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3. 전시수탈정책3) 노동력 동원정책과 노동력 수탈(2) 노동력 동원의 방식과 규모
다. 동원의 규모

1939∼1945년까지 전시체제기 조선인의 노무동원의 규모는 일제의 패망 직후 자료 파기 등으로 현재 정확한 인원을 알 수 없다.<표 7>에서 조선총독부와 각 도의 권력기관에 강제적으로 동원한 인원을 보면, 1945년 ‘도내동원’을 빼고, 480만 1,753명이다. 1944년부터 근로보국대의 전면적인 동원을 계획했던 만큼 1945년 8월까지 ‘도내 동원’ 인원은 적어도 1944년의 50% 정도는 될 것으로 보아 약 120만 명으로 간주할 수 있다.

또 일본으로 강제동원된 인원은<표 8>과 같이 자료마다 차이가 크다. 우선 1944∼1945년에 일본으로 징용된 인원은 각각 20만 1,189명, 9,786명이다.202) 이 징용자료와 일관성을 기하기 위해,<표 8>의 통계자료 ⑤에 따라 일본으로 강제 동원된 인원을 1945년 3월 현재 72만 4,727명으로 간주한다. 1944년 28만 6,472명, 1945년 1만 622명에는 징용 인원이 포함되었다고 본다. 왜냐면 앞에서 지적했듯이 징용이 실시되면서 노무동원방식으로 징용을 선호하던 경향을 감안하면, 1944∼1945년에 일본으로 동원된 인원수(⑤)에는 징용이 포함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관 알 선 도내동원 징 용 합 계
1939 45,289명 113,096   158,385
1940 61,527 170,644   232,171
1941 46,887 313,731   360,618
1942 49,039 333,976 90 383,105
1943 58,924 685,733 648 745,305
1944 76,617 2,454,724

(886,612)
19,655

(153,850)
2,550,996

(2,704,846)
1945 44,263 23,286

(106,295)
67,549

(90,835)
합계 382,546 4,071,904 43,679

(303,624)
4,498,129

(4,801,753)

<표 7>조선내 강제동원 노동자수

*大藏省管理局,≪日本人の海外活動に關する歷史的調査≫, 68∼69·71∼72쪽.
비고:도내동원의 1944년에 두 가지 수치가 있는데, 88만 6,612명은 전체 인원의 일부 수치로 보임. 징용의 ( )는 현용징용.

자 료\연 도 1939 1940 1941 1942 1943 1944 1945.3
①제86회<제국의회설명자료> 53,120 59,398 67,098 119,851 128,350 228,320
②후생국노동국통계 38,700 54,944 53,492 112,007 122,237 280,304 6,000 667,684
③≪고등외사월보≫제51호(1944) 81,119 126,092 248,521 300,654
④≪조선경제통계요람≫ 38,800 54,954 53,952 112,320 149,730 379,747 329,889 1,128,392
⑤≪日本人の海外活動に關する歷史的調査≫(대장성관리국) 53,120 59,398 67,098 119,721 128,296 286,472 10,622 724,727

<표 8>일본으로 동원된 노무자에 관한 통계자료

*조동걸,<일제말기의 전시수탈>,≪천관우선생환력기념한국사학논총≫(정음문화사, 1985;≪한국민족주의의 발전과 독립운동사연구≫, 지식산업사, 1993), 144쪽.

1944년 현재 조선내 동원인원 480만 명, 일본쪽 72만 5,000명, 군요원 14만 5,000명을203) 합치면, 약 567만 명이다. 여기에 1945년 조선의 ‘도내동원’의 잠정 숫치 120만 명을 더하면 약 687만 명이다. 위의 일본측 자료에서 기초해 보면, 1939∼1945년 동안 조선과 일본 등지에 동원된 조선인 노무동원은 약 687만 명이다. 여기에는 징병·군위안부·여자근로정신대·학도근로대 등은 제외되었다. 이 중에서 조선내의 규모는 1945년 ‘도내동원’의 잠정 숫치를 포함하여 약 600만 명이다.204) 그리고 일본으로 강제동원된 규모는 대장성관리국의 자료에 의하면, 군요원수 6만 9,997명과 ⑤의 72만 4,727 명을 합하여 79만 4,724명 약 80만 명이다. 또 ‘징용과 알선을 포함한’ 일본 후생성자료에 의한≪조선경제통계요람≫에 따르면, 1945년 3월까지 112만 8,032명과 군요원수 6만 9,997명을 더하여 119만 8,029명 약 120만 명이다. 즉 일본으로 동원된 규모는 관변자료에 의해서 적어도 80만에서 120만 명인데, 실제는 이보다 많을 것이며 대체로 150만 명에 접근해 있다.205)

1944년 당시 남자 인구 1,263만 4,865명 중 15∼49세의 남자의 비중은 43.5%이므로 약 549만 6,166명이었다.206) 조선과 일본 등지로 동원된 약 687만 명은 중복해서 동원된 사람과 일부의 여성을 포함하면서, 농촌인구를 중심으로 전국의 청장년 남자를 대상으로 동원된 인원수이다. 또 이 시기 경북지방의 피징용자의 연령구성을 보면, 16∼40세가 전체 93.5%로,207) 기간적 청장년 남자들이 동원의 대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202)大藏省 管理局,≪日本人の海外活動に關する歷史的調査≫, 69쪽. 1945년의 징용자수는 의문스러운 점이 있다.
203)大藏省 管理局,≪日本人の海外活動に關する歷史的調査≫, 71쪽. 조선 3만 3,891명, 일본 6만 9,997, 만주 등지 4만 306명.
204)박경식은 1945년 도내동원수를 빼고, 1939∼1945년까지 조선내 강제동원된 노동자수를 480만 명으로 보고 있다(박경식,≪일본제국주의의 조선지배≫, 청아출판사, 1986, 360쪽).

강성은 역시 480만 명으로 보고 있다(康成銀,<戰時下日本帝國主義の朝鮮農村勞動力收奪政策>,≪역사평론≫355, 1979, 26쪽).
205)조선내외 강제동원수에 대한 연구자간의 차이는 김민영,≪일제의 조선인 노동력 수탈 연구≫(한울아카데미, 1995), 77∼78쪽.

일본으로 강제동원 인원과 관련하여 박경식 150만 명, 강성은 152만 명,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 150만 명(≪조선인강제연행강제노동기록≫, 일본현대사출판회, 1974)이라고 보고되어 있다.
206)이만열·김영희,<1930·1940년대 조선 여성의 존재 양태>(≪국사관논총≫89, 2000), 286·289쪽.
207)海野福壽,<朝鮮の勞務動員>(≪近代日本と植民地≫ 5, 岩波書店, 1993), 12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