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대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Ⅲ. 부여1. 부여의 성립3) 부여의 영역과 지리적 특성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1. 한국 고대의 정치발전 단계론
        • 2. 국가 형성 이론의 한국사 적용문제
        • 3. 초기국가의 성격
          • 1) 국가 기원 및 형성이론
          • 2) 군장사회와 국가
      • Ⅱ. 고조선
        • 1. 고조선의 국가형성
          • 1) 고조선의 건국신화
          • 2) 동이족과 그 문화권
            • (1) 지석묘문화
            • (2) 비파형청동단검문화
          • 3) 고조선의 주민과 예맥
          • 4) 고조선의 건국연대
          • 5) 고조선의 위치와 강역
            • (1) 고조선의 위치문제
            • (2) 문헌에 나타난 고조선의 영역
        • 2. 고조선의 변천
          • 1) 고조선사회의 국가적 성장
          • 2) 위만조선의 성립과 변천
            • (1) 위만조선의 성립
            • (2) 위만조선의 국가적 성격
          • 3) 위만조선과 한의 전쟁
          • 4) 한사군의 설치와 그 변천
            • (1) 한사군의 설치와 구성
            • (2) 한사군의 성격과 변천
        • 3. 고조선의 문화와 사회 경제
          • 1) 고조선 전기와 청동기문화
            • (1) 비파형동검 이전의 청동기문화
            • (2) 비파형동검시기의 고조선문화
          • 2) 후기 고조선과 철기문화(기원전 4∼2세기)
            • (1) 기원전 4세기 고조선지역
            • (2) 기원전 3∼2세기의 철기문화
          • 3) 고조선의 사회경제
            • (1) 사회성격
            • (2) 경제성격
      • Ⅲ. 부여
        • 1. 부여의 성립
          • 1) 부여사의 성격
          • 2) 부여의 기원과 건국설화
            • (1) 부여 명칭의 기원
            • (2) 부여족의 기원
            • (3) 부여의 선주민문화와 한대 부여문화
            • (4) 건국 연대
          • 3) 부여의 영역과 지리적 특성
            • (1) 3세기 부여의 영역
            • (2) 부여국 왕성의 위치
        • 2. 부여의 성장과 대외관계
          • 1) 부여의 성장
            • (1) 부여의 기원(부여·북부여·동부여)
            • (2) 부여의 성장
          • 2) 부여의 대외관계
            • (1) 고구려와의 관계
            • (2) 중국과의 관계
            • (3) 부여의 쇠퇴와 부흥운동
        • 3. 부여의 정치와 사회
          • 1) 중앙과 지방의 통치조직
            • (1) 중앙통치조직
            • (2) 지방통치조직
          • 2) 사회와 경제
            • (1) 신분제도
            • (2) 법률과 형벌
            • (3) 경제생활
        • 4. 부여의 문화
          • 1) 신앙과 제의
          • 2) 생활 풍습
          • 3) 예술-건축, 공예, 기타
      • Ⅳ. 동예와 옥저
        • 1. 동예의 사회와 문화
          • 1) 동예의 위치와 변천
          • 2) 동예의 사회와 문화
        • 2. 옥저의 사회와 문화
          • 1) 옥저의 위치와 변천
          • 2) 옥저의 사회와 문화
      • Ⅴ. 삼한
        • 1. 삼한의 정치와 사회
          • 1) 진국과 삼한
          • 2) 삼한의 정치
            • (1) 소국의 정치권력
            • (2) 소국연맹체의 형성
          • 3) 삼한의 경제와 사회
            • (1) 농경생활
            • (2) 교역활동
            • (3) 계층 분화
        • 2. 삼한의 문화
          • 1) 삼한의 생활과 풍속
          • 2) 삼한의 유적과 유물
            • (1) 철기
            • (2) 토기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3) 부여의 영역과 지리적 특성

