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4 지배 정치 이념의 구현: 유교건축03. 종류별 유교건축

재각(齋閣)

조상숭배는 아직까지 우리의 전통적 미풍양식으로 잘 남아 있고 그 중 제일 가까이에서 실천하는 의식이 바로 제례이다. 유교적 제사가 고려 말에 중국에서 처음 들어온 이후 제례는 유교적 사회 윤리관이 배경이 되어 조선의 사대부는 물론 일반에까지 널리 확대되어 효의 근간이 되었다.

<추원당 현판>   
전국의 많은 재각에는 선조의 경배사상을 고취하기 위해 원모당(遠慕堂), 추원당(追遠堂), 세모재(世慕齋), 모선재(慕先齋) 등의 당호를 붙인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관행되고 있는 제례의 종류는 일반적으로 다례(茶禮, 차례), 기제(忌祭), 시제(時祭)가 있다. 다례는 명절 등에 성묘와 함께 간단히 지내는 제사이고, 기제는 사대봉사(四代奉祀)라 하여 4대조(고조부모·증조부모·조부모·부모)까지 돌아가신 날에 집안에서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경상북도 안동 능동재사 배치도>   
자료: 김동인
<능동재사 전경>   

시제란 해마다 음력 10월에 5대조 이상의 산소에 가서 지내는 제사로 다른 말로 시사(時祀) 또는 시향(時享)이라고도 한다. 즉, 문중에 서 합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시제를 지내려면 제수를 장만하고, 제례절차를 논의하고, 멀리서 온 참제인의 숙박 등을 위한 건축적 공간이 필요했는데 그게 바로 재각(齋閣)이다. 재각은 지방에 따라 재실(齋室)이나 재사(齋舍) 등으로도 불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문중의 모임이나 서재 같은 강학 기능도 함께한 곳도 있다.

문중 재각의 건립은 조선 후기(특히 17세기 중반 이후)에 와서 일반화되는 역사적 산물로 주목되고 있다. 이는 17∼18세기에 일반화된 서원과 사우의 건립을 통해 향촌사회에서 가문의 지위를 높이며, 또한 당쟁에서 우위를 점하여 지역의 기반을 견고히하려는 경향과 관련이 깊다.

건축규모는 문중이 경제력, 결집력, 제례관습 등에 따라 차이가 있다. 재각의기능이 제수 장만, 문중회의, 참제인의 유숙, 묘역 관리 등 복합적인 만큼 건축공간 또한 다양성을 갖는다. 곧, 머물 수 있는 방과 부엌이 있고 아울러 모임의 장소, 창고 등도 있다. 어쩌면 재각은 그 지역의 환경에 오래 적응해 온 다소 규모가 큰 살림집과 같은 공간 구조로 정착했다.

우리나라에서 재각의 여러 모습을 가장 잘 살펴 볼 수 있는 곳은 경상북도 안동이다. 안동지방은 한국 유교문화의 산실답게 재각건축도 잘 발달되어 있다. 문화재급 재각만도 15곳 정도가 있다. 이중 안동 권씨 능동재사(陵洞齋舍), 의성 김씨 서지재사(西枝齋舍), 안동 권씨 소등재사(所等齋舍), 만운동(晩雲洞) 모선루(慕先樓) 등은 국가지정 민속자료로 지정되어 그 가치를 높게 평가받고 있다.

안동지방의 재각은 규모가 크고 무엇보다도 누각과 함께 전개되는 건축적 구성은 다른 지방의 재각과 크게 구별된다. 건축 모습은 전반적으로 몸채와 부속채 등이 중앙의 마당을 중심으로 연결된 폐쇄적인 ㅁ자형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즉, 배치와 평면 구성개념이 매우 집중적이다. 이는 이 지역 상류주택의 구성방법과 매우 유사 하다. 구체적인 배치 유형을 보면 몸채와 아래채 등이 연결된 완연한 ㅁ형(남흥·서지·가창·태장재사 등), 몸채가 ⊓형이고 그 전면에 문간 기능의 아래채나 누각이 들어서는 튼ㅁ형(청주 정씨 재사·하회 유씨 재사·운천재사 등), 그리고 본채가 ㅡ형이고 그 전면에 ㅡ형 또는 凵형 문간채가 들어서는 유형(사천재사·추원재·영모재·대지재사·고성 이씨 재사·소등재사) 등이 있다.

<전라남도 강진 영모당 배치도>   
<영모당>   

호남지역 재각은 우선 건물구성이 단순하고 개방적이다. 또한 영남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잇는 누각도 전혀 보이지 않는데, 이는 이 지역 향교건축에서도 마찬가지다. 배치 형식을 보면 ㅡ형 본채가 안쪽에 있고, 그 앞쪽에 문간채가 같은 축선상에 있는 단순한 구조이다. 본채는 향교의 명륜당과 같은 소위 ‘강당형’ 건축으로 일관된다. 즉, 중앙으로 대청을 드리고 그 양측으로 방 두 개가 구성되는 ㅡ자형의 단순한 구조이며 규모는 앞면 5칸이 제일 많다.

본채 전면으로는 솟을대문(또는 평대문)이 세워지고 그 양측으로는 주로 참제인의 유숙을 위한 방이 연속으로 드려진다. 호남지방에서 가장 돋보이는 재각은 해남 윤씨 문중의 강진 영모당과 추원당이다. 17세기에 건립된 거의 유사한 규모와 같은 배치형식으로 된 두 재각은 ㅡ형 몸채에 앞쪽에 凵형 아래채가 있는 구조로 규모와 짜임새 면에서 이 지역 제일의 재각이다.

<경상북도 안동 태장재사 전경>   

현재 재각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조선시대에 건립된 재각도 많지만 오히려 20세기 들어 더 많이 건립된 곳도 있다. 가령 전라남도 무안군의 경우는 총 73개의 재각 중 6개만이 19세기 이전에 건립되었고 나머지는 모두 1911년 이후에 건립되었다. 심지어는 1971년 이후에 지어진 것도 17개나 된다.

[필자] 김지민
창닫기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