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52권 대한민국의 성립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2.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립3)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 수립과 ‘민주개혁’
(2)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 수립

 북한에서는 이미 1945년 11월에 10개 행정국이 세워지면서 국가기구의 토대가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중앙주권기관을 수립하는 일은 정치권의 결단만을 남겨둔 상황이었다.754)

 1946년 2월에 들어서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을 비롯한 정당, 사회단체대표들은 북한지역에 중앙주권기관을 세우기 위한 발기위원회를 조직하였다.755) 발기위원회는 2월 5일에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수립할 것을 결정하였으며, 같은 날 개최된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중앙상무집행위원회에서도 북한에 이미 통일적 중앙정부를 수립할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되었다고 확인한 후,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수립하기 위하여 당의 모든 부서와 당원을 동원할 것을 결정하였다. 이 자리에서 金日成은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수립하기 위해 정당·사회단체 대표들과 도·시·군인민위원회 위원장, 행정국 국장 등이 참가하는 예비회의를 개최한 후, 대표협의회를 소집하여 선언서와 당면 과업을 채택하고 인민위원들을 선거할 것을 지시하였다고 한다.756)

 2월 7일에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수립하기 위한 정당·사회단체대표들의 예비회의’가 열렸다. 예비회의에는 북조선공산당 2명, 민주당 2명, 독립동맹 2명, 노동조합 2명, 농민조합 2명, 여성동맹 1명, 민주청년동맹 1명, 종교단체 1명, 朝蘇文化協會 1명 및 도·시·군인민위원회 위원장들과 행정국 국장들이 참가하였다. 회의에서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 당면 과업을 토의하고, 인민위원선거에 관하여 논의하였다.757)

 다음 날인 2월 8일에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결성하기 위한 ‘북부조선 각 정당·각 사회단체·각 행정국 及 각 도·시·군인민위원회 대표확대협의회’가 평양에서 개최되었다.758) 대표단은 정당대표 6명, 사회단체대표 8명, 행정국장 11명, 각급 인민위원회 관련자 등 137명으로 구성되었다.759)

 개회 제1일에는 김일성의<목전 북부조선 정치형세와 북부조선인민위원회의 조직문제에 관한 보고>와 그에 대한 토론이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 위원선거가 있었다. 인민위원에 추천된 23인760)의 명단은 아래와 같다.

김일성, 김두봉, 무정, 강양욱, 최용건, 이문환, 한희진, 이순근, 이봉수, 한동찬, 장종식, 尹基寧, 方禹鏞, 최용달, 홍기주, 현창형, 李箕永, 강진건, 박정애, 홍기황, 康永根, 방수영, 김덕영(≪正路≫, 1946년 2월 10일).

 그리고 이들 중에서 위원장에 김일성, 부위원장에 김두봉, 서기장에 강양욱이 추천되었다.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는 ‘북조선최고행정주권기관’으로 간주되었다. 사법권은 재판소와 검찰소에서 담당하도록 되어있으나, 이들은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사법국이 관할하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사법권이 독립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입법권 또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장악하였다. ‘최고행정주권기관’이기는 하지만, 별도의 독립된 입법부와 사법부가 없는 상태에서 임시인민위원회는 행정권뿐만 아니라 입법권·사법권까지 장악한 명실상부한 국가 최고기관이었다.761)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구성에 관한 규정>에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북한의 ‘중앙행정 주권기관으로서 북조선의 인민·사회단체·국가기관이 실행할 임시법령을 제정’(3조)할 권한을 가지며, 임시인민위원회의 ‘各 局과 각 도인민위원회 등의 옳지 못한 결정을 시정하며 또는 정지할 수 있는’(4조) 기구이다. 따라서 그동안 ‘쏘련군사령부에 속하여 있던 각 국은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 지배를 받으며 그 기관으로 편성’(8조)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임시인민위원회가 유일한 중앙주권체는 아직 아니었다. 여전히 소련군의 점령하에 있는 상황이었으며 따라서 임시인민위원회의 각 국은 임시인민위원회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쏘련군사령부에 제출할 법령과 결정의 초안을 작성’하며, 임시인민위원회와 ‘쏘련군사령부에서 발포한 모든 법령과 결정을 실시’해야 했다. 이를 통해 임시인민위원회 출범으로 중앙의 권위가 임시인민위원회와 소련군 양자에 의해 공유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법령과 결정의 초안은 임시인민위원회 산하의 각국이 작성하게 되어 있으므로 주권은 임시인민위원회에 이양되었다고 볼 수 있다.762)

 임시인민위원회 안에는 상무위원회를 두어 임시인민위원회가 폐회기간 중 최고행정주권기관의 역할을 하도록 하였다. 상무위원회는 임시인민위원회 위원장, 부위원장, 서기장 3인에 2인의 위원을 추가하여 5인으로 구성하였다. 임시인민위원회 산하에는 10국과 3부를 두었으며, 각 국장들은 인민위원 중에서 선임된다.763) 7월 10일에는 ‘행정 각 기관 간부에 관한 인사문제’를 관장하는 간부부가, 9월 14일에는 노동부가, 12월 23일에는 ‘계획 및 통계사업’을 관장하는 기획국이 각각 신설되었다.764)