(1) 3세기 부여의 영역

 부여는 역사가 오래 되었던 만큼 그 영역에서도 일련의 변동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명확한 기록이 없어 아직도 혼동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부여가 건국된 구체적 위치와 사방경역에 관해서는 班固의 서술 이전까지는 기재가 비교적 간략하였다. 다만 요동 등지를 말하면서 燕나라는 “북으로 오환·부여와 인접하였다”거나 “북으로 오환·부여와 사이를 두고 있었다”고 하였다. 반고 이후의 기록이지만≪삼국지≫동이전 부여조의 기록에 따르면 “부여는 장성의 북에 있는데 현도로부터 천 리 떨어져 있다”라고 하여 그 남쪽 경계는 漢의 동북장성 이북이었음을 알 수 있다.411)≪삼국지≫에서 말한 장성은 秦·한의 장성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장성은 일련의 연구에 의하면 지금의 獨石口로부터 내몽고 圍場·赤峰·敖漢·奈曼·庫倫의 중부를 통과하여 동으로 彰武·法庫를 지나 開原·撫順 일대를 경과한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남하하여 압록강 및 조선 경내에 들어간다고 한다.412) 그러므로 부여는 지금의 법고·개원 이북에 존재하였던 셈이 된다.

 부여의 위치에 관한 구체적 서술은 후한대부터 삼국시대(1∼3세기)의 사실을 기록한≪후한서≫와≪삼국지≫에서야 비로소 나타나게 된다.≪후한서≫권 85, 東夷傳 부여조에는 “부여국은 현도 북쪽 천 리에 있다. 남쪽으로는 고구려, 동쪽으로는 읍루, 서쪽으로는 선비와 접하며, 북에는 弱水가 있다. 땅은 사방 2천 리인데 본래 예의 땅이었다. …동이의 지역에서 가장 평평한 곳으로 오곡이 자라기에 알맞다”라고 기록되어 있다.≪삼국지≫부여조에는≪후한서≫와 내용이 거의 같으나 “(부여는)… 山陵과 넓은 못이 많은 곳이다”라는 표현이 첨가되어 있다. 또한≪晋書≫東夷傳 부여국조에는 “부여국은… 남으로는 선비와 접하며 북쪽에는 약수가 있다”고 하여 남쪽 경계에 고구려 대신 선비가 등장하고 있다.

 부여의 위치에 관한≪후한서≫와≪삼국지≫의 서술은 거의 일치한다. 이것은≪후한서≫나≪삼국지≫가 편찬대상으로 하였던 후한∼삼국시기에 부여의 위치에 큰 변동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진서≫의 기록은 소략하기는 하지만 많은 점에서≪후한서≫나≪삼국지≫와 일치한다. 다만 부여의 남쪽에 선비가 있다고 적고 있는데, 이는 3세기 이후 부여의 서남쪽에 진출한 선비의 존재를 보고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분명 晋시기(265∼420)에도 후한·삼국시기와 마찬가지로 부여의 남쪽에는 고구려가 위치하고 있었음은 분명하다.≪삼국지≫동이전에 따르면 3세기 중엽 고구려는 남쪽으로 조선·예맥, 동쪽으로 옥저, 북쪽으로 부여와 접하였다고 한다.413) 따라서 후한에서 진대에 걸쳐 부여의 위치는 큰 변동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부여의 위치와 관련하여 제일 먼저 등장하는 현도군은 원래의 압록강유역에 있던 것이 1세기 말∼2세기 초에 고구려의 공격으로 渾河 연안으로 쫒겨간 제3현도군을 말한다.414) 그 치소는 요동군(지금의 遼陽市) 북쪽 200리415)로서 瀋陽市 동쪽 上栢官屯의 漢城416)이나 撫順의 노동공원 漢성지417) 등으로 비정되고 있다. 漢·魏의 200리는 지금의 150여 리에 상당하므로, 삼국시대의 현도군은 마땅히 지금의 요양 동북 150리 전후의 심양·무순 사이에서 구하는 것이 순리이다.418) 또한 한·위시대의 천 리는 대략 지금의 700리에 해당하므로 부여 초기의 왕성은 마땅히 심양시의 북쪽 700리 되는 곳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곳은 바로 지금 길림성 중부 일대에 해당한다. 혹자의 주장처럼 부여의 초기 중심지로 흑룡강성 경내의 松嫩 혹은 呼嫩平原 일대를 비정하는 것은 현도 북 천 리라는 기재와 부합되지 않는다.

