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대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Ⅰ. 청동기문화2. 청동기시대의 유적과 유물2) 청동기시대의 유적(1) 집터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1. 청동기시대
          • 1) 청동기시대의 시기구분
            • (1) 청동기시대의 개념
            • (2) 청동기시대의 시기구분
          • 2) 인골 및 편년
          • 3) 청동유물의 분포와 사회
            • (1) 각 청동유물의 형식과 그 분포
            • (2) 청동유물의 지역적 특성
            • (3) 청동기문화와 고조선
        • 2. 청동기시대의 유적과 유물
          • 1) 청동기시대 유적의 분포
            • (1) 유적 분포의 특성
            • (2) 호남·호서지방의 유적
            • (3) 영동·영서지방의 유적
            • (4) 영남지방의 유적
          • 2) 청동기시대의 유적
            • (1) 집터
            • (2) 무덤
          • 3) 청동기시대의 유물
            • (1) 토기
            • (2) 석기
            • (3) 청동기
            • (4) 뼈연모
          • 4) 야금술의 발달과 청동유물의 특징
            • (1) 청동기의 제작 기술
            • (2) 청동유물의 성분분석
          • 5) 토기의 과학적 분석
        • 3. 청동기시대의 사회와 경제
          • 1) 생업경제
            • (1) 생업
            • (2) 교역
          • 2) 사회
            • (1) 사회구성
            • (2) 의식과 신앙·예술
            • (3) 의식주생활
        • 4. 주변지역 청동기문화의 비교
          • 1) 시베리아 및 극동지역
          • 2) 중국
            • (1) 청동거울을 통해 본 중국과의 관계
            • (2) 청동유물의 동물문양을 통해 본 중국과의 관계
            • (3) 청동기의 성분분석을 통해 본 중국과의 관계
          • 3) 일본
            • (1) 일본 청동기문화의 성격
            • (2) 한·일 청동기문화의 교류관계
      • Ⅱ. 철기문화
        • 1. 철기시대
          • 1) 철기시대의 시기구분
            • (1) 철기시대의 개념
            • (2) 철기시대의 시기구분
            • (3) 문헌자료와 철기시대
          • 2) 철기시대 유적의 분포
            • (1) 유적 분포의 특성
            • (2) 주요 철기유적
          • 3) 철기시대의 유적
            • (1) 집터
            • (2) 패총
            • (3) 무덤
            • (4) 방어시설
          • 4) 철기시대의 유물
            • (1) 철기 생산기술
            • (2) 철기유물
            • (3) 토기
            • (4) 토기의 과학적 분석
            • (5) 유리공예
        • 2. 철기시대의 사회와 경제
          • 1) 생업경제
            • (1) 생업
            • (2) 교역
          • 2) 사회
            • (1) 사회구성
            • (2) 의식과 신앙·예술
            • (3) 의식주생활
        • 3. 주변지역 철기문화와의 비교
          • 1) 중국
            • (1) 여명기(은·서주시대)
            • (2) 초보적 형성기(춘추∼전국 조기)
            • (3) 형성·보급기(전국 중∼만기)
            • (4) 발전기(전한 이후)
          • 2) 일본
            • (1) 초기 철기문화의 시기별 추이
            • (2) 한·일 초기 철기문화의 교류관계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나. 집터의 특징

 청동기시대 집터는 대부분 상당한 규모의 취락을 이룬 상태로 발견되고, 한 지역에 정착하여 거주했기 때문에 서로 겹친 상태로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집터의 평면형태는 방형·장방형·원형·타원형 등 매우 다양하나, 한강유역을 포함한 북쪽으로는 거의가 장방형이며 방형 집터도 더러 발견된다. 한강유역을 제외한 이남지역, 특히 한반도 서남부지역에도 장방형 집터가 적지 않으나 원형·타원형 또는 모가 큰게 둥근 방형과 장방형 집터가 많다. 그리고 한강유역 이북의 집터는 이 시대 일반적 집터의 특징을 갖는 것이고, 한반도 서남부지역에서는 집안에 화덕이 없고 중앙에 타원형 구멍이 있는 형식, 즉 휴암리형 집터에 속하는 것이 많았다.

