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광고, 시대를 읽다를 내면서

우리 사회의 매스 미디어(mass media)는 모두 상업적 시스템 속에 있다.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매스 미디어 산업도 영리 추구가 존재의 이유이다. 또한 대량 생산, 대량 소비, 표준화 같은 현대 산업의 양식도 매스 미디어 산업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으며, 매스 미디어 상품도 다른 소비재와 다르지 않다. 흔히 말하는 ‘뉴스 공장’이니 ‘텔레비전 산업’이라는 표현이나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가전제품의 하나로 보는 시각도 바로 여기서 나온다.

그렇다고 매스 미디어 산업이나 매스 미디어 상품이 다른 것들과 똑같지는 않다. 일반 산업이 상품이나 서비스를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생산자-소비자의 관계를 바탕으로 한 일원적인 시장을 갖고 있다면, 매스 미디어 산업은 특이하게 두 가지 상품을 판매하는 이원적인 시장을 갖고 있다. 먼저, 매스 미디어는 매스 미디어 상품(신문, 텔레비전 프로그램 등)을 소비자에게 판매한다. 동시에 광고주에게 소비자(독자, 시청자와 같은 수용자)를 판매한다. 이렇게 매스 미디어 기업의 수입 구조는 매스 미디어 상품 판매와 광고 판매에 따른 두 가지의 수입으로 구성된다. 이런 수입 구조는 매스 미디어 산업의 비밀을 푸는 열쇠이다.

매스 미디어 기업의 수입 구조 중 한 부분을 차지하는 광고(판매) 수입은 시간이 흐를수록 비중이 더 커지고 있다. 신문, 방송, 잡지 등 뉴스 미디어의 경우 광고 의존도가 심화되면 될수록, 저널리즘 기능이 약화되기 마련이다. 광고주들은 당연히 상품 구매력을 갖춘 중산층 이상 수용자를 선호한다. 중산층 이상 계층은 대개 보수 안정 지향적이므로 광고를 수주하려는 뉴스 미디어도 보수 안정 지향적 논조를 가지려 한다. 이러한 추세는 광고를 수주하기 어려운 진보적인 언론이 언론 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든 환경을 만들어 결과적으로 매스 미디어 시장에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될 가능성을 위축시키게 된다.

오늘날 신문과 방송 등 주요 뉴스 미디어의 광고 의존도는 평균 80%에 육박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니 기자들이 정치권력이나 사주(社主)의 힘보다 광고주의 힘이 뉴스 생산 과정에서 훨씬 더 위협적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언론 개혁 운동도 광고주의 힘을 어떻게 하면 차단하면서 언론의 비판적 기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인지에 주목하고 있다. 뉴스 미디어의 광고 의존도가 높거나 특정 기업의 광고를 지나치게 많이 수주하게 되면 언론의 공정성과 객관성은 침해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광고와 매스 미디어의 관계, 특히 광고와 뉴스 미디어의 관계는 우리 사회의 공론 형성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 책의 제1장은 한국 근현대 언론의 역사 속에서 광고가 주요 뉴스 미디어이자 매스 미디어인 신문, 방송과 어떤 관계를 맺어 왔는지 추적한다.

광고는 대중이 매스 미디어를 저렴하게 접할 수 있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만약 광고가 없다면 우리는 일간 신문 한 부를 수천 원, 잡지를 수만 원에 구입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매스 미디어가 등장하고 대중화될 수 있었던 데에는 광고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광고 수입은 매스 미디어를 운영하는 필수적인 재원이기도 하다.

