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제2장 기보법의 발달과 악보2. 나라에서 펴낸 악보와 악서

시용향악보

『세조실록악보』와 같이 오음약보가 나온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이 음악 표기법에 기초하여 수많은 악보집이 편찬되었는데, 『시용향악보(時用鄕樂譜)』도 그러한 악보 중의 하나이다. 언제 누가 『시용향악보』를 편찬하였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악보에 실려 있는 노래의 내용, 형식, 음악 표기법을 비롯한 악보 체제의 측면에서 볼 때 대체로 15세기 말엽 성종 때부터 16세기 초엽의 중종 때에 이르는 시기에 장악원 악사들이 편찬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113) 세조대에 만든 6대강 16정간의 기보법으로 작성되어 있으며, 매강(每綱)을 4행으로 구성하여 제1행에는 오음약보, 제2행에는 장고법(杖鼓法), 제3행에는 박법(拍法), 제4행에는 가사를 적어 넣었다.

시용향악보』에는 고려와 조선 초기에 창작된 노래 26곡이 실려 있다. 그 중 사모곡(思母曲)·서경별곡(西京別曲)·쌍화점(雙花店)·정석가(鄭石歌)·청산별곡(靑山別曲)·유구곡(維鳩曲)·귀호곡(歸乎曲)·상저가(相杵歌)·풍입송(風入松)·야심사(夜深詞)·납씨가(納氏歌)·유림가(儒林歌)·횡살문(橫殺門)·생가요량(笙歌寥亮) 등은 고려와 조선 초기에 창작된 노래이고, 나례가(儺禮歌)·성황반(城隍飯)·내당(內堂)·대왕반(大王飯)·잡처용(雜處容)·삼성대왕(三城大王)·군마대왕(軍馬大王)·대국(大國)·구천(九天)·별대왕(別大王) 등은 오래전부터 전해 오는 탈놀이, 처용놀이, 무가(巫歌), 불가(佛歌) 계통의 노래이다.114)

<『시용향악보』>   
『시용향악보』에 수록되어 있는 청산별곡(靑山別曲)이다. 세조대에 만들어진 6대강 16정간의 기보법을 채택하였는데, 매강을 4행으로 구성하여 제1행에는 오음약보, 제2행에는 장고법, 제3행에는 박법, 제4행에는 가사를 적어 넣었다.

이 중 유림가는 『시용향악보』 외에 다른 악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노래이다. 『시용향악보』에는 제1장과 악보가 수록되어 있고, 『악장가사(樂章歌詞)』에 제6장이 실려 있다. 창작 연대는 전하지 않으나 “오백년이 돌아 한수(漢水) 물이 맑아 성주(聖主) 중흥(重興)하시니”라는 내용을 통해 조선 초기로 추정하고 있다. 한시(漢詩)에 우리말 토를 단 가사로 되어 있는 유림가는 곡의 구성이 전반부와 후렴 부분으로 구성된 절가 형식(節歌形式)이어서 음악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전체는 6장으로 32정간 12강의 6절로 되어 있고, 평조이다. 곡의 주제는 훌륭한 임금이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워 만백성이 모두 즐기며 온갖 곡식이 풍작을 이루고 태평지세(泰平之世)가 되었다며 조선 왕조의 건국을 예찬하는 내용이다. 작품 내용과 아울러 궁중의 악장으로 쓰였다는 점에서, 조선 초기의 유생(儒生)들이 조선 왕조의 창업과 정책을 찬양하기 위해 창작하였으리라 추정된다.

횡살문은 『악장가사』에는 보이지 않고 오직 『시용향악보』와 『대악후 보』에 실려 전하는 노래이다. 가사는 유림가와 같이 한시에 우리말 토를 달았으며 음조는 고려 때의 악곡인 자하동(紫霞洞) 곡조로 되어 있다. 유림가와 달리 다섯 개 장으로 나누어 부른 노래로 중여음(中餘音)과 대여음(大餘音)을 가진 대엽계(大葉系) 가곡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만 2장과 3장 사이에 중여음이 더 삽입되어 있는 것이 다른 가곡과 다른 점이다. 또한 단가(短歌) 형태의 가곡조로 부른 노래였던 만큼 노래 성부에 동반된 대금, 피리, 장구 등의 반주 성부가 있다.

나례가와 잡처용(처용가)은 탈놀이나 처용놀이 때 민간 광대들이 춤을 추면서 부른 노래이다. 나례가에는 “긍에야”, “리라 리라 리더라 리라 리라니”라고 하여 음악 선율을 말로 옮겨 적은 조흥구(助興句)와 아울러 곡을 시작하는 첫머리에 붙는 입새말이 삽입되어 있다. 잡처용에는 “둥덩다리러로마”, “아으다롱다로리 대링디러리”, “아으 디렁디리리다로리” 등의 조흥구와 후렴구(後斂句)가 선율 형식으로 삽입되어 있다.

시용향악보』에는 나례가와 잡처용 외에도 입새말과 아울러 향악곡의 조흥구와 후렴구를 삽입하여 선율화한 성황반·대왕반·삼성대왕·군마대왕·대국·별대왕 등 무가나 불가 계통의 노래가 실려 있다. 이 무가나 불가 계통의 노래가 향악곡의 후렴구로 바뀐 가사를 쓰는 것은 『시용향악보』 편찬 당시에 가사를 개작하여 쓰도록 한 것과 관련되어 있다.

이와 같이 『시용향악보』는 다른 악보에서 찾아볼 수 없는 고려와 조선 초기의 노래를 수집·정리하여 오음약보로 기보하였기 때문에 음악사적 가치가 있는 고악보 유산의 하나이다.

[필자] 권오성
113)김동욱, 「시용향악보의 배경적 연구」, 『한국 가요의 연구』, 을유 문화사, 1961, 168∼171쪽.
114)박성의, 「고려 가요 연구」 상·하, 『민족 문화 연구』 4·5, 고려 대학교 민족 문화 연구소, 1970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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