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대08권 삼국의 문화Ⅱ. 불교와 도교1. 불교3) 신라의 불교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1. 고구려의 토착신앙
          • 1) 천신신앙
          • 2) 조상숭배신앙
          • 3) 지신신앙
        • 2. 백제의 토착신앙
          • 1) 천신신앙
          • 2) 조상숭배신앙
          • 3) 지신신앙
        • 3. 신라의 토착신앙
          • 1) 천신신앙
          • 2) 조상숭배신앙
          • 3) 지신신앙
        • 4. 토착신앙과 불교와의 관계
          • 1) 토착신앙과 불교와의 갈등
          • 2) 토착신앙과 불교와의 융화
          • 3) 토착신앙과 불교의 교대
      • Ⅱ. 불교와 도교
        • 1. 불교
          • 1) 고구려의 불교
            • (1) 불교의 전래
            • (2) 교학의 발전
            • (3) 불교신앙
            • (4) 일본에 불교를 전파한 승려들
            • (5) 백제·신라에서 활약한 승려들
          • 2) 백제의 불교
            • (1) 불교의 전래
            • (2) 교학의 발전과 불교신앙
            • (3) 백제불교의 일본 전파
          • 3) 신라의 불교
            • (1) 불교의 전래
            • (2) 불교공인의 실상
            • (3) 진흥왕대의 불교
            • (4) 미륵신앙의 양상
            • (5) 신라 불국토설의 내용과 대두 시기
            • (6) 중고시대의 고승
            • (7) 불교의 대중화
          • 4) 가야의 불교
        • 2. 도교
          • 1) 도교의 전래와 수용기반
          • 2) 도교사상
            • (1) 고구려
            • (2) 백제
            • (3) 신라
      • Ⅲ. 유학과 역사학
        • 1. 역사개념의 출현
        • 2. 유학과 역사학의 관련
        • 3. 삼국의 유학
        • 4. 삼국의 역사편찬
          • 1) 고구려
          • 2) 백제
          • 3) 신라
      • Ⅳ. 문학과 예술
        • 1. 언어와 문학
          • 1) 언어
            • (1) 고구려어·백제어·신라어
            • (2) 삼국 언어의 상호관계
          • 2) 시가
            • (1) 한국시의 생성과 노래의 집단성
            • (2) 창작적 노래의 출현과 민족의 발견
            • (3) 삼국의 시가와 한국시의 전통
        • 2. 회화
          • 1) 고구려의 회화
          • 2) 백제의 회화
          • 3) 신라와 가야의 회화
        • 3. 서예
          • 1) 고구려의 서예
          • 2) 백제의 서예
          • 3) 신라의 서예
        • 4. 조각
          • 1) 청동기시대의 조각
          • 2) 삼국시대의 조각
            • (1) 일반 조각
            • (2) 불교조각
        • 5. 공예
          • 1) 금속공예
            • (1) 금속공예의 종류
            • (2) 금속공예의 기법과 공예품
            • (3) 금속제 그릇들
            • (4) 삼국시대의 동경
          • 2) 유리공예
          • 3) 도자공예
            • (1) 고구려의 토기와 도기
            • (2) 백제의 토기
            • (3) 신라의 토기
          • 4) 목칠공예
        • 6. 건축
          • 1) 사원건축
            • (1) 고구려
            • (2) 백제
            • (3) 신라
          • 2) 궁실·연못
            • (1) 궁실
            • (2) 연못
          • 3) 성곽
            • (1) 고구려 성곽
            • (2) 백제 성곽
            • (3) 신라 성곽
            • (4) 가야 성곽
            • (5) 삼국 및 가야 성곽의 성격
        • 7. 고분
          • 1) 고구려 고분
            • (1) 적석총
            • (2) 봉토석실분
          • 2) 백제 고분
            • (1) 토광묘
            • (2) 토축묘
            • (3) 주구토광묘
            • (4) 적석총
            • (5) 석곽묘
            • (6) 옹관묘
            • (7) 화장묘
            • (8) 석실분
            • (9) 전축분
          • 3) 신라 고분
            • (1) 토광묘
            • (2) 석곽묘
            • (3) 적석목곽분
            • (4) 횡혈식 석실분
          • 4) 가야고분
            • (1) 토광묘
            • (2) 석곽묘
            • (3) 석실분
          • 5) 원방형분
        • 8. 음악
          • 1) 향악의 기원과 상고사회의 음악문화
            • (1) 한민족의 기원문제와 향악
            • (2) 상고사회의 음악문화
          • 2) 삼국시대의 음악문화
            • (1) 고구려
            • (2) 백제
            • (3) 가야와 신라
          • 3) 삼국시대의 해외음악활동
            • (1) 중국에서의 고려악
            • (2) 일본조정에서의 삼국악
        • 9. 무용·체육
          • 1) 무용
          • 2) 체육
            • (1) 무예
            • (2) 놀이
      • Ⅴ. 과학기술
        • 1. 한국 과학기술의 형성
        • 2. 고구려의 과학과 기술
          • 1) 하늘의 과학
            • (1) 천문도를 만들다
            • (2) 천문관측제도와 활동
            • (3) 기상 관측
          • 2) 산업기술 및 생활과학
            • (1) 고구려척과 축조기술
            • (2) 금속기술
            • (3) 연단술
            • (4) 도구와 기계장치
          • 3) 의약학
          • 4) 지도의 제작
        • 3. 백제의 과학과 기술
          • 1) 천문학과 역산학
          • 2) 지리학과 의약학
          • 3) 산업기술
            • (1) 농업기술의 혁신
            • (2) 토목기술
            • (3) 금속기술
            • (4) 요업기술
        • 4. 신라의 과학과 기술
          • 1) 하늘의 과학
            • (1) 첨성대를 세우다
            • (2) 천문기상 관측
          • 2) 의약학
          • 3) 산업기술
            • (1) 농업기술
            • (2) 금속기술
            • (3) 요업기술
            • (4) 그 밖의 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1. 의생활
          • 1) 의생활의 기본구조
            • (1) 관모와 머리모양
            • (2) 저고리(유)
            • (3) 바지(고)
            • (4) 치마(상)
            • (5) 두루마기(포)
            • (6) 대
            • (7) 신(이·화)
          • 2) 고구려의 의생활
            • (1) 관모
            • (2) 의복
          • 3) 백제의 의생활
            • (1) 왕복
            • (2) 관인 복식
          • 4) 신라의 의생활
          • 5) 가야의 의생활
        • 2. 식생활
        • 3. 주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1. 선사시대 문물의 일본 전파
        • 2. 학문과 사상
        • 3. 역학·의약·기술
        • 4. 예술 문화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4) 미륵신앙의 양상

