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대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Ⅰ. 구석기문화2. 구석기시대의 유적과 유물1) 구석기유적의 분포(1) 남한의 구석기유적
(1) 남한의 구석기유적
가. 한데유적

가) 금강유역

(가) 공주 석장리유적(사적 제234호)

 충남 공주군 장기면 장암리 석장마을의 금강 북안에 위치한 이 유적은 1964년부터 1974년까지 10차례 발굴하였고, 이어서 1990년과 1992년에 또다시 발굴하여 지금까지 모두 12차례에 걸쳐 발굴을 실시함으로써 우리 나라의 구석기연구사에 있어 학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유적은 크게 2개 지구로 나뉘는데, Ⅰ지구에서는 후기 구석기시대의 집터를 확인하였고(<사진 1>>), Ⅱ지구는 석장리를 맨 처음 발굴한 1964년부터 조사하여, 27개의 지층에서 전기·중기·후기 구석기의 12개 구석기문화층를 밝혀 냈다. 최근에는 제4기지질학의 연구결과를 받아서 제1문화층(27지층)을 제2간빙기(Mindel/Riss, 약 35만∼30만년 전)에 된 강바닥 쌓임층의 전기 구석기로 설정하고(<그림 1>), 4문화층까지 전기에 포함되는 것으로 밝히고 있다.

<사진 1>석장리 제1지구 제1호 집터 모습

<그림 1>석장리 주먹대패

 그 다음에 오는 중기 구석기의 단계에는 제3간빙기(Riss/Würm, 약 12만∼7만년 전)의 강가 쌓임층에 된 5문화층(15지층)에서 아슐리안전통의 주먹도끼(<사진 2>·<그림 2>)가 출토되고 있어 주목된다. 제6문화층(15ㄱ지층)·7문화층(13지층)을 거쳐, 제4빙기(뷔름)의 비탈쌓임층에는 8·9·10문화층이 찾아졌다. 특히 9문화층은 석장리유적의 발굴계기를 만든 자갈돌찍개문화층이어서 학사적 위치를 갖고 있다. 10문화층의 연대가 50,270BP 이전으로 밝혀져 과학적 절대연대를 제시하게 되었다.

<사진 2>석장리 9문화층 주먹도끼

<그림 2>석장리 주먹도끼

 후기 구석기문화에는 11문화층(30,690BP)이 발달한 것을 확인하였고, 12문화층은 좀돌날몸돌(細石核)이 있는 것이 처음으로 확인되어 동북아시아 좀돌날문화권의 전파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서는 불땐자리·기둥자리·문돌들이 발굴되어 약 60㎡ 크기의 집터가 있었을 것으로 여겨지며, 그 규모는 8∼10명이 거주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이다. 또한 화덕자리에서 나온 숯을 14C연대측정의 결과 20,830BP가 나와 당시의 문화해석에 큰 기준을 주고 있다.

 이러한 석장리유적의 발굴조사는 우리 구석기학연구에 개척적인 공헌을 하였다는 점 이외에도, 꽃가루분석·숯분석·토양분석·동위원소를 이용한 절대연대측정 등의 과학적 방법을 이용하여 구석기연구를 당시의 기후와 자연환경의 복원 쪽으로 관심을 두게 한 점, 석기에 관계되는 낱말-특히 석기와 제작수법에 관한 용어-로 우리말을 찾아 사용함으로써 구석기를 비롯한 고고학의 한글화에 크게 기여하였다.112)

 현재 이 유적에 대한 기념관을 세울 정부의 계획이 추진중이어서 기대되는 바가 크다.

(나) 청원 샘골유적

 충북 청원군 문의면 문덕리 샘골마을에 있는 이 유적은 대청댐수몰지구 문화유적발굴조사의 일환으로 1978년에 발굴한 후기 구석기시대 유적이다.113) 유물출토의 층위가 얕아서, 오래 살지 않았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 유적에서 출토된 배모양 석기는 공주 석장리·단양 수양개·승주 곡천·화순 대전·평양 만달 등에서 출토된 것들과 비교되고 있다.

나) 한강유역

(가) 단양 수양개유적(충북 기념물 제100호)

 충북 단양군 적성면 애곡리에 있는 수양개유적은 충주댐수몰지역 문화유적발굴조사로 1983∼1985년까지, 그리고 다시 1995∼1996년에 걸쳐 발굴되었다. 7차에 걸쳐 발굴된 면적은 모두 1,250㎡로, 우리 나라에서는 가장 넓게 발굴된 구석기유적이다(<사진 3>).114)

 최근까지의 발굴로 중기 구석기문화층(Ⅴ층)-청동기문화층(Ⅱ층)이 층위로 있음이 밝혀졌다. 중기 구석기층에서는 넓게 발달된 자갈층 위에 모룻돌을 이용한 직접떼기로 만든 긁개·찌르개·주먹대패 등과 같은 다목적 석기가 출토되었다.

