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대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Ⅱ. 고조선2. 고조선의 변천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1. 한국 고대의 정치발전 단계론
        • 2. 국가 형성 이론의 한국사 적용문제
        • 3. 초기국가의 성격
          • 1) 국가 기원 및 형성이론
          • 2) 군장사회와 국가
      • Ⅱ. 고조선
        • 1. 고조선의 국가형성
          • 1) 고조선의 건국신화
          • 2) 동이족과 그 문화권
            • (1) 지석묘문화
            • (2) 비파형청동단검문화
          • 3) 고조선의 주민과 예맥
          • 4) 고조선의 건국연대
          • 5) 고조선의 위치와 강역
            • (1) 고조선의 위치문제
            • (2) 문헌에 나타난 고조선의 영역
        • 2. 고조선의 변천
          • 1) 고조선사회의 국가적 성장
          • 2) 위만조선의 성립과 변천
            • (1) 위만조선의 성립
            • (2) 위만조선의 국가적 성격
          • 3) 위만조선과 한의 전쟁
          • 4) 한사군의 설치와 그 변천
            • (1) 한사군의 설치와 구성
            • (2) 한사군의 성격과 변천
        • 3. 고조선의 문화와 사회 경제
          • 1) 고조선 전기와 청동기문화
            • (1) 비파형동검 이전의 청동기문화
            • (2) 비파형동검시기의 고조선문화
          • 2) 후기 고조선과 철기문화(기원전 4∼2세기)
            • (1) 기원전 4세기 고조선지역
            • (2) 기원전 3∼2세기의 철기문화
          • 3) 고조선의 사회경제
            • (1) 사회성격
            • (2) 경제성격
      • Ⅲ. 부여
        • 1. 부여의 성립
          • 1) 부여사의 성격
          • 2) 부여의 기원과 건국설화
            • (1) 부여 명칭의 기원
            • (2) 부여족의 기원
            • (3) 부여의 선주민문화와 한대 부여문화
            • (4) 건국 연대
          • 3) 부여의 영역과 지리적 특성
            • (1) 3세기 부여의 영역
            • (2) 부여국 왕성의 위치
        • 2. 부여의 성장과 대외관계
          • 1) 부여의 성장
            • (1) 부여의 기원(부여·북부여·동부여)
            • (2) 부여의 성장
          • 2) 부여의 대외관계
            • (1) 고구려와의 관계
            • (2) 중국과의 관계
            • (3) 부여의 쇠퇴와 부흥운동
        • 3. 부여의 정치와 사회
          • 1) 중앙과 지방의 통치조직
            • (1) 중앙통치조직
            • (2) 지방통치조직
          • 2) 사회와 경제
            • (1) 신분제도
            • (2) 법률과 형벌
            • (3) 경제생활
        • 4. 부여의 문화
          • 1) 신앙과 제의
          • 2) 생활 풍습
          • 3) 예술-건축, 공예, 기타
      • Ⅳ. 동예와 옥저
        • 1. 동예의 사회와 문화
          • 1) 동예의 위치와 변천
          • 2) 동예의 사회와 문화
        • 2. 옥저의 사회와 문화
          • 1) 옥저의 위치와 변천
          • 2) 옥저의 사회와 문화
      • Ⅴ. 삼한
        • 1. 삼한의 정치와 사회
          • 1) 진국과 삼한
          • 2) 삼한의 정치
            • (1) 소국의 정치권력
            • (2) 소국연맹체의 형성
          • 3) 삼한의 경제와 사회
            • (1) 농경생활
            • (2) 교역활동
            • (3) 계층 분화
        • 2. 삼한의 문화
          • 1) 삼한의 생활과 풍속
          • 2) 삼한의 유적과 유물
            • (1) 철기
            • (2) 토기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고조선의 변천

1) 고조선사회의 국가적 성장

 중국문헌 가운데 朝鮮이라는 명칭이 가장 먼저 등장하는 기록은≪管子≫로서 기원전 7세기경의 중국인들에게 이미 조선의 존재가 인식되고 있었음을 앞에서 보았다. 이 시기의 고조선은 이른바 箕子朝鮮234) 즉 濊貊朝鮮 단계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山海經≫과≪戰國策≫등에 의하면 보다 구체적으로 조선은 기원전 4세기경 燕의 동쪽에 존재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들 先秦시대 문헌에 나타나 있는 고조선은 적어도 기원전 7세기경 춘추시대의 중국인들이 교역을 행하는 대상이었으며 정치적 복속문제도 염두에 두고 있는 존재였다. 그러나 이들 선진시대 문헌에는 고조선의 존재만이 나타나고 있을 뿐이어서 구체적인 사회수준이나 성격은 파악할 수 없다. 이 시기 고조선사회의 성격의 일단을 보여주는 것으로 다음 사료가 참고된다.