 임시인민위원회의 수립에 참가한 기관·단체들에는 조공 분국·조선민주당·천도교청우당·독립동맹 등의 정당조직들과, 전평 북부조선총국·전농 북부조선총국결성준비위원회·여성총동맹·민주청년동맹 등의 사회단체, 그리고 10개의 행정국, 그리고 각급 인민위원회 등 정권기관들이 망라되었다.765)

 선출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위원들은 1946년 2월 9일, 金日成으로부터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 당면 과업에 대한 제안을 토의한 후 이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766) 통과된 11개조 ‘당면 과업’은 친일잔재의 청산, 토지개혁, 주요 산업의 발전 지원, 중소상공업 육성, 노동운동 지원, 민주주의적 교육·문화 정책 등을 주 내용으로 한다. 이는 북한정치·사회세력들이 자신의 신국가건설노선을 구체화한 것이라기 보다는 ‘당면 과업’이라는 명칭 그대로 미·소공동위원회를 앞두고 북한지역에서 우선적으로 실행되어야 할 정책과제들을 천명한 것이었다. 인민민주주의적 개혁과정에서 핵심적인 사항이 되는 주요 산업의 국유화 방안이 제시되지 않은 점은, 아직 국가수립의 단계가 아니라는 점과 함께 소련군이 장악하고 있던 주요 산업의 향방이 이 시기에 아직 미정 상태였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당면 과업’에서 제시된 토지개혁의 문제는 다음 달인 3월 5일에 전격적으로 시행된다. 그 후 3월 20일에 열리게 되는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를 전후하여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 국가건설노선은 보다 정교화한다. 위원장 김일성은 1946년 3월 23일에<20개조 정강>을 발표하였다.

1. 조선의 정치·경제생활에서 과거 일본통치의 一切 殘餘를 철저히 숙청할 것.

 2. 국내에 있는 반동분자와 반민주주의적 분자들과의 무자비한 투쟁을 전개하며 팟쇼 및 반민주주의적 정당·단체·개인들의 활동을 절대 금지할 것.

 3. 전체 인민에게 언론·출판·집회 및 신앙의 자유를 보장시킬 것. 민주주의적 정당·노동조합·농민조합 및 기타 諸민주주의적 사회단체가 자유롭게 활동할 조건을 보장할 것.

 4. 전 조선 인민은 일반적으로 직접 또는 평등적으로 무기명투표에 의한 선거로써 지방의 일체 행정기관인 인민위원회를 결성할 의무와 권리를 가질 것.

 5. 전체 公民들에게 性別·信仰 및 資産의 多少를 불구하고 정치·경제·생활 제조건에서의 동등한 권리를 보장할 것.

 6. 인격·주택의 신성불가침을 주장하며 공민들의 재산과 개인의 소유물을 법적으로 보장할 것.

 7. 일본통치시에 사용하며 그의 영향을 가진 일체 법률과 재판기관을 폐지하며 인민재판기관을 민주주의 원칙에서 건설할 것이며 일반 공민에게 법률상 동등권을 보장할 것.

 8. 인민의 福利를 향상시키기 위하여 공업·농업·운수업 및 상업을 발전시킬 것.

 9. 대기업소·우수기관·은행·광산·삼림을 國有로 할 것.

 10. 개인의 수공업과 상업의 자유를 허락하며 장려할 것.

 11. 일본인·일본국가 賣國奴 및 계속적으로 소작을 주는 지주들의 토지를 몰수할 것이며 소작제를 철폐하고 몰수한 일체 토지를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분배하여 그들의 소유로 만들 것. 灌漑業에 속한 일체 건물을 무상으로 몰수하여 국가에서 관리할 것.

 12. 생활필수품에 대한 시장가격을 제정하여 투기업자 및 고리대금업자들과 투쟁할 것.

 13. 단일하고도 공정한 조세제를 규정하며 진보적 所得稅制를 실시할 것.

 14. 노동자와 사무원은 8시간 노동제를 실시하며 최저임금을 규정할 것. 13세 이하의 소년의 노동을 금지하며 13세로부터 16세까지의 소년들에게 6시간 노동제를 실시할 것.

 15. 노동자와 사무원들의 생명보험을 실시하며 노동자와 기업소의 보험제를 실시할 것.

 16. 전반적 인민의무교육제를 실시하며 광범하게 국가경영인 소·중·전문대학교를 확장할 것. 국가의 민주주의적 제도에 의한 인민교육제도를 개혁할 것.

 17. 민족문화·과학 및 기술을 전적으로 발전시키며 극장·도서관·라디오·방송국 및 영화관 수효를 확대시킬 것.

 18. 국가기관과 인민경제의 諸부문에서 요구되는 인재들을 양성하는 특별학교를 광범히 설치할 것.

