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세죽리-연화보유형의 문화
주거유적으로 細竹里유적319)은 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철기시대에 이르는 여러 시기의 문화층이 있는 유적이다. 여기에서는 지금까지 5기의 주거지가 조사되었는데, 그 중 2기의 집자리는 구들이 사용된 지상가옥으로 드러났다. 이 유적에서는 많은 철기와 청동기가 출토되었고, 특히 제30호 집자리에서는 명도전이 발견되었다. 발견된 철기로는 호미·괭이·낫·도끼·비수 등이 있고, 청동기로는 동촉과 검파두 등이 있으며, 토기로는 회색의 打捺文토기가 발견되었다.
다음으로 蓮花堡320)에서는 약 278㎡의 유적이 발굴되어 돌담과 노지 2개, 재 구덩이 등이 드러났다. 이상의 유구에 대해서는 실측도나 사진이 없어서 정확하게 어떠한 용도였는지는 알기 어렵다. 철기로는 호미·괭이·낫·도끼·송곳 등이 발견되었고, 청동기로는 활촉이 나왔다. 한편 화폐로는 半兩錢이 나왔으며, 토기는 회색으로 활석이 섞인 繩蓆文토기가 나왔다. 尹家村321) 상층(기원전 3∼2세기)에서 무덤과 함께 저장공 2개가 발굴되었는데, 움의 지름은 1.6m이며 유물은 대부분 기와와 회색 승석문토기 조각이다.
이 밖에 정식 발굴이 아니라 지표조사되거나 파괴 후 수습 조사된 유적을 보면 堂山里유적에서 불에 탄 집자리가 일부 확인되었고, 遼寧 錦州市 大泥窪유적 등에서 명도전과 함께 생활유적의 흔적이 발견되었다.322) 일제 강점기에 동아고고학회에 의해서 조사된323) 豹子窩 高麗寨 및 旅順 勺家疃 牧羊城址에서도 이 시기의 유적이 발견되었으나, 층위관계가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채 여러 시기의 유물이 같이 보고되어서 정확한 문화상은 알기 어렵다.
분묘유적 가운데 이 시기의 무덤으로는 土壙墓·貝墓(조개무덤)·甕棺墓(독무덤) 등이 있다. 그 중 조개무덤은 요동지방에서만 발견되는 것으로 일본의 동아고고학회에 의해서 목양성지·윤가촌·旅大市 劉家疃 등에서 발견되었다. 이 조개무덤들은 장방형의 광을 파고 그 안에 광벽과 일정한 사이를 두고 나무판자로 곽을 만들어 시체를 안치한 것이다.
옹관묘는 정가와자와 윤가촌의 것이 대표적이다. 정가와자324)에서는 독무덤 1기를 발굴했는데, 3개의 단지를 맞물려 놓은 것이다. 토기들은 굵은 승석문의 갈색 그릇과 가는 승석문의 회갈색 단지로 이루어져 있다. 윤가촌의 경우도 옹관은 2개 내지는 3개의 단지로 이루어져 있다.
이 시기의 철기유물은 크게 농구와 무기로 나눌 수 있다. 농구로는 호미·괭이·삽·낫·반달칼·철부·손칼·송곳 등이 나왔으며, 무기로는 창·단검·비수·과·활촉 등이 나왔다. 청동기는 철기에 비해 그 양이 훨씬 적으며, 대부분 무기류에 속하는 것으로 동촉·弩器·검파두·동모 등이 있다. 토기는 크게 4종류로 나눌 수 있다.325) 첫번째로 태토가 곱고 회색이 기본인 유형, 두번째로 모래가 섞이고 승석문이 시문되었으며 돌림판을 쓴 흔적이 있는 유형, 세번째로 태토에 활석이 섞인 유형, 그리고 네번째로 전시기의 무문토기 전통이 유지되는 것으로 모래를 섞고 돌림판을 쓰지 않고 만든 토기 유형이 있다. 이 밖에 석기는 보고된 것이 그리 많지 않은데, 연화보에서 반월형석도편이 발견되었고 그밖에 石斧·碾石·鎔范 등의 발견예가 있다. 그리고 명도전이 부장된 퇴장유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