 수석리와 흔암리유적에서 발견된 집터는 경사면에서 집 바닥을 수평으로 파들어가서 만든, 따라서 앞쪽에는 벽이 없고 좌우벽이 직각삼각형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이 집터는 일상생활을 위한 집의 터가 아니고 계절에 따라 어로작업을 위해 일시적으로 거주한 막사로 생각된다.

 竪穴로 된 집터의 깊이는 1m가 넘는 것도 있었으나, 집터의 원래 어깨선이 그대로 남아 있기 어렵기 때문에 그 깊이를 정확히 알 수 없고, 보통 60∼30㎝ 정도로 생각되나 시기가 내려오면서 점차 얕아지는 경향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서는 이들 집터의 특징을 一般型 집터와 休岩里型 집터로 나누어 고찰하고 이들의 변화와 특이한 부분을 갖는 집터 등을 보완적으로 검토하도록 하겠다.

가) 일반형 집터

 일반형 집터는 신석기시대 후기에 새롭게 한반도에 도입되어 정착한 장방형 수혈주거가 그대로 청동기시대에 계승된 형식이다.0204) 이 형식의 집은 평면을 장방형으로 만드는 것이 기본이다. 집의 면적은 가장 작은 것이 10㎡ 내외이며 가장 보편적인 것이 20㎡ 내외이다. 보통 10㎡를 단위로 확장되고 있는데 큰 집의 경우는 70㎡가 넘는 것(공귀리 1호·호곡동 8·24호)도 있다.

 집 출입을 위한 시설이 없는 것이 많으나, 단벽에 2단의 넓은 대상계단을 만든 것(무진리 집터), 단벽 한쪽에 치우쳐서 돌출부를 만들어 출입한 것(심귀리 1호·영흥 10호·오동 8호), 단벽에 ㄱ자형 돌출부를 만들어 출입구로 한 것(중리 3호) 등이 있으나 매우 드문 것이다.

 집 바닥에 기둥을 세우는 방법은 기둥구멍이나 바닥에 직접, 또는 원시적인 초석 위에 세우는 등 여러 가지이며 이들 방법 가운데 두 가지 방법을 동시에 쓰는 경우도 있다. 이와 같은 기둥을 세우는 방법은 신석기시대부터 나타나지만, 기둥을 세우는 방법의 발생 순서는 기둥구멍 → 바닥 → 초석의 순서일 것이며, 그것은 시기가 내려오는 것과도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기둥 배치는 장벽에 평행으로 3렬 또는 4열로 세우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벽가에 있는 기둥구멍의 경우는 벽에 붙어서 작은 구멍이 많이 있는 것과 벽에서 어느 정도 간격을 두고 좀 큰 구멍이 있는 것이 있다. 앞의 것은 벽면을 긴 풀 등으로 덮어서 이것을 받친 지주들 가운데 어떤 것이 기둥 역할을 한 것이고, 뒤의 것은 독립된 기둥을 세운 것인데 이 때에는 기둥을 서로 대칭되게 세우는 일이 많았다.

 집 바닥에는 화덕을 설치하나 화덕을 한 곳에 만드는 경우와 두 곳에 만드는 경우가 있다. 어느 경우에도 바닥 중심에서 한쪽으로 치우쳐서 만들지만 드물게 중심에 만든 것(서포항 1·2호, 주암리 1호, 오동 4호, 석탄리 22호)과 두 곳의 화덕 가운데 하나를 중심에 만든 것(대평리 2호)도 있었다. 화덕이 한 곳에 있는 것이 두 곳에 있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앞서는 형식임은 틀림없을 것이다(대평리유적).