매스 미디어가 존립하려면 광고 혹은 광고 시장의 존재를 전제로 해야 한다. 물론 광고 시장이 존재하지 않아도 독자에게 미디어 상품을 팔아서 생존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뉴스 미디어의 독립성은 높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매스 미디어가 시장 원리, 시장 경쟁에 직면하면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었다. 광고 또는 광고주의 위력은 뉴스 미디어나 매스 미디어의 힘을 크게 제약하였다. 그것은 단순히 매스 미디어와 광고의 권력 다툼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문과 방송이란 뉴스 미디어의 저널리즘적·정론적 기능의 위축이라는 사회적 비극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신문과 방송 등 뉴스 미디어가 우리 사회의 민주적 여론을 형성하는 데 주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 매스 미디어 발달사와 광고의 역사를 동시에 살펴보면, 미디어가 정파적(政派的) 성격을 뚜렷이 하며 자본의 힘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정론지(政論紙) 시대에서 점차 광고의 힘에 압도당해 상업 미디어의 시대로 이행해 가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근대 조선 때부터 미디어의 성격을 규정해 온 정치권력의 힘을 뛰어넘는 자본 권력이 갈수록 맹위를 떨치고 있는 것이 최근의 상황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매스 미디어 광고는 현대 대중 문화의 핵심으로써 우리의 가치관을 포함하여 일상생활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한때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입니다.”라는 광고 카피가 유행한 적이 있는데, 한 초등 학교에서 “침대는 가구인가?”라고 묻는 시험 문제에 “가구가 아니다.”는 오답이 나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이렇게 광고의 영향력은 상식을 바꾸어 놓을 정도로 우리 의식 세계에 깊숙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논의에서도 텔레비전과 광고 문화가 중심적인 위치를 점한 바 있다. 광고의 경제적 힘은 연예 산업 등 대중 문화는 물론이고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가 음료 광고에 활용되었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전위 예술(전위 영상)까지 흡입하고 있다. 최고의 예술적 능력을 가진 인력과 막대한 자본이 광고 제작에 투입되기 때문에 광고 영상의 예술적 밀도는 대단히 높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우리의 의식 세계, 소비 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광고 콘텐츠 혹은 광고 텍스트에 대한 관심이 높다. 광고 텍스트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그 사회의 문화적·정치적 흐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러할 것이다.

그래서 인쇄 미디어의 광고를 중심으로 근현대사에 있어서 근대의 형식과 내용을 발견하려는 연구과 저술이 최근 눈에 많이 뜨인다. 이 책의 제2장에서는 광고 텍스트와 사회 제도의 관계를 근대사적 흐름 속에서 살펴볼 것이다. 우리의 근대가 형성된 기간이었던 근대 조선과 일제 강점기의 주요 광고 텍스트를 정치·사회·문화·경제적 관점에서 다각적으로 접근하여 분석할 것이다. 제2장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근대적 의미의 광고가 등장하는 과정을 추적해 본다. 비록 자본주의의 발전과는 조응(照應)하지 않았지만 시장에서 상품 판매를 공지하는 간판이나 벽보 등의 공시물에서 전근대적 광고의 모습을 우리 근대사 속에서 추적해 보았다. 이어서 『한성주보(漢城周報)』부터 시작된 근대적 광고의 모습을 광고 텍스트를 중심으로 분석하되, 당대인과 당대 언론이 ‘광고를 어떻게 보았는가’라는 인식 방식에 주목하였다. 일제 강점기 광고는 식민 지배 이데올로기와 일본 상품을 통한 문화적·경제적 식민주의의 양상으로 평가하였다. 이러한 일제 강점기 상품 광고는 왜곡되고 이식된 소비 문화의 표현이었으며, 그 속에서 물산 장려 운동(物産奬勵運動)의 한계는 분명하였다.

광고는 경제적 기능도 한다. 즉, 상품 판매를 촉진시켜 유효 수요를 창출하여 소비 추세를 형성하고, 유통 효율성을 강화시켜 경제 성장에 기여한다. 광고가 자본의 집중과 집적으로 과잉 생산이 일반화된 독점 자본주의 체제를 재생산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사회의 경제 제도를 뒷받침하는 광고도 그 자체가 산업화되어 있으며, 그 산업의 형식과 내용은 광고 텍스트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매스 미디어와 경제, 문화 등에 직·간접적으로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 책의 제3장에서는 광고 산업의 관점에서 우리 광고의 역사에 접근해 본다. 산업이란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표준화, 대량 생산, 대량 소비가 일반적 원칙으로 적용된다. 물론 광고 산업은 문화 산업이자 이데올로기를 생산한다는 의미에서는 독특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광고가 자본주의 경제에서 하는 역할이 너무나 지대하기 때문에 광고를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이다.