 현도군에서 동북쪽으로 천여 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부여는 자연지세로 보아 ‘동이의 지역에서 가장 평평’한 곳이며, 또 이곳에는 ‘넓은 못’이 많았다. 이것은 부여가 주변 나라들보다 평야지대를 많이 차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혼하 연안에서 북쪽 천 리에 해당하는 곳에서 평야지대를 차지하였을 부여의 중심지를 찾는다면, 그것은 松花江유역 외에는 달리 비정할 곳이 없다.

 부여의 영역으로 비정되는 길림성의 중심을 흐르는 송화강과 그 유역은 부여국의 발상지였으며 오랫 동안 그 중심지였다. 송화강유역을 중심으로 사방 2천 리의 지역을 차지한 부여는 서쪽으로 鮮卑, 남쪽으로는 고구려, 동쪽으로 挹婁와 각각 이웃하였으며 북쪽에는 弱水가 있었다고 한다.

 역대로 약수라는 명칭을 가진 강은 하나만 있었던 것 같지 않으며, 그 위치에 대하여는 종래 여러 가지 해석이 있었다. 그것은 크게 눈강·송화강으로 보는 견해와 흑룡강으로 보는 견해로 나뉘어진다. 대다수의 학자들은 약수를 눈강·송화강으로 보고 있다.419) 弱의 옛 발음이 nziak 혹은 niak이므로 약수는 송화강의 지류인 눈강(Nonni강)을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가 있고,420) 길림 일대의 서단산문화를 기반으로 부여가 성장한 만큼 서단산문화의 분포범위를 기준으로 그것이 북으로 송화강·拉林河를 넘지 않기 때문에 당시 부여 북쪽의 경계가 되었던 강은 제1송화강과 눈강 일대가 타당하다는 것이다.421)

 약수를 흑룡강으로 보는 견해는 전성기의 부여가 2천여 리에 걸쳐 있었다는 표현과≪진서≫東夷傳 肅愼氏條에 “숙신의 북쪽은 약수를 끝으로 했다”는 점에 주목하여 약수라는 강은 부여뿐 아니라 숙신의 북쪽까지도 경유하면서 흐르는 큰 강이었으므로, 그러한 강은 흑룡강밖에 없다는 것이다.422)

 부여의 북쪽 경계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부여의 북쪽에 위치한 흑룡강성의 三肇지구(肇源·肇州·肇東)를 중심으로 그 윗쪽의 오위르강까지 분포하는 백금보·한서·망해둔문화를 주목해야 한다. 이 문화는 앞에서 보았듯이 바로 동명전설의 고리국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지역은 초기 부여의 성립과 관련하여 주목되는 곳이다. 그리고 전성기 부여의 문화권에서 보면 눈강 일대의 문화권도 부여의 문화로 보는 것이 타당하므로, 그 문화권 북쪽에서 약수의 위치를 찾아야 할 것이다. 이 논리에 따른다면 약수를 흑룡강으로 비정하는 견해가 일견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고대에는 지금의 嫩江·동류 송화강과 흑룡강 하류를 하나의 河流로 인식했다고 한다.423) 그리고 과연 눈강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흑룡강까지 부여의 영역에 포괄되어 있었는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특히 북위시대의 難河가 지금의 제1송화강과 난하를 가리키는 那河였고, 그것이 포괄하는 하류의 범위가 눈강과 제1송화강 및 흑룡강 하류였던 것으로 보아 약수의 위치는 눈강과 제1송화강 및 흑룡강 하류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다.424) 史家들도 부여의 중심지에서 북쪽에 있는 강을 약수라 하였고, 이 강은 동으로 흘러 동해로 나간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옥저의 북쪽과 서쪽 및 부여의 북에 있는 강으로서 약수는 동류 송화강과 흑룡강 하류로 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425) 과거에 약수를 지금의 結雅河와 흑룡강이 합류하는 지점의 이하지역으로 보는 견해가 있었는데426) 합리적이기는 하나 실제와는 부합되지 않는다.

