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대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Ⅱ. 고조선2. 고조선의 변천4) 한사군의 설치와 그 변천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1. 한국 고대의 정치발전 단계론
        • 2. 국가 형성 이론의 한국사 적용문제
        • 3. 초기국가의 성격
          • 1) 국가 기원 및 형성이론
          • 2) 군장사회와 국가
      • Ⅱ. 고조선
        • 1. 고조선의 국가형성
          • 1) 고조선의 건국신화
          • 2) 동이족과 그 문화권
            • (1) 지석묘문화
            • (2) 비파형청동단검문화
          • 3) 고조선의 주민과 예맥
          • 4) 고조선의 건국연대
          • 5) 고조선의 위치와 강역
            • (1) 고조선의 위치문제
            • (2) 문헌에 나타난 고조선의 영역
        • 2. 고조선의 변천
          • 1) 고조선사회의 국가적 성장
          • 2) 위만조선의 성립과 변천
            • (1) 위만조선의 성립
            • (2) 위만조선의 국가적 성격
          • 3) 위만조선과 한의 전쟁
          • 4) 한사군의 설치와 그 변천
            • (1) 한사군의 설치와 구성
            • (2) 한사군의 성격과 변천
        • 3. 고조선의 문화와 사회 경제
          • 1) 고조선 전기와 청동기문화
            • (1) 비파형동검 이전의 청동기문화
            • (2) 비파형동검시기의 고조선문화
          • 2) 후기 고조선과 철기문화(기원전 4∼2세기)
            • (1) 기원전 4세기 고조선지역
            • (2) 기원전 3∼2세기의 철기문화
          • 3) 고조선의 사회경제
            • (1) 사회성격
            • (2) 경제성격
      • Ⅲ. 부여
        • 1. 부여의 성립
          • 1) 부여사의 성격
          • 2) 부여의 기원과 건국설화
            • (1) 부여 명칭의 기원
            • (2) 부여족의 기원
            • (3) 부여의 선주민문화와 한대 부여문화
            • (4) 건국 연대
          • 3) 부여의 영역과 지리적 특성
            • (1) 3세기 부여의 영역
            • (2) 부여국 왕성의 위치
        • 2. 부여의 성장과 대외관계
          • 1) 부여의 성장
            • (1) 부여의 기원(부여·북부여·동부여)
            • (2) 부여의 성장
          • 2) 부여의 대외관계
            • (1) 고구려와의 관계
            • (2) 중국과의 관계
            • (3) 부여의 쇠퇴와 부흥운동
        • 3. 부여의 정치와 사회
          • 1) 중앙과 지방의 통치조직
            • (1) 중앙통치조직
            • (2) 지방통치조직
          • 2) 사회와 경제
            • (1) 신분제도
            • (2) 법률과 형벌
            • (3) 경제생활
        • 4. 부여의 문화
          • 1) 신앙과 제의
          • 2) 생활 풍습
          • 3) 예술-건축, 공예, 기타
      • Ⅳ. 동예와 옥저
        • 1. 동예의 사회와 문화
          • 1) 동예의 위치와 변천
          • 2) 동예의 사회와 문화
        • 2. 옥저의 사회와 문화
          • 1) 옥저의 위치와 변천
          • 2) 옥저의 사회와 문화
      • Ⅴ. 삼한
        • 1. 삼한의 정치와 사회
          • 1) 진국과 삼한
          • 2) 삼한의 정치
            • (1) 소국의 정치권력
            • (2) 소국연맹체의 형성
          • 3) 삼한의 경제와 사회
            • (1) 농경생활
            • (2) 교역활동
            • (3) 계층 분화
        • 2. 삼한의 문화
          • 1) 삼한의 생활과 풍속
          • 2) 삼한의 유적과 유물
            • (1) 철기
            • (2) 토기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4) 한사군의 설치와 그 변천