제3장에서는 광고 산업의 구조를 형성하는 광고 미디어, 광고주, 광고 대행사 등의 주요 요소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매스 미디어의 광고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뿐 아니라 자본주의 경제에서 광고 산업의 역할도 강화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광고 산업이 한국 사회의 경제 성장과 더불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살펴보았다. 이를 위하여 광고 미디어의 변화 혹은 지배적 광고 미디어의 변화를 고찰하였고, 이어서 시대별로 광고주의 변화를 추적하였다. 그리고 광고 대행사, 즉 광고주를 대신하여 광고물을 기획·개발·제작하여 광고 매체에 싣는 크리에이티브 및 영업 업무를 담당하는 기업 조직이 등장하게 되는 1953년부터 그 역사적 흐름을 분석하였다. 1960년대에 들어서 라디오, 텔레비전, 신문, 잡지 등 4대 미디어가 등장하여 광고 미디어가 모두 자리를 잡게 되고 광고 대행사 제도도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광고 산업의 기본적인 제도가 사실상 모두 형성되기에 이른다.

광고는 현대 소비 대중 사회의 첨병이다. 현대 사회에서 광고는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인 소비 이데올로기를 생산하고 배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대중 사회의 단계를 거쳐 이미 고도 소비 사회로 넘어왔고 그 과정에서 광고는 경제 발전의 추동력으로 작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상품 이미지와 광고 이미지를 통해 자본주의적 소비 사회의 생활양식을 사회와 우리 의식 속에 깊숙이 침투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이 책의 제4장에서는 한국 소비 대중 문화 형성사의 흐름과 함께 그 속에서 광고의 의미와 역할을 추적해 본다. 근대 소비 문화의 형성은 근대 도시 의 성장과 그 핵심적인 소비 공간인 백화점의 등장, 소비 문화의 대중적 확산을 노리는 박람회 등의 제도를 구성 요소로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근대 소비 문화는 일제의 강점으로 왜곡된 식민지적 근대 사회의 틀에 갇히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라디오, 신문, 잡지 등 광고 미디어의 등장과 함께 소비 문화가 태동하지만 정국의 흐름에 따라 일제의 식민지 지배 정책, 전쟁에 동원되는 수단으로 광고가 전락하기도 하였기 때문에, 기형적인 소비 문화가 형성되었다.

미군정기 이후 미국의 대중 문화와 상품이 동시에 유입되면서 소비 문화의 양상도 미국화되었다. 그러나 1960년대의 정치적 억압은 서구적 소비 문화를 가부장적 유교 문화로 통제하는 모순적 상황을 연출한다. 이러한 정치적 억압과 왜곡된 민족주의의 흐름 속에서 광고로 만들어진 소비 문화의 형상은 당연히 세계적 보편주의나 개인주의와는 동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소비 자본주의의 흐름은 1990년대 이후 전일화되어 우리의 일상생활까지 지배하게 되었다.

광고의 역사를 미디어 발달사, 텍스트의 역사적 분석, 광고 산업적 접근, 소비 문화사적 접근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하려 하였으나, 다양한 학문 분야 연구자의 공동 작업이란 한계로 연구 관점이나 기술 방식의 간극은 좁히기 어려웠다. 그리고 광고사 분야의 일부 선구적인 업적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연구 성과가 드물어 풍부한 내용을 담지 못한 한계도 보이고 있다고 하겠다.

2007년 10월

한서대학교 교수

[필자] 이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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