 부여는 남쪽으로 삼국의 고구려와 접하고 있었다. 서한 때의 고구려는 국력이 미약하였기 때문에 그 세력은 輝發河를 넘을 수 없었고, 이러한 상황은 동한 때에도 계속된 것으로 보인다. 즉 兩漢시대의 고구려는 요동군의 동쪽으로 그 北界는 당시 휘발하를 넘지 않는 柳河·海龍·輝南 일대였다.427) 혹자는 길림시 龍潭山城에 보이는 고구려유물을 근거로 길림 일대까지를 고구려의 북한계선으로 보고 있으나,428) 고구려의 경계는 대개 지금의 길림성의 휘발하 상류부근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 서쪽 경계는 대략 지금의 太子河·길림 哈達嶺을 일선으로 한군현 및 예맥과 접하였다고 보인다. 또한 혼하 중류지역에 있던 3세기의 고구려 ‘新城’(지금 撫順의 高爾山城)이 고구려 서북쪽의 요충지였다는 점에서 서북쪽으로는 渾河 중류 북쪽까지 뻗쳐 있었던 것으로 믿어진다. 결국 부여는 秦漢대의 장성이 있던 開原과 휘발하 상류를 연결하는 선보다 북쪽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한서≫地理志에서는 진시황이 연나라를 통합한 사실을 전하고 뒤이어 연이 북쪽으로 오환·부여와 경계를 접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오환과 부여는 연의 북쪽에서 기원전 3세기 말에서 기원전 1세기 말에 걸치는 시기에 서로 이웃하고 있었으며 부여의 서쪽에 오환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기원전 3세기 말에서 기원전 2세기 초에 오환은 흉노에게 정복당한 후에도 본래 살던 지역에 그대로 있었으므로 부여와 오환과의 지리적 관계는 기원전 1세기까지도 그 전시기와 다름이 없었다. 이후≪후한서≫나≪삼국지≫에서 부여가 서쪽으로 선비와 이웃하였다고 한 것은 이전 흉노가 차지한 오환의 동쪽지역에서 새로 성장한 선비와 부여의 지리적 관계를 전하는 것이다.

 기원 2세기 중엽 선비의 군장인 檀石槐는 흉노고지를 차지하고 그 관할구역을 동부·중부·서부의 3개 부로 나누었는데, 동부지역은 右北平으로부터 遼東에 이르러 부여·예맥의 20여 邑과 접하였다. 3세기 전반 軻比能 때의 선비의 동쪽 변경은 遼水界線에 이르렀다고 하는데,429) 기원전 3∼2세기의 요수는 오늘의 요하이며 이 시기의 요동도 요하 동쪽지역이다. 그런데 당시 요하 하류에는 후한과 위의 요동군·현도군 등이 있었으므로 선비의 동쪽은 서요하 이동을 가리키는 것이다.

