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교역의 대상
철기시대에 이르러 한반도 전역에 걸쳐 가장 광범위하게 교역의 대상이 되는 물품은 당연히 철인데, 특히 남한의 진·변한 지역에서는 철 소재를 중간제품화하여 교역의 대상품으로 삼았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중간제품화한 철 소재의 실물증거는 비교적 이른 예로서 기원전 1세기경의 창원 다호리 1호 목관묘에 부장된 판상철부 다발묶음이 있다. 그리고 기원후 1세기대의 경주 사라리 130호 목관묘에서 70매, 기원후 2∼3세기대의 김해 양동리 162·235호 목곽묘에서 30∼40매 판상철부가 각각 부장된 바 있다. 이들 판상철부가 10매 단위로 부장된 점으로 보아 화폐 대신의 거래수단 地金으로도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며,0993) 이는≪三國志≫에 변진에서 철을 화폐삼았다는 기록과 부합된다.0994) 판상철부는 鐵鋌 혹은 덩이쇠 형태로 변하면서 교역이 되어 바다 건너 일본과 제주도지방까지 수출되었다.
철기 말고도 가장 보편적이고도 광범위한 교역대상 물품으로 灰色陶器가 있다. 산화염 소성수법으로 개방가마에서 구워진 적갈색연질토기는 각 마을에서 자체 생산되어 각자 수요를 충당하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그러한 토기로서 한강유역의 中島式土器, 남해안지방의 郡谷里-勒島式土器 등이 있다.
회색도기로서 낙랑도기가 기원전 1세기를 전후로 하여 대동강유역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제작 보급되고, 남한지역에서도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기원 초에 대부분의 남한지역에서는 자체 생산되지 못하였으므로, 회색도기는 수입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회색도기가 수입되었을 만한 대표적인 예로 강릉 안인리 등의 유적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안인리 마을유적에서 발견되는 대부분의 토기는 중도식적갈색토기이나, 작은 단지 회색도기도 수점 발견되었다.0995) 회색도기의 형식은 대동강유역의 그것과 비슷하여 미처 도기제작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강원도지방에서는 수입하였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물론 도기의 생산이 보편화되는 삼국시대 전기 말 이후에는 수입하는 경우가 드물 것이다. 그러나 제주도와 같은 일부 해안도서지역에서는 삼국시대 전기를 훨씬 지난 시기에도 회색도기를 수입한 사실이 확인된 바 있다.0996)
다음 실생활 필수품이 아닌 물품으로서 권위를 상징하는 威身財가 조공형식 혹은 원거리 교역을 통해서 입수되는 경우가 많다. 그 대표적인 예를 漢나라 청동거울을 들 수 있다. 漢式鏡은 한반도 남부지방 중에서도 특히 낙동강유역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 적지 않게 발견되는데, 영천 어은동, 경주 조양동 5호분, 창원 다호리 출토품 등이 대표적이다(<그림 4>).
이들 경상도지방 출토 한식경은 중국제가 틀림없으며, 중국에서 들여와 대방을 거쳐 다시 이들 경상도 변진한 지역에서 조공무역 등의 원거리 교역을 통해 수입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같은 지역에서 이들 한식경을 모방하여 자체제작된 倣製鏡도 많이 출토하는데, 이 방제경은 한식경의 수입이 곤란하거나 그 수용량이 부족하여 생산된 것으로 이 경상도지방의 방제경은 제주도나 일본 규슈에서 수입하는 교역대상품이 되기도 하였다.0997)
그 밖에 위신재로서 중국 한군현으로부터 수입되었을 것으로 믿어지는 청동제 曲棒形帶鉤와 금박제 유리구슬이 마한 중심지인 충남 천안 청당동 목관묘유적의 부장품으로 발굴된 바 있다.0998) 한편 앞서 위신재가 다른 정치체 집단으로부터 원거리 교역을 통해서 획득되는 것과 달리 고고학 실물자료로 좀처럼 확인되기 어려운 생활필수품의 경우는 같은 집단내에서 근거리 교역되었음이 문헌기록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삼국지≫고구려조0999)의 “앉아 먹는 인구가 만여 명이 되는데, 下戶들이 소금·쌀·생산 등을 먼 곳에서 운반해 왔다”는 기록이다.
0993) | 宋桂鉉,<洛東江下流域의 古代 鐵生産>(≪加耶諸國의 鐵≫, 인제대, 1995), 129∼154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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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94) | “諸市賈皆用鐵 如中國用錢”(≪三國志≫권 30, 魏書 30, 烏丸鮮卑東夷傳 30, 弁辰). |
0995) | 白弘基,<명주군 안인리 주거지 발굴조사 약보고>(≪제15회 한국고고학 전국대회 발표요지≫, 1991). |
0996) | 李淸圭,<濟州島 古代土器文化의 硏究>(≪湖南考古學報≫1, 호남고고학회, 1994). |
0997) | 高倉洋彰,<彌生時代小形倣製鏡について(承前)>(≪考古學雜誌≫70-3, 東京;考古學會, 1985). |
0998) | 咸舜燮,<天安 淸堂洞遺蹟을 통해 본 馬韓의 對外交涉>(≪馬韓史의 새로운 인식≫, 충남대 백제연구소 백제연구학술대회 발표요지, 1997), 35∼57쪽). |
0999) | ≪三國志≫권 30, 魏書 30, 烏丸鮮卑東夷傳 30, 高句麗.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