 수양개유적에서 가장 많은 유물이 발굴된 후기 구석기문화층(Ⅳ층)의 석기재료로는 90% 이상이 셰일 모난돌이 이용되었고, 직접떼기수법과 돌날수법, 눌러떼기수법과 같은 간접떼기수법도 보이고 있다. 여기에 잔손질을 베풀어 만든 세련되고 훌륭한 석기 가운데는 다양한 형식의 주먹도끼(<사진 4>·<그림 3>)와 전형적인 찍개도 있다. 특히 많은 수의 슴베찌르개(<사진 5>·<그림 4>)는 일본 규슈지방에서 출토되는 유물과 매우 흡사하다는 점과, 또 일정한 범위 안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된다는 사실이 주목된다.

<그림 3>수양개 주먹도끼

<사진 4>단양 수양개 주먹도끼 만드는 사람 복원상

<사진 5>수양개 슴베찌르개

<그림 4>수양개 슴베찌르개

<사진 6>수양개 좀돌날몸돌

 가장 특징적인 유물인 좀돌날몸돌은 크게 3가지 형식으로 구분되는데(<사진 6>·<그림 5>), 연구결과로는 공주 석장리에서 영향을 받아 좀돌날몸돌의 제작기술을 발달시켜, 한 줄기는 남쪽의 전남 승주 곡천·화순 대전에서 일본 규슈로, 또 한 줄기는 북쪽의 평양 만달리를 거쳐 선봉 굴포리→우스티노브카→사할린→일본 홋카이도에로의 전파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생각된다.115)

 이러한 연모 외에 많은 격지·돌망치·모룻돌 등이 그대로 50군데 이상의 석기제작소에서 발굴되어 제작행위의 복원에 결정적인 자료가 되고 있다. 또한 당시 사람들의 사냥대상물에 관한 풍요기원이나 잘 잡히기를 바라는 기원과 주술예술의 표현으로 보이는 첫소의 정강이뼈에「물고기모양」을 새긴 예술품(8.2×3.5㎝)이 발굴되어 후기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7차에 걸쳐 발굴된 면적 이외에도 유물이 20배 이상의 지역에 출토되는 수양개유적은 유물의 종류, 제작수법 및 유물의 양에서 국내 최대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구석기유적지로서 우리 나라 선사유적의 교육장으로 활용할 가치가 크기 때문에, 앞으로 더 많은 조사가 더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나) 양구 상무룡리유적

 평화의 댐 건설에 따른 화천댐수몰지역내 문화유적발굴조사의 일환으로 1987∼1988년까지 3차에 걸쳐 발굴되었다.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상무룡리에 자리잡고 있는 이 유적은 층위가 4개로 구분되는데, 문화층은 Ⅲ층(후기 구석기문화층)과 Ⅳ층(중기 구석기문화층)에 있다.

 후기 구석기문화층에서는 잘 만든 밀개·긁개 등의 연모와, 단양 수양개 Ⅱ형식과 비교되는 좀돌날몸돌이 출토되어 주목된다(<그림 5>). 중기 구석기문화층에서는 주먹도끼·찍개(<그림 6>)·사냥돌 등 큰 석기류가 출토되었다. 이 유적에서는 석기제작용 석기들과 부스러기 등이 다량으로 흩어져 여러 곳에서 출토되어, 당시 사람들이 이 곳에서 오랫동안 생활하였음을 알려준다.

<그림 5>상무룡리 좀돌날몸돌

<그림 6>상무룡리 찍개(좌)·찌르개(우)

 보고자는 이 유적에서 출토된 흑요석에 대한 X선형광분석을 하여 백두산계로 밝히고 있으며, 아울러 흑요석의 유통경로를 진부령으로 보고 있다.116) 또한 이 유적은 남한지역에서는 가장 북단에 위치하며 북한 구석기와의 연결에도 좋은 징검다리가 되고 있다.

(다) 제천 창내유적

 충북 제천군 한수면 사기리에 위치한 이 유적은 충주댐수몰지구 조사의 일환으로 1982∼1983년에 발굴된 후기 구석기시대 사람들이 세운 집터(막집)이다.