옛 箕子의 후예인 朝鮮侯는 周나라가 쇠약해져 燕나라가 스스로 높여 王이라 칭하고 동쪽으로 침략하려는 것으로 보고, 조선후도 역시 스스로 王號를 칭하고 군사를 일으켜 연나라를 역공하여 주 왕실을 받들려고 하였는데 그의 大夫 禮가 간하므로 중지하였다. 그리하여 예를 서쪽으로 파견하여 연나라를 설득하게 하니 연나라도 전쟁을 멈추고 (조선을) 침공하지 않았다(≪三國志≫권 30, 魏書 30, 烏丸鮮卑東夷傳 30, 韓 인용≪魏略≫).

 위와 같은 일이 일어난 시기는 燕이 王을 칭하는 기원전 4세기 후반경인데, 연과 정치·군사적 갈등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통하여 당시 고조선사회의 수준을 대강 짐작할 수 있다. 즉 연과 함께 고조선이 왕호를 취하고 있으며 신하인 大夫의 존재가 나타나고 있는 점이나, 연과의 전쟁도 불사하는 외교적 강경조치를 강구하는 것으로 보아 이 시기 고조선의 세력이 연에 버금가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기원전 4세기경의 예맥조선 후기 단계에 이르게 되면 이미 고조선이 국가로서 발돋움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기원전 3세기 중반의 연의 昭王代에 秦開가 조선을 공략하여 2천여 리라는 광대한 지역을 빼앗았으며, 이후 秦이 중국을 통일한 후에 조선왕 否가 복속의 예를 갖추었다는 후속 사료에서 더욱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연에게 빼앗긴 고조선의 일부 영역이 2천 리라는 사실은 그 나머지 영역이 매우 광대하였으며, 진이 중국을 통일한 후에 조선에 대한 정치적 복속을 강요한 것은 고조선의 세력이 상당한 수준이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같은 고조선사회의 보다 발전된 모습을 위만과 관련된 사료에서 볼 수 있다. 즉 위만과의 관계에서 볼 때 후기 예맥조선은 이미 초기국가적 성격을 띠고 있는 존재로 여겨진다.235) 예맥조선 말기의 여러 양상은 그 단계를 初期國家(Pristine State)로 규정하게 하는데, 사회계급이 발생하였다는 사실 이외에 국가가 성립될 때 지니게 되는 여러 면을 일차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맥조선은 君長社會(Chiefdom)의 단계가 아니라 초기국가 단계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처럼 한국사에서 국가의 기원과 형성문제는 고조선에서 그 시발을 찾을 수 있다.236) 고조선으로 지칭되는 우리 역사 최초의 정치체는 기본적으로 ‘檀君朝鮮’·‘箕子朝鮮’·‘衛滿朝鮮’ 등으로 구별되는 정치체를 포함하고 있는 사회로서 이들의 사회적 수준을 어떻게 규정하느냐 하는 문제가 하나의 논란거리이다. 특히 이들의 존재 시기와 중심지 및 사회성격 등과 관련한 논의는 현재까지도 상당한 견해차를 보이며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237) 실제로 우리 나라의 국가 기원 및 형성문제에 관한 논의는 이른바 기자조선과 관련된 자료를 근거로 하여 이루어지고 있다.238) 즉 위만조선의 성립 이전 이른바 기자조선 후기 단계에 이미 국가로서의 조직체가 갖추어진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고조선이 국가로서 출발한 시점은 연과의 관련성 등을 감안할 때 기원전 4∼3세기를 전후한 시기로 짐작되는데, 국가적 정치조직체의 편린을 엿볼 수 있는 자료로서 다음과 같은 것을 지적할 수 있다. 우선 ‘朝鮮侯’라는 최고의 정치적 존재가 ‘王’239)을 자칭하였으며 그 신하로서 ‘大夫’라는 존재가240) 나타나고 있다. 또한 준왕은 위만이 망명하여 오자 그를 ‘博士’241)로 임명하여 ‘圭’를 하사하고 백 리의 땅을 봉하여 주며 서쪽 변경을 지키게 하였다.242) 따라서 고조선사회의 통치체계는 왕을 정점으로 하여 왕의 명령을 받고 조언하는 중앙 행정 관리로서 ‘대부’가 있었으며, 지방 통치를 대행하는 존재로서 ‘박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위만이 망명하기까지 고조선사회의 통치구조는 왕과 중앙의 대부, 왕과 지방의 박사 등으로 연결되어 있는 체제였다고 볼 수 있다. 또한 陳勝의 亂 이후 고조선이 중국의 수만에 달하는 피난민을 무리없이 수용하고 있는 사실을 통하여 상당히 규모가 큰 통치구조를 갖추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준왕이 위만에게 축출되는 과정을 보면 군사적인 역량에서는 오히려 위만세력보다 미약했던 것으로 짐작된다.243) 당시의 법속 또한 고대사회에 널리 퍼져 있던 萬民法 차원의 성격으로 이해되는데, 국가의 구성요건 가운데 하나인 법에 관한 것이 발달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미흡함을 지적할 수 있다.244)