 1970년대에 내몽고 哲里木盟에서 舍根문화유형의 유적430)을 발견하였는데 초보적인 고증에 의하면 이는 東部 선비의 유적이라고 한다. 이 밖에 1960년대에 확인된 내몽고 呼倫貝爾盟의 完工유적과 新巴爾虎右旗 札諾爾古墓群431)은 토광목곽묘와 거기서 출토된 전투적인 유목민 계통의 유물들을 통해 拓跋 鮮卑의 유적으로 확인되었다. 이를 통해 선비는 대체로 동북의 서부 초원지대에 있었고, 그 동쪽은 부여, 즉 오늘의 大安·乾安·雙遼 일선에 잇대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길림성 서부의 通楡縣에서 선비문화 유적이 발견된 바 있다.432) 그러나 통유 이동에서는 선비유적이 발견된 것이 없으므로 부여국의 西界는 대체로 白城에서 통유에 이르고 다시 쌍요·昌圖 일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황하 이동에서 陶鬲이 분포하는 지역이 바로 선비가 분포한 지역으로 동으로 송화강과 눈강까지 도력이 분포하는 것도 선비의 분포범위를 시사한다는 주장433)과 일치한다.

 부여는 동쪽으로 挹婁와 경계를 접하였다.≪삼국지≫위서 동이전에는 “읍루는 부여 동쪽 천여 리에 있고 큰 바닷가에 있으며, 남으로 북옥저와 접하였으나 그 북쪽 끝은 알 수 없다”고 하였다. 또한 “그 지역에는 험고한 산이 많으며… 산림 사이에 거처한다. 기후가 몹시 차서 늘 굴 속에서 산다”고 했다.≪후한서≫읍루전의 기록도 이와 동일하다. 이처럼 읍루는 동쪽 큰바다에 沿해 있고 남쪽으로 북옥저와 접하고 있었다. 최근 발견된 團結文化는 연대가 춘추전국시대에서 동한시대에 해당하고 그 분포범위 또한 한반도 함경북도에서 북으로는 完達山 남록 이남, 서로는 牧丹江·老爺嶺 이동에 걸쳐 있다. 이같은 시대 및 지역은 모두 문헌상의 옥저족의 분포와 부합하므로 옥저족의 유적으로 보고 있다.434) 그런데 옥저에 대해서는 북옥저가 남옥저의 북쪽 8백 리에 위치한다고 했으므로, 두만강을 경계로 하여 그 위가 북옥저이고 그 아래가 남옥저라고 불렀다는 것이 통설이다.435) 이처럼 북옥저가 오늘의 장백산과 낭림산맥 이동의 함경북도 북부지역과 두만강 동북쪽의 연해주 남부지역에 위치했으므로 읍루는 연해주 중부와 흑룡강 하류지역, 목단강유역에 위치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지역은 읍루전에서 전하는 자연지세와 기후와 풍토조건에도 부합된다.436) 한편≪삼국지≫읍루조에 “한 이래로 부여에 臣屬했다. …黃初 중(220∼225)에 배반했다”고 했으므로 부여의 동계는 220년 이전에는 읍루 땅(송화강 하류)을 포괄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437) 결국 부여는 양한시대에 동으로 읍루를 예속시키고 있었으며, 그 경계는 張廣才嶺과 威虎嶺을 사이에 두었음이 분명하다.

<그림 4>3세기경 부여국의 세력권(강역) 추정도

 이상을 통해 1∼3세기의 부여국은 대략 북으로 눈강과 송화강 일대까지 포괄하면서 서쪽으로는 洮兀河 하류의 건안·장령·쌍요 등지를 경계로 하였고 서남으로는 요동의 중국세력과 접하고 있었다. 동으로는 위호령을 경계로 목단강유역에 이르고, 남으로는 길림 哈達嶺을 경계로 輝發河 이북에 이르렀다. 이 지역의 동부는 ‘산릉이 많고’, 서부는 ‘넓은 못이 있고’, 중부는 ‘동이지역에서 가장 평탄한 곳’인 송눈평원이다.

411)≪三國志≫권 30, 魏書 30, 烏丸鮮卑東夷傳 30, 夫餘.
412)李文信,<中國北部長城沿革考>(≪社會科學輯刊≫3期, 1981).

文物編輯委員會 編,≪中國長城遺蹟調査報告集≫(文物出版社, 1981).

