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제6장 일제와 서양인이 본 식민지 조선

5. ‘타자’에 대한 우리의 시선

오늘날 우리나라는 국민 소득 2만 달러를 전후한 시대를 맞이하였다. 이는 단순히 숫자상의 변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수입 자유화라는 개방화의 물결 속에 30, 40년 전에는 병원에 입원하여야 먹어 볼 수 있던 바나나가 요즘은 흔한 과일이 되었듯이, 사람들은 먹고사는 문제에서 벗어나 좀 더 나은 삶의 질을 추구하는 문화생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국제화의 흐름을 주위에서 제일 먼저 확인할 수 있는 것이 해외여행의 급증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는 동남아시아에서 “빨리, 빨리”라는 말이 식당, 상점에서 국제어로 통용된다고 한다.

‘빨리, 빨리’가 우리나라나 우리나라 사람을 대표한다는 말에 어떤 이는 우리가 지닌 조급성 내지 성급함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이 ‘게으르고 태만한’ 존재이기에 조선인은 지배를 받아 마땅하다고 강변한 것과 비교하면, 이러한 우리 모습에서 커다란 차이를 발견한다. 한말 일제 강점기에 조선을 지배하게 된 일본이 가장 우려한 것은 일본보다 앞서고 독자적인 문화를 수천 년 동안 지켜 온 조선인들의 자긍심이었다. 일제는 학자들을 동원하여 부정적인 조선인상을 만들고자 적극 노력하였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반도라는 지역적 요소를 강조한 ‘지리적 결정론’과 우리나라가 일본에 비해 뒤처졌다고 본 ‘정체성론’이었다.

일본인 학자 미시나 아키히데(三品彰英)는 한국의 역사가 반도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반드시 대륙에서 일어난 변동의 여파를 받음과 동시에, 반도라는 위치 때문에 항상 중심에서 벗어나 있었다.”라고539) 보았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숙명처럼 영원한 약소국이었고, 주변국에 의해 타율적으로 역사가 이끌려 나갔다고 주장하였다. 후쿠다 도쿠조(福田德三)는 19세기 후반에 조선이 세계열강과 접촉할 당시 전국적인 상품, 화폐의 보급이 없고 상공업의 사회적 분화조차도 지극히 미숙하였다고 보아 이를 근거로 일본보다 1000년 정도 뒤졌다고 보았다.540) 그렇기 때문에 낙후되고 정체된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것을 감수하더라도 정체성을 극복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세계 역사를 살펴보면 어떠한 국가도 고정된 지리적 요소 때문에 성장과 소멸이 결정되지는 않았다. 서구 문명의 근원인 아테네와 로마 문화도 반도라는 지역에서 출발하였다. 또한 여러 나라를 비교하여 발전 혹은 정체하였다고 평가하는 잣대 역시 단순히 군사력·경제력만으로 비교될 수 없는 것으로, 사회적·문화적 요소까지 고려되어야 하는 상대적인 것이다. 우리 역사의 경우에도 남북국시대 이전에는 만주와 한반도에 걸쳐 넓은 공간에서 활동하였고, 개항 당시 동아시아 삼국의 경제적 차이는 근소하였다. 결국 조선이 식민지가 된 것은 일본의 침략주의와 당시 대한제국의 정책 입안자가 국제 정세의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데서 비롯되었다. 식민지화의 원인이 일본이 주장한 부정적인 조선, 조선인 때문은 아니었다. 또한 일제 강점기는 일제 지배라는 암울한 시기임과 동시에 이에 맞서 조선, 조선인이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던 빛나는 시기이기도 하였다.

우리는 흔히 스스로를 비하하여 ‘엽전’이라고 하거나, 약속 시간을 지키기 않아 ‘코리안 타임’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부정적인 인식의 근원을 살펴보면, 대부분 일제 강점기부터 만들어진 것이다.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을 겪으면서 아무런 희망이 없었던 상황을 극복하고 오늘의 모습을 만든 주역인 우리나라 사람들은 분명 ‘게으르고, 부정적인’ 존재는 아니다. 8·15 광복 직후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라고 하였던 김구의 바람은 식민지 지배를 벗어난 우리가 만들어 나가야 할 모습이었다.

서양인이 지닌 조선에 관한 이미지는 어떻게 보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서양인과 일본인에 의해 만들어진 조선(인)의 이미지는 이후 시기 조선인의 정체성 형성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또한 식민지를 경험한 우리에게 외국인과 일본인의 조선과 조선인에 관한 ‘부정적’ 인상에는 많은 당혹감 내지 불쾌한 기분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전혀 사실과 다른 100년 전 조선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현재 우리는 ‘외환 위기’의 격랑(激浪)을 헤쳐 나왔지만 세계적인 경제 위기에서 경제적 침체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런데도 세계 10위권의 경제국으로 성장하였고, 세계 사회에 기여하여야 할 새롭게 부여된 역할도 적지 않다. 따라서 외국인의 부정적 조선인관을 비판하기에 앞서 우리 역시 반성하여야 할 부분이 있다. 우리 역시 100년 전에 서양인이 조선을 보았던 그러한 시선으로 다문화 가정이나 제3 세계 거주민을 보는 것은 아닐까. 따라서 서양인의 조선에 관한 인식을 살펴보는 것은 그들이 조선에 관해 지녔던 이미지 및 구조를 자기 자신이나 혹은 타인에게 적용하는 위험성과 유혹을 분명히 인식하게 하는 출발점으로서 의의가 있다.

[필자] 류시현
539)조동걸, 『현대 한국 사학사』, 나남 출판, 1998, 267쪽 참조.
540)하타다 다카시(旗田蘶), 이원호 옮김, 『일본의 한국관』, 탐구당, 1981, 121∼1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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