 이상에서 살펴본 칭왕 사실이라든가 官階조직·法俗·軍事·문화 단계 등을 통하여 예맥조선 말기에 와서 강력한 왕권이 확립되어 있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이 시기는 고고학적으로 청동기문화를 거쳐 철기문화의 단계에 진입하였고 기원전 4∼3세기에는 철제의 도끼류 등이 생산되고 있음도 확인되고 있다.245) 그러나 이들 유물은 강력한 무기와는 일정한 거리가 있는 것이어서 그 한계성이 지적되고 있다. 한편 망명한 위만집단이 숙위를 자처하였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준왕의 군사조직이 그리 강력한 것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른바 기자조선 후기의 양상은 위만조선과 비교할 때 프리드가 상정한 초기국가적 성격이 강한 것으로 볼 수 있다.246)

234)箕子朝鮮의 실체에 대해서는 전통적으로 箕子東來에 입각한 인식이 제시되었으나 이에 대한 학계의 입장은 기자동래를 부정하고 대신 그 실체의 성격에 대해 李丙燾의 ‘韓氏朝鮮說’, 金貞培의 ‘濊貊朝鮮說’, 千寬宇의 ‘箕子族團移動說’ 등의 견해가 제시되어 있다.

李丙燾,<三韓問題의 新考察>(≪震檀學報≫3, 1935 ;≪韓國古代史硏究≫, 博英社, 1976).

金貞培,<古朝鮮의 住民構成과 文化的 複合>(≪白山學報≫12, 1972 ;≪韓國民族文化의 起源≫, 高麗大 出版部, 1973).

―――,<準王 및 辰國과 ‘三韓正統論’의 諸問題>(≪韓國史硏究≫13, 1976 ;≪韓國古代의 國家起源과 形成≫, 高麗大 出版部, 1986).

千寬宇,<箕子攷>(≪東方學志≫15, 1974 ;≪古朝鮮·三韓史硏究≫, 一潮閣, 1989).
235)Fried는 階層社會(Stratified Society)와 國家(State)의 단계를 더 설정하고 있는데 후자의 두 단계는 구별에 신중을 기해야 된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Fried는 국가를 初期國家(Pristine State 이를 原初 또는 原生國家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와 二次國家(Secondary State)의 두 가지 형태로 나누어서 고찰하고 있다. 초기국가는 그 지역에서 발생·발전된 것이며, 2차국가는 외부로부터 물리적 힘에 의해서 형성된 국가이다(Service, E.R., Origins of the State and Civilization., W. W. Norton & Company Inc., 1975, p.304 및 金貞培, 앞의 책, 1986, 180쪽).
236)金貞培,<韓國 古代國家의 起源論>(≪白山學報≫14, 1973 ; 위의 책, 1986).
237)盧泰敦,<古朝鮮史硏究의 現況과 課題>(≪韓國上古史≫, 民音社, 1989).
238)金貞培,<衛滿朝鮮의 國家的 性格>(≪史叢≫21·22, 1977 ; 앞의 책, 1986, 24∼45쪽).
239)‘王’은 조선후가 참칭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周代의 경우 최고의 통치권자에 대한 칭호로 사용되었으며 漢代에는 諸侯國의 통치권자를 지칭하는 용어였다. 특히 조선왕 否의 왕위가 아들 準에게 계승되고 있는 사실을 통하여 부자상속체계가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준왕까지의 계보로서 40여 세대의 존재가 인식되고 있었다는≪三國志≫東夷傳 濊條의 기록은 이같은 부자상속에 의한 왕위계승이 훨씬 이전부터 확립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240)‘大夫’라는 표현은 제후국 지배계층의 총칭으로서 周代의 경우 세부적으로는 卿·大夫·士 등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조선왕이 燕을 공략하려고 하자 대부 禮가 이를 만류하였다는 사실을 통하여 고조선의 대부라는 명칭도 이같은 직임에 걸맞는 존재임을 알 수 있다.
241)‘博士’는 일반적으로 전문적인 직임이 부여된 직능인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는 漢 武帝가 五經博士를 설치하고 있는 데서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박사라는 칭호는 전문적인 직능인 외에 중앙에서 특별히 파견하는 지방관을 지칭하는 경우도 있다. 즉 한대에 중앙의 정책이 지방에 철저하게 수행되지 않는 것을 보완하기 위해 파견한 자가 박사였으며, 홍수가 난 地方民에 대한 특별 조치를 취할 때 파견된 자를 박사라고 하였다. 즉 박사는 당시 최고 통치권자의 명을 받아 지방에 대한 통치권을 행사하는 직임이었다. 그러므로 위만이 부여받은 ‘박사’라는 직함도 특정사항에 제한된 단순한 전문 기능인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중앙에서 특별히 파견된 지방관을 뜻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趙法鍾,<한국고대신분제연구>,≪國史館論叢≫52, 國史編纂委員會, 1994).
242)≪三國志≫권 30, 魏書 30, 烏丸鮮卑東夷傳 30, 韓 인용≪魏略≫.
243)위와 같음.
244)≪漢書≫권 28 下, 志 8 下, 地理 燕.

≪三國志≫권 30, 魏書 30, 烏丸鮮卑東夷傳 30, 濊.
245)金貞培,<韓國의 鐵器文化>(≪韓國史硏究≫16, 1977 ; 앞의 책, 1986).
246)金貞培, 위의 책, 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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