李慶發·張克擧,<遼西地區燕秦長城調査報告>(≪遼海文物學刊≫2期, 1991), 40∼50쪽.
413)≪三國志≫권 30, 魏書 30, 烏丸鮮卑東夷傳 30, 高句麗·夫餘·東沃沮.
414)≪後漢書≫권 90, 志 23, 郡國 5, 玄菟郡.
415)≪三國志≫권 47, 吳書 2, 吳主傳 2, 嘉禾 2년조 所引 吳書.
416)陳連開,<唐代遼東若干地名考釋>(≪社會科學輯刊≫3期, 1981).

白鳥庫吉 等,≪滿洲歷史地理≫1(東京;南滿洲鐵道會社, 1913), 96∼98쪽.
417)孫進己·馮永謙, 앞의 책, 392∼394쪽.
418)王綿厚·李健才,≪東北古代交通≫(1988), 121쪽.
419)池內宏,<夫餘考>(≪滿鮮地理歷史硏究報告≫13, 1932), 84쪽.

李健才, 앞의 글(1982).

王綿厚,<東北古代夫餘部的興衰及王城變遷>(≪遼海文物學刊≫2期, 1990).
420)白鳥庫吉,<夫餘國の始祖東明王の傳說に就いて>(≪白鳥庫吉全集≫5, 1970).
421)李健才, 앞의 글(1982).

王綿厚, 앞의 글.
422)白鳥庫吉,<弱水考>(≪史學雜誌≫7-11·12, 1896).

사회과학원 력사연구소, 앞의 글, 124쪽.
423)李健才, 앞의 글(1982), 170∼172쪽.
424)≪魏書≫권 100, 列傳 88, 烏洛侯·勿吉.

≪太平寰宇記≫권 199.
425)李健才, 앞의 글(1982).

田 耘,<西漢夫餘硏究>(≪遼海文物學刊≫2期, 1987).
426)張博泉,<夫餘史地總說>(≪社會科學輯刊≫6期, 1981).
427)兩漢교체기에 고구려는 지금의 태자하유역에 있던 梁貊을 치고, 지금의 新濱縣 老城 부근으로 비정되는 漢의 高句麗縣을 공격하였다(≪三國史記≫권 13, 高句麗本紀 1, 琉璃明王). 이후 동한 때에는 遼東·玄菟 兩郡을 공격하였는데(≪三國志≫권 30, 魏書 30, 烏丸鮮卑東夷傳 30, 夫餘), 이로 보아 兩漢시기 부여와 고구려의 接界地는 대략 지금의 혼하·휘발하 상류 분수령 일대였던 것으로 믿어진다.
428)田村晃一,<新夫餘考>(≪靑山考古≫3, 1987), 133쪽.
429)≪三國志≫권 30, 魏書 30, 烏丸鮮卑東夷傳 30.
430)張柏忠,<哲里木盟發現的鮮卑遺存>(≪文物≫2期, 1981).
431)米文平,<鮮卑石室的發現與初步硏究>(≪文物≫2期, 1981).
432)中 樹·相 偉,<通楡縣興隆山鮮卑墓淸理簡報>(≪黑龍江文物叢刊≫3期, 1982).
433)何光岳,<鮮卑族的來源與遷徙>(≪黑龍江文物叢刊≫4期, 1984), 24∼26쪽.
434)林 沄,<論團結文化>(≪北方文物≫1期, 1985).

―――,<肅愼挹婁和沃沮>(≪遼海文物學刊≫1期, 1986).

鄭永振,<沃沮, 北沃沮疆域考>(≪韓國上古史學報≫7, 1991), 81∼91쪽.
435)鄭永振, 위의 글, 81∼91쪽.
436)읍루지역에는 험고한 산이 많으며 주민들은 산간지대에서 산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큰 산맥지대를 연상케 한다. 오늘날의 연해주 북부지역에는 씨호떼알린산맥이 남북방향으로 가로질러 있어 역시 그러한 지세에 부합된다고 볼 수 있다.
437)孫進己,<古代東北民族的分布>(≪東北地方史硏究≫2, 1985), 47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