(1) 한사군의 설치와 구성

 한의 고조선 공략에 따라 나타난 결과는 한의 직접통제를 전제로 한 漢四郡의 설치였다. 종래 한사군 관련 연구는 대부분 위치문제에 관심이 집중되었을 뿐 그 성격과 구체적인 사실에 대해서는 심도있게 검토되지 못하였다. 이는 위만조선의 붕괴를 같은 시기에 존재했던 여타의 모든 정치체의 소멸로 이해하는 선입관과, 이를 대신하여 설치된 樂浪郡으로 대표되는 한군현의 실체가 보다 과장된 데에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위만조선의 붕괴는 중국세력과의 갈등해소 방식에 대한 위만조선 지도부의 의견차이에 따른 정권재편이라는 측면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비록 기존의 정치형태가 중국의 직접 지배형태인 군현체제로 재편되었지만, 실질적으로는 기존 토착세력에 의해 유지되었고, 또한 토착세력의 반발에 의해 낙랑군을 제외한 나머지 3군은 곧 폐지되거나 중국내로 이동함으로서 결국 축출되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한편 고조선의 중심지문제와 관련된 논의의 연장으로서 이들 한군현의 위치문제에 관해서도 요동설과 한반도설 등 많은 의견이 제기되었다.

 한은 위만조선을 멸한 후 그 영역에 낙랑군을 설치하고 위만조선에 복속되었던 지역에 臨屯郡·眞番郡을 설치하였으며 다음해에는 玄菟郡을 설치하였다. 이에 대해≪史記≫朝鮮傳에는 한 무제가 元封 3년(기원전 108) 조선을 평정하고 4군을 설치하였다는 사실만 나타나 있고 군이름은 보이지 않는다.280) 그런데≪漢書≫武帝本紀에는 4군의 명칭이 낙랑·임둔·현도·진번으로 되어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이른바 한사군의 명칭이 처음으로 나타나 있는 셈이다. 한편≪한서≫지리지에는 낙랑·현도의 2군만 나타나 있고,≪한서≫五行志에서는 원봉 6년조에 “전에 두 將軍이 조선을 평정하여 3郡을 두었다”라고 기술하고 있어 논란이 있어 왔다. 즉 당대 자료에 나타나 있는 군현 개설내용이 서로 상치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사정은≪사기≫의 다른 기록에 한군현 관련 명칭이나 기사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위만조선 공략과정과 투항한 위만조선 지배층의 전후 처리내용이 상세히 설명되어 있는 것과 비교해 볼 때 상당한 차이가 있다. 즉 이같은 기록상의 차이는 과연 한군현이 후속사료에 나타나는 것처럼 실제로 설치되었고 직접 통제방식에 의한 편제가 이루어졌는가에 의문을 갖게 한다. 다시 말하면≪한서≫등에 나타난 내용은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반영했다기 보다는 후대에 중국적 天下支配 관념을 바탕으로 위만조선의 지역명칭을 그대로 한군현으로 연결시켜 재구성하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이해된다.281)

