, 일제 강점기에 조국의 독립을 위해 기업가로서의 몫을 다한 분들이 그랬다.

불과 50여 년 전 1인당 국민 소득 100불대였던 우리나라는 이제 세계 10위권의 무역 대국으로 성장하였다. 문자 그대로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게 한다. 부작용과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우리는 실로 엄청난 발전과 성장을 거듭해 왔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세계로부터 좀 더 성숙되고 격조 있는 지구촌의 일원이 되기를 요구받고 있고, 또한 기대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상도의와 기업 윤리가 유지·회복되고 기업가가 진정 존경받는 사회적 의식과 가치관이 형성된다면, 21세기의 한국 사회는 천민자본주의라는 비아냥거림에서 벗어나 선진 사회로 한층 진일보하지 않을까.

2007년 10월

세종대학교 교수

[필자] 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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