 화덕은 바닥을 파서 그 주위에 길쭉한 돌을 돌려 타원형 또는 장방형으로 만든 것이 많으나, 때로는 한쪽 변에 돌을 놓지 않은 경우(세죽리유적)도 있고, 화덕 바닥에 돌을 까는 경우(서포항유적)도 있다. 비교적 많은 집터에서 화덕 주위에 돌을 돌리지 않고 있으나, 이것은 시기가 내려와서 나타나는 형식이다.

 이 시대 집터에는 바닥에 큼직한 돌을 놓아 석기 제작 등의 작업대로 사용한 것(공귀리 4호, 입석리 1·2호, 주암리 2호, 석탄리 5호)이 있다. 그러나 작업대가 없는 경우에도 집안에서 석기 제작 등의 작업을 한 경우(옥석리 집터)도 많다.

 집터 바닥이 풍화암반이나 단단한 맨땅일 때는 그대로 집바닥으로 쓴 것 같으나, 모래바닥이나 단단하지 못할 경우에는 흔히 바닥에 진흙을 깔고 불을 때거나 진흙과 패각을 섞어서 다지고 불을 때 굳히는 경우가 많았다. 또 화덕 부근에만 진흙을 깐 경우(대평리유적)도 있었다.

 집터 바닥에는 대부분 짚이나 긴 풀 또는 돗자리 등을 깔고 벽에도 긴 풀 등으로 덮어서 생활한 것으로 믿어지나, 이와 같은 내용을 집터 조사에서 뚜렷이 밝힌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바닥에 짚이나 긴 풀을 깔았다는 보고는 대평리 5호와 옥석리 집터 등이며, 호곡동 8호 집터에서는 바닥에 폭 40㎝, 길이 150㎝의 나무판자를 깔았고, 영흥 10호 집터에서는 돗자리를 깔았다고 보고하고 있다. 집터 벽 밑에 작은 구멍들이 비교적 조밀하게 나타날 경우 그것은 벽면에 긴 풀이나 짚 등을 덮고 아래위에 옆으로 가는 나무 등으로 누른 후 이 나무를 가는 기둥으로 얽어매어 받친 흔적으로 보아야 하며, 이것은 대부분 수혈 어깨 위로 올라가서 벽체를 형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앞의<그림 3>의 대평리 2호 집터와 같이 폭 15∼30㎝, 길이 250㎝의 판자를 옆으로 벽에 붙인 경우에는 벽이 수혈 어깨보다 높게 올라갔을지는 짐작하기 어렵다.

 이 형식의 집터 가운데 특이한 것은 오동 8호 집터(<그림 9>)와 공귀리 4·5호 집터(<그림 10>)이다. 오동 8호 집터는 면적 20㎡를 조금 넘는 표준적 장방형 집터였으나 한쪽 장벽에 밖으로 돌출된 두 개의 감실형 시설이 있었다. 주거에서 분리되기 이전의 과도적인 저장시설인 듯하다. 공귀리집터는 땅을 파서 만든 긴 교통호에 작은 지호로 연결된 집터였다. 이와 같이 교통호로 연결된 집터는 여름의 장마나 호우 때 빗물이 교통호를 통해 집안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당연히 그 속에서의 주거생활이 어려웠을 것이다. 따라서 비가 적은 겨울철에 사용한 집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림 9>오동유적 8호 집터