 실제로 한사군은 사료상에 약 26년 동안 존재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즉 진번의 경우≪한서≫昭帝本紀에 始元 5년(기원전 82)에 詹耳郡과 함께 폐지된 것으로 되어 있으며, 임둔도 이 때에 함께 파해진 것으로 나타나 있다.282) 그리고 현도군의 경우도 소제 元鳳 6년(기원전 75)에 그 위치를 이동하고 있다. 따라서 이같은 짧은 기간 동안 실질적으로 군현을 설치하여 해당지역을 통제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진번·임둔군의 경우 앞서 위만조선에 복속되었던 주변의 정치세력인 임둔·진번지역에 군현을 설치하려고 했던 계획이 마치 설치된 것처럼 기록했을 가능성이 있다. 즉 기왕에 민족주의 사학자들이 지적했던 것처럼 이들 군현의 설치는 하나의 圖上作戰이었을 가능성이 높다.283) 또한 현도군은 고구려세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는데 고구려세력의 지속적인 반발에 의해 결국 축출되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이상에서 본 것처럼 한사군을 중국의 직접통치를 받는 지역으로 이해하는 견해가 있고, 이와는 달리 고조선세력과의 계속적인 군사분쟁상태에서 설치하려고 계획만 했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은 것이라고 이해하는 견해가 있는데 후자가 오히려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이들 한사군으로 통칭되는 고조선지역의 중국군현 가운데 낙랑군으로 대표되는 위만조선 중심지의 군현 이외에는 실질적인 존재가 아니었으며, 현도군의 경우 고조선과의 관계보다는 중국내의 군현으로서 존재하였던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한군현의 통치구조는 郡의 長으로 太守가 존재하였으며 그 밑에 丞을 두고, 변두리 군에는 長史를 두었다. 규모가 큰 군의 경우 몇 개의 속현을 다스리는 都尉를 두고 縣에는 만 호 이상의 경우 縣令, 그 이하의 경우 縣長을 두었고 그 밑에는 丞과 尉를 두었다. 사료에 나타난 바에 의하면 이들 지방관은 중앙에서 파견되었다. 그런데 이들은 임명된 이후에도 현지에 부임하지 않은 경우가 있는 것으로 보아 군현민에 대한 실질적인 통제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고구려가 요동군을 침공하여 帶方令을 죽이고 樂浪太守의 妻子를 사로잡았다고 하는 사실은284) 낙랑과 대방의 최고 책임자들이 자신들의 부임지가 아닌 요동지역에 머물고 있었으며, 따라서 군현통제의 내용 또한 실질적인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초기에는 요동군으로부터 관리의 파견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후기에는 중국계 주민들이 군의 속리직을 담당하였던 것으로 보인다.285) 또한 낙랑군 내부의 사정도 복잡하여 土人인 王調가 난을 일으켜 낙랑태수를 자처한 사건이 있었는데,286) 후한 때 公孫氏가 요동을 장악하였던 시기(189∼238)에는 별도세력에 의해 이 지역이 통제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한사군의 위치문제는 고조선의 중심지가 어디였는가라는 문제와 결부되어 있어 이에 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었다. 특히 진번의 위치에 관해서는 한사군의 명칭으로서 존재하기 이전의 진번 위치와 관련하여 다기한 견해가 제시되었다. 즉 在北說과 在南說로 크게 나뉘어져 전통사학자들 사이에 많은 논란이 있었다.287)

280)≪史記≫권 115, 列傳 55, 朝鮮.
281)서영수, 앞의 글, 267쪽.
282)≪後漢書≫권 85, 列傳 75, 東夷 濊.
283)申采浩,≪朝鮮上古史≫上.
284)≪三國志≫권 30, 魏書 30, 烏丸鮮卑東夷傳 30, 高句麗.
285)權五重,≪樂浪郡硏究≫(一潮閣, 1992), 72쪽.
286)≪後漢書≫권 76, 列傳 66, 循吏 王景.
287)韓百謙은≪東國地理誌≫에서 이를 貊國舊地 즉 강원도 춘천부로 이해하였고, 李瀷은≪星湖僿說類選≫에서 眞番을 요하 이서 지역으로 보았다. 한편 洪萬鍾은≪筍五俧≫에서 진번이 어느 지역인지 알 수 없다고 하였으며, 丁若鏞은≪我邦疆域考≫에서 재북설을 제시하였다. 이같은 견해는 柳得恭의≪四郡誌≫에 계승되었고, 韓鎭書의≪海東繹史地理考≫에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한편 일인학자 가운데 那珂通世와 白鳥庫吉은 이를 압록강 이북지역에서 찾았으며, 稻葉岩吉은 충청도지역에서, 今西龍은 충청·전북 등지에서 진번의 위치를 찾았다. 이병도는 대방군 영토에서 이를 찾아 재남설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북한의 도유호는 진번이 현재의 함경도 북동쪽에 위치해 있다가 예군 남려의 반란후 기원전 128년에 잠시 존재했던 창해군 영토의 임둔군과 나란히 있었다는 견해를 제시하였다. 이같이 진번군의 위치가 문제되는 것은 앞서 강조되었듯이 한사군 설치 이전에 연의 침입을 받았던 진번, 조선과 위만조선에 복속되었던 소읍으로서의 진번, 임둔 및 한과 직접 교역코자 하였던 ‘眞番傍衆國’ 등의 존재 때문이다. 따라서 진번의 위치가 어디였느냐에 따라 한사군의 위치는 여러 가지로 비정될 수 있는데, 이는 고조선의 중심지가 현재의 평양인가 요동지역인가라는 문제와 결부되어 더욱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國史編纂委員會, 앞의 책, 44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