 3∼4명 정도의 인원이 당김돌을 이용해 약 10㎡의 사냥용 막집을 세우고 출입문 바로 밖의 화덕에 불을 피우며 복숭아(씨)를 따먹은 것으로 해석되어, 당시 사람들의 일상생활의 복원연구에 좀더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117) 이 집터층에서는 전형적인 후기 구석기시대(Ⅱ층)의 둥근 밀개(<그림 7>)가 특징적이다. 이 집터는 공주 석장리와 화순 대전집터와의 비교연구가 기대된다.

<그림 7>창내 둥근 밀개

(라) 양평 병산리유적

 경기도 양평군 강산면 병산 4리에 위치한 이 유적은 남한강가에 발달된 구석기유적과 문화층을 1992∼1993년에 발굴하였다.

 발굴결과 5개의 지층을 확인하였고, 그 중 2층(1문화층), 3층(2문화층), 4층(3문화층)에서 뗀석기가 나왔다. 3문화층은 중기 구석기에 해당하는 망치돌과 격지가, 2문화층은 중기·후기 구석기에 속하는 몸돌·망치·자르개·찌르개·찍개·둥근날 몸돌석기·여러면 석기·긁개 등이 나왔고, 1문화층은 새기개·망치돌·격지 등이 나왔다.118)

 한편 위의 세 지층을 산소동위원소분석과 관련하여 5번의 기후변동이 있던 13만년 전 이후의 퇴적으로 보았다. 그런데 2번의 언땅트기가 확인된 것은 전곡리·일산·금파리·석장리의 지층과도 유사성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 연대에 대한 설정은 앞으로의 연구에서 밝혀지게 될 수 있다.

(마) 제천 명오리 큰길가유적

 충주댐건설로 조사된 충북 제원군 한수면 명오리에 있는 큰길가유적은1983∼1984년 2회에 걸쳐 발굴되었다.

<그림 8>명오리 큰길가 주먹도끼

 큰길가유적은 남아 있는 유구의 범위가 좁기는 하여도, 몸돌석기인 주먹도끼(<그림 8>)와 격지석기인 긁개·밀개·찌르개 등의 석기가 출토되었다. 보고자는 이 유적을 전곡리와 중국의 丁村유적과 유사성을 비교하여 중기 구석기시대로 보고 있다.119)

다) 한탄강유역

(가) 연천 전곡리유적(사적 268호)

 전곡리유적은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의 한탄강 언저리에 넓게 위치하고 있다. 이 유적의 발굴은 1979년부터 1983년까지 이루어졌고, 그 후 1986·1991년 2차에 걸쳐 추가조사가 실시되었다. 이 유적은 아주 방대하고 훌륭한 석기들이 출토되어, 우리 나라는 물론 아시아 구석기학자들에게 큰 관심을 가지게 하고 있다.120)

 이 유적에서 출토되고 있는 아슐리안계 주먹도끼는 북부아프리카의 상고안(Sangoan)유물과 비교되고 있으며(<사진 7>·<그림 9>), 제작기법이 매우 독특하여「전곡리문화」로 주장되고 있다. 그런데 보고자들은 유적의 퇴적원인, 당시의 기후, 문화층의 문화내용에 대한 연구를 발표하면서, 유적의 연대에 대해서는 전기·중기·후기 구석기시대로 각기 다르게 보고 있다.

<사진 7> 전곡리 주먹도끼

<그림 9>전곡리 주먹도끼

 앞으로 보다 체계적인 연구조사로 전곡리유적이 차지하는 문화사적 위치를 올바르게 세워야 할 것이다.

(나) 연천 남계리유적

 경기도 연천군 군남면 남계리에 있는 이 유적은 1989·1992년에 2차에 걸쳐 조사되었다. 문화층은 전기와 후기 구석기문화층의 2개로 가름되는데, 특히 후기 구석기문화층에서는 찍개·긁개를 비롯한 부리형 밀개가 출토되었다.121)

라) 섬진강유역

(가) 승주 곡천유적

 승주군 송광면 우산리 곡천마을에 있는 이 유적은 주암댐수몰지역 조사의 일환으로 1986∼1989년까지 발굴되었다. 2개의 문화층에서 아래(Ⅶ층)는 중기 구석기문화층으로 주먹도끼가, 위쪽의 문화층(Ⅴ층)에서는 후기 구석기시대의 쐐기형 좀돌날몸돌(<그림 10>)과 스키모양 격지-밀개 등이 출토되었다. 그런데 제3문화층은 후기 구석기의 위층으로 미늘과 같은 잔석기가 나와 중석기로 보여지지만, 제2문화층보다 늦은 시기의 후기 구석기(약 15,000BP)일 가능성도 있으므로 앞으로의 연구가 주목된다.

