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45권 신문화 운동Ⅰ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2. 한국어 연구4) 문법의 연구
(5) 김희상의≪초등국어어전≫

 1909년에 金熙祥의≪初等國語語典≫이란 책이 간행되었다. 그 뒤 그는 이것을 개정하여 1911년에≪朝鮮語典≫을 내었고 다시 1927년에는≪울이글틀≫이란 책을 간행하였다. 이로 보아 그가 매우 열성적인 문법 연구가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김희상의 생애에 대해서는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으나≪울이글틀≫의 서문에 의하면 그는 배재학당 출신이요 나중에 개성 好壽敦女學校에서 교편을 잡은 일이 있었다.

 이≪울이글틀≫의 서문은 그의 국어문법 연구의 내력과 태도를 잘 보여 주고 있다. 그는 1901년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전일에 배운 영어문법을 복습하기 위하여 그것을 우리말로 번역하여 여러 번 읽어 보다가 우리말에도 이런 것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 영어 문법 번역을 기초로 하여 국어문법을 엮어 보려 했으나 어려움을 느끼다가 우리말에 관계되는 서적을 읽어서 좋은 참고를 얻어≪초등국어어전≫을 지었다고 하였다.

 위에서 본 것처럼 김희상은 영어문법의 번안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영어 문법의 영향이 뚜렷이 나타나 있다. 그 중에서도 관계대명사를 설정한 것과 ‘높은, 붉은, 적은, 많은, 오는, 가는, 이, 그, 저, 무슨’ 등을 형용사라고 한 것은 현저한 예라고 하겠다. 활용되는 단어와 되지 않는 단어를 구별하지 않고 명사 앞에서 명사를 수식하는 말을 모두 형용사라고 한 것은 영어 문법의 형용사를 본뜬 것이다.

 그러나 그의 문법에도 국어의 특수성을 드러내려고 한 노력의 흔적이 엿보인다. 가령 품사를 7품사로 하고 그 하나로 토를 설정했는데 이것은 주시경의 문법에서 겻, 잇, 끗이라고 세 품사로 다루었던 것을 하나로 통합한 것이다. 그리고나서 오늘날의 문법에서 말하는 조사와 용언의 어미 등으로 토를 다시 분류하였다.

 이상으로 19세기 말과 20세기 처음 10년간에 있어서 우리 나라 학자들이 거둔 국어문법 연구의 중요한 업적을 더듬어 보았다. 이 때는 문법이란 학문이 처음으로 우리 나라에 들어온 초창기였으니 외국문법의 모방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미 이 때에 국어문법 체계의 특수성을 밝히려는 노력이 있었던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