 19. 과학과 예술에 종사하는 인사들의 사업을 장려하며 그들에게 보조를 줄 것.

 20. 국가 병원수를 확대하며 전염병을 근절하며 빈민들을 무료로 치료할 것.

  (≪朝鮮中央年鑑≫, 朝鮮中央通信社, 1949, 67쪽;1950, 38·39쪽).

 ‘20개조 정강’은 미·소공동위원회에서 논의하게 될 통일임시정부가 지향할 바를 천명한 것으로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천명한 전국적 범위의 국가건설노선으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일제잔재의 청산뿐만 아니라 “팟쇼 및 반민주주의적 정당·단체·개인들의 활동을 절대 금지”하며 전 조선 인민이 인민위원회 결성의 의무와 권리를 가지는 것 등, 북한지역에서 실현한 인민민주주의적 개혁노선을 전국적으로 확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주목되는 점은 무상몰수·무상분배의 토지개혁 방안과 함께 개인 재산을 법적으로 보장하며 개인 수공업·상업의 자유를 허락·장려하는 한편 대기업소·은행·광산 등 주요 산업은 국유화할 것 등 인민민주주의적 경제정책론을 명확히 천명한 점이다. 이상의 정강은 역사적으로 일제하 사회주의 계열의 신국가건설론을 계승·발전시킨 것임과 동시에, 국제적으로는 제2차대전 후 소련군이 주둔한 지역에서의 일반적인 인민민주주의 국가건설의 길이 한반도의 특수사정 속에서 구체화된 것이기도 하였다.767)

754)예를 들어, 사법국은 1945년 11월 16일에 재판소·검찰소 등과 함께 설치되었는데, 이때 사법국 부국장으로 임명된 崔容達은 1946년 2월 11일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 사법국장으로 임명된다(≪북조선사법국포고≫1·12호). 5도 행정국의 10개 국이 그대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 10개 국으로 계승된다.
755)≪조선전사≫23, 116쪽. 김일성은 2월 9일의<목전 조선 정치형세와 북조선인민위원회의 조직문제에 관한 보고>에서 ‘발기부’라고 표현하였다(≪正路≫, 1946년 2월 10일). 발기위원회의 구성원은 위원장 金策, 부위원장 康良煜·朱寧河, 위원 金鎔範·崔璟德·金達鉉·李周淵 등이었다(김광운,≪북한 권력구조의 형성과 간부 충원, 1945. 8∼1947. 3≫, 한양대 박사학위논문, 1999, 143쪽).
756)≪김일성전집≫3(조선로동당출판사, 1992), 82∼89쪽.
757)김광운, 앞의 책, 146쪽.
758)≪正路≫, 1946년 2월 10일.
759)김광운, 앞의 책, 147쪽.
760)인민위원 총수 23인은 위원장·부위원장·서기장을 포함하지 않은 숫자로서 실제 총수는 위원장 김일성, 부위원장 김두봉, 서기장 강양욱을 포함하여 26명이라는 견해도 있다(김광운, 위의 책, 148쪽).
761)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입법권과 행정권을 다 같이 장악한 이유는, 민주주의적 선거에 의하여 조직된 독자적인 인민대표기관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휴회 중에는 최고행정주권기관으로서 상무위원회가 그 역할을 대신하였다. 상무위원회는 집행권과 입법권을 행사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법권까지도 행사하였다(한석봉,≪인민정권 건설경험≫, 사회과학출판사, 1986, 36쪽).
762)柳吉在,≪北韓의 國家建設과 人民委員會의 役割, 1945∼1947≫(고려대 박사학위논문, 1995), 195쪽.
763)≪北朝鮮法令集≫(北朝鮮人民委員會 司法局, 1947), 8쪽.
764)柳吉在, 앞의 책, 196쪽.
765)柳吉在, 위의 책, 196쪽.
766)≪正路≫, 1946년 2월 10일.
767)미·소공동위원회를 앞두고 소련측은 1946년 3월 16일 연해주군관구의 메레쯔츠코프와 쉬티코프에게<조선임시정부 수립에 대한 소·미공동위원회 소련사령부 대표단에의 훈령 초안>을 발송하였다(러시아연방대외정책문서보관소, 문서군 07, 목록 11, 문서함 18, 차례(Пор) 280, 1∼8쪽). 이 자료는<소련의 조선임시정부 수립 구상—미·소공동위원회에 보낸 훈령과 조선임시정부 각료 후보>(≪역사비평≫24, 1994), 370∼373쪽에 번역되어 있다. 이 훈령 초안에는 소련측이 향후 수립될 조선임시정부가 어떤 성격을 지녀야 할 것인지에 관련하여, ‘정부사업을 위한 기초’로서 반드시 실행하여야 할 과제로 18개 항목의 ‘정치 강령’을 제시하고 있다. 이 훈령 초안과 ‘20개조 정강’의 상관성에 대해서는 김성보(1995), 앞의 글, 85∼88쪽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