<그림 10>곡천 좀돌날몸돌

 호남지방에서 처음 발굴된 구석기유적이라는 점과, 이 지역의 문화적 성격이 좀돌날문화권에 있음을 알려주는 유적으로 일본 규슈지방과의 비교연구가 기대된다.122)

(나) 화순 대전유적

 주암댐수몰지역 조사로 밝혀진 대전 구석기유적은 전남 화순군 남면 사수리 대전마을의 구릉 일대에 위치한 한데유적이다. 3차에 걸친 발굴결과 중석기문화층(Ⅴb), 후기 구석기문화층(Ⅴa) 및 중기 구석기문화층(Ⅳa)이 찾아졌다.

 후기 구석기문화층에서는 석기의 제작행위를 알 수 있는 모룻돌·망치는 물론 격지가 함께 출토되었으며, 유물 가운데에는 배모양·쐐기모양 좀돌날몸돌들이 출토되고, 막집이 발굴되어 주목된다. 특히 막집은 기둥구멍 24개가 확인된 네모꼴로 평면이 30㎡이다. 이 집터는 좀돌날몸돌문화기에 있었던 집터로 현재 승주 고인돌공원으로 이전하여 복원되어 있다.

<그림 11>대전 좀돌날몸돌

 여기에서 출토된 후기 구석기의 말기(약 15,000BP)의 특징을 보이는 좀돌날몸돌은 북부지방의 만달리, 중부지방의 석장리·수양개 등과 남부지방의 곡천·옥과 등에서 출토된 바 있어 비교연구되고 있다(<그림 11>).123)

(다) 곡성 옥과유적

 이 유적은 전남 곡성군 옥과면 주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1990년 발굴되었다. 석기는 후기 구석기의 늦은 시기의 특징을 보이는 좀돌날몸돌과 스키모양 격지, 톱니날석기 등이 출토되어 좀돌날몸돌문화의 전통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124)

112)최근 석장리 발굴 30주년을 맞아 지금까지의 연구자료들을 정리한 새로운 해석이 제시되었다(손보기,≪석장리 선사유적≫, 동아출판사, 1993).
113)이융조,<청원 샘골 구석기유적>(≪大淸댐水沒地區 遺蹟發掘報告書≫, 충북대 박물관, 1979).
114)이융조,<丹陽 수양개舊石器遺蹟 發掘調査報告>(≪忠州댐水沒地區 文化遺蹟延長發掘調査報告書≫, 충북대 박물관, 1985), 101∼252쪽.
115)이융조,<단양 수양개 배모양석기의 연구>(≪古文化≫35, 한국대학박물관협회, 1989), 3∼77쪽.

이융조·윤용현,<한국 좀돌날목돌의 연구-수양개수법과의 비교를 중심으로->(≪先史文化≫ 2, 충북대 선사문화연구소, 1994), 133∼229쪽.
116)최복규·황용훈 외,≪上舞龍里≫(강원대 박물관·강원도, 1989).
117)박희현,≪제원 창내 후기 구석기문화의 연구≫(연세대 박사학위논문, 1989).
118)한창균·윤내현,≪양평 병산리유적≫(단국대 중앙박물관·경기도, 1992).

―――,≪양평 병산리유적(2)≫(단국대 중앙박물관·경기도, 1994).
119)최무장,≪韓國의 舊石器文化≫(集文堂, 1994), 72∼81쪽.
120)金元龍·裵基同·鄭永和·崔茂藏·黃龍渾,≪全谷里-遺蹟發掘 調査報告書-≫(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 1983).

배기동,≪全谷里-1986年度 發掘調査報告書-≫(서울대 박물관, 1983).

배기동·최재호,<전곡리 5지구구석기유적 발굴조사(91년)보고>(≪보성강·한탄강유역 구석기유적 발굴조사보고서≫, 문화재연구소, 1994).

배기동 등,≪전곡 구석기유적-1994∼’95년도 발굴조사보고서≫(연천군·한양대 문화인류학과, 1996).
121)최무장,≪漣川 楠溪里 舊石器遺蹟≫(문화재연구소, 1991).

―――,<남계리 구석기유적 제2차 발굴조사보고>(≪보성강·한탄강유역 구석기유적 발굴조사보고서≫, 문화재연구소, 1994).
122)이융조·윤용현,<牛山里 曲川 先史遺蹟>(≪住岩댐水沒地域 文化遺蹟發掘調査報告書(Ⅶ)≫, 전남대 박물관·전라남도, 1990), 77∼139쪽.
123)이융조·윤용현,<화순 대전 후기 구석기문화>(≪先史와 古代≫3, 1992), 3∼38쪽.
124)이선복 등,≪옥과 구석기유적≫(서울대 박물관·곡성군,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