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제2장 고려시대 쌀의 위상과 생산 소비 문화6. 쌀 소비 문화

우리나라 식생활 구조의 정착

우리나라의 식생활 발전 과정에서 고려시대는 밥과 반찬을 기본으로 하는 우리나라의 식단이 정착하는 중요한 시기였다. 농업 기술의 발달로 곡물의 생산량이 증가하고, 대외 관계 등의 영향으로 음식 종류와 조리법이 더욱 다양해질 정도로 음식 문화 구조가 확대·발전된 모습도 나타났다.167)

그렇다고 해도 당시로서는 쌀밥과 육식처럼 맛과 영양이 뛰어난 음식을 향유한 계층은 어디까지나 왕족을 비롯한 귀족층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한 식생활이 일반 백성에게까지 미칠 정도로 저변이 확대되기에는 아직 미흡한 단계였다. 이처럼 고려시대에 고급 음식 문화를 향유하는 계층이 사회의 일부로 한정되어 있었던 것은, 고려 사회가 지닌 귀족적 성격과도 관련하여 그 원인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고려시대는 삼국시대 후기 이래로 밥과 반찬을 중심으로 하는 우리나라의 식단이 정착된 시기여서 한층 주목된다. 삼국시대 후기에 이르면 무쇠솥이 보급되어 밥을 짓게 되었는데, 그중 밥은 물론 곡물로 만들었다. 그러한 곡물로는 쌀(米·稻)과 보리(麥類)·좁쌀(粟)·콩(豆)이 중요한 것이었 고, 그 밖에 기장·피·수수·밀·옥수수·팥 등도 있었다.

<무쇠솥>   
청주 사뇌사지(思惱寺址)에서 출토된 고려시대 쇠솥이다. 일반적인 솥 모양으로 바닥이 둥글고 몸체의 중간에 솥전이 있으며 바닥에 발이 세 개 달려 있다. 무쇠솥은 삼국시대 후기부터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면 고려시대에는 반찬으로 무엇이 있었을까? 『향약구급방』과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따르면, 순무·오이·가지·동아·박·댓무·배추·아욱·부추·상추·마늘·파·생강·소산류·토란 등을 재배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168) 이 밖에 죽순·고비·고사리·도라지 등 나물과 버섯 등을 반찬으로 이용하였고, 천초·귤피·석류 등을 향신료(香辛料)로 썼다. 이익(李瀷, 1681∼1763)은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고려 사람들은 생채에 밥을 싸먹는다고 하였고,169) 『고려도경』에서는 사신이 머무는 객관(客館)에 매 식사 때 더덕(沙蔘)을 내놓았다고 기록하였다.170)

고기류는 상당히 귀한 식품이었는데, 돼지·닭·양 등의 고기를 주로 먹었고 소는 농사와 관련하여 중하게 여기는 가축이었다. 대신에 쉽사리 구할 수 있는 해산물을 많이 먹는 편이었으며, 과실 종류로는 배·복숭아·대추·밤·잣 등을 식용으로 썼다.

[필자] 이정호
167)고려시대의 식생활에 대해서는 이성우, 『고려 이전 한국 식생활사 연구』, 향문사, 1978 ; 윤서석, 「식생활 구조의 확대기-고려시대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식생활 문화의 역사』, 신광출판사, 1999 참조.
168)윤서석, 「식생활」, 『한국사』 21(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국사편찬위원회, 1996, 579쪽.
169)이익(李瀷), 『성호사설(星湖僿說)』 권5, 만물문(萬物門), 생채괘배(生菜掛背).
170)서긍, 『고려도경』 권23, 잡속2, 토산(土産).
창닫기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