<그림 10>공귀리유적의 집터

나) 휴암리형 집터

 休岩里型 집터는 흔히 ‘松菊里型 집터’라고도 한다. 이 유형에 속하는 집터의 특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집 크기가 작다는 것이다. 이 유형의 집터는 대부분 면적이 20㎡ 내외 이하의 것이 많고, 40㎡를 넘는 것은 1기(대야리 14호)밖에 보고되지 않았다. 둘째로는 이들 집터의 벽이 대부분 곡선, 즉 원형이나 타원형 또는 모가 크게 둥근 방형이나 장방형이며 그 가운데서도 원형이 가장 많다. 셋째로 이들 집터에는 화덕이 없다. 또 화덕이 없다는 사실과 아울러 집터 바닥 중앙에 작업괭 또는 작업공이라고 부르는 타원형의 얕은 구멍이 있다. 이 구멍은 가장 빠른 시기의 집터로 보는 휴암리나 송국리유적에서는 장경 1m 내외, 단경 0.5m, 깊이 0.2m 정도이나, 시기가 늦은 대야리나 대곡리유적에서는 깊이는 비슷하나 장경 1.3∼1.5m, 단경 0.5∼0.7m 내외로 커지는 경향이 있다.

 또 이들 집터에는 뚜렷한 기둥구멍으로 보이는 구멍은 앞의 타원형 구멍의 안쪽 양끝에 한 개씩 있는 경우가 많았고, 규모가 조금 큰 집터에서는 이 복합된 구멍을 중심으로 서로의 간격이 2m쯤 되는 위치에 대칭으로 4개의 구멍이 더 있는 경우도 있다. 이와 같은 기둥구멍 이외에도 집터 바닥 또는 벽가에 작고 얕은 구멍이 무질서하게 있으나 이들 모두를 기둥구멍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 유형의 변화된 형태는 집터 중앙의 타원형 구멍 안쪽 양끝에 있던 기둥구멍이 양끝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 있다. 또 대야리와 대곡리유적에서는 중앙에 있던 타원형 구멍이 없고 화덕도 없는 집터가 적지 않다. 이것 역시 이 유형이 극도로 변화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송국리유적에 발견된 3기의 집터에는 바닥에 수혈로 된 저장시설이 있었는데 이는 다른 집터에서는 볼 수 없는 시설이다. 휴암리형 집터에서의 주생활 양상은 집에 화덕이 없다는 사실과 아직 검토되어야 할 것으로 보이는 소위 ‘작업공’과 아울러 앞의 수혈식 저장시설 등을 감안하여 생각해야 할 것이지만 쉽지 않다. 어쩌면 집은 순수한 휴식과 수면을 위한 장소로만 사용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휴암리형 집터의 원류에 관해서는 주로 토기형식 검토를 통해 한강유역의 민무늬토기의 전통이 남하한 것이라는 견해0205)와 집터의 조형을 합천 봉계리 유적의 신석기시대에 속하는 7호 집터로 보는 견해0206)가 있다. 그러나 이들 견해는 모두 화덕의 존재 여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주거 내의 화덕의 유무는 주거문화의 기본적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한강유역의 토기문화 전통의 남하는 토기만을 비교하여 말한 것으로 주거형태와는 무관한 것이다. 봉계리 7호집터는 단순히 외관상 유사한 것일 뿐, 화덕이 있는 집터와 휴암리형 집터와는 주거로서 근본적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 형식의 집은 겨울에 난방이 필요없는 온화하고 더운 지방에 알맞는 집 형태이다.

 이와 같은 기후 조건을 갖는 어느 지역에서 일단의 사람들이 海美부근에 표류 또는 이주하여 그들이 살던 집, 즉 휴암리형 집을 정착시켜 점차 남쪽으로 전파시킨 것이라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다만 그 시원지가 어느 곳인지 알 수 없으나 선사시대 문화에 많은 공통점이 있으면서도 주거문화는 우리와 전혀 다른 전통을 갖는 일본에서도 키타규슈(北九州)를 위주로 한 西日本지역에서는 얼마간 이 유형의 집터와 그 변형집터가 발견된다. 이것은 역시 이 주거양식에서 살던 사람들이 일본으로도 건너간 것이라고 생각된다.

<金正基>

0204)金正基,<住生活>(≪韓國史論≫17, 國史編纂委員會, 1987), 76∼190쪽.
0205)國立中央博物館, 앞의 책(1990), 14쪽.
0206)申鉉東, 앞의 책, 339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