 미륵불은 未來佛로서 현세의 석가불이 다 濟度하지 못한 중생을 성불시킨다고 한다. 이 미륵신앙도 所依經典에 따라 일반적으로 두 종류로 나눈다. 먼저 현재 도솔천에 있는 미륵보살을 믿어 死後 天上에 왕생하기를 희구하는 上生信仰이 있다. 또 하나는 먼 미래에 이 땅이 樂土가 되었을때 미륵이 下生하여 龍華樹 아래에서 세 번의 설법으로 중생을 제도할 때 참여하겠다는 하생신앙이 그것이다. 그리고 미륵이 출현하는 국토에는 전륜성왕이 나타나 正法으로 나라를 다스린다고 한다.

 아래에 몇 가지 사료를 검토해감으로써 中古期 즉 통일 이전의 신라 미륵신앙에 대하여 서술하고자 한다.

眞智王 때(576∼579) 흥륜사 승 眞慈는 언제나 堂主인 미륵상 앞에 나아가, 彌勒大聖께서 花郞으로 化身하시어 이 세상에 오시면 늘 뵈옵고 가까이 모시겠다고 서원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꿈에 한 스님이 熊川 水源寺에 가면 彌勒仙花를 뵐 수 있다고 일러주었다. 이튿날 진자는 거기를 찾아가서 京師人이라고 밝힌 용모 단정한 소년의 마중만 받고 그냥 돌아왔다. 그런데 먼저 만난 그 소년이 바로 미륵선화라는 산신령의 말을 나중에 듣고서야 靈廟寺 동북쪽의 나무 밑에서 그 소년을 찾았다. 그의 이름이 ‘未尸’인 것만 알 뿐, 일찍 부모를 여의었고 姓도 모른다고 하였다. 왕은 이 소년을 敬愛하여 國仙으로 모셨고, 그의 風流가 7년 동안 빛났는데 문득 종적을 감췄다(≪三國遺事≫ 권 3, 塔像 4, 彌勒仙花 未尸郞 眞慈師).

 위 설화에서 우리는 미륵이 신라에 하생하여 화랑이 된다는 당대의 믿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위 사료에서 간과해서는 안될 점이 있다. 첫째 신라인들 스스로가 현재 미륵의 住處를 백제로 인식하고 있다. 이것은 자신들의 신라가 곧 佛國土라는 믿음과는 상당한 時差를 보이고 있다. 둘째 미시랑의 출신이 寒微하고 그 終末도 모호하다는 점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화랑의 출신 신분이나 사회적 성격이 始終 일정했던 것은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미시랑의 나중 행적이 모호한 점은 아마도 진지왕의 폐위와 관련이 있는 것 같고, 여타 화랑집단과의 알력 같은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139)

 竹旨郞은 眞平王代(579∼632)의 화랑이었고, 김유신의 副帥로서 삼국통일에 공을 세운 인물이다. 그의 출생에 대한 이야기를 옮겨본다.

죽지랑의 아버지 述宗公이 朔州 都督使로 부임하러 갈 때, 竹旨嶺에서 한 居士가 길을 닦아주었다. 부임 한 달 후 거사의 안부를 물으니, 이미 거사는 죽은 뒤였다. 죽지랑의 부모는 거사의 무덤 앞에 石彌勒像을 만들어 모셨다. 이즈음 죽지랑의 어머니는 胎氣가 있었는데, 거사가 託生한 아이라 하여 출산 후 이름을 竹旨라 하였다(≪三國遺事≫ 권 2, 紀異 2, 孝昭王代 竹旨郞).

 이것은 거사가 환생하여 죽지랑이 되었다는 이야기인데, 여기에 미륵석상이 개재되어 있다. 미시랑 설화를 참고할 때 거사의 무덤 앞에 미륵석상을 안치했다는 것은, 거사가 미륵으로 下生하기를 기원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화랑을 하생한 미륵으로 인식한 예로서는 김유신(595∼673)이 15세에 화랑이 되었을 때 사람들이 그 무리를「龍華香徒」라고 불렀다고 한 것을 들 수 있다. 즉 彌勒信徒라는 뜻이다. 미시랑·죽지랑·김유신의 경우를 종합해보면, “화랑단체가 그 이념으로 삼았던 이상국가란 다름아닌 불교의 理想國家觀인 미륵정토를 구현하는 데 있었던 것으로 龍華樹下 三會의 설법에 値遇하여 왕생을 얻고자 하는 미륵하생신앙이 신라라는 현실 국토에 그대로 龍華三會를 그려보려는 데 있었다.”는140) 주정은 설득력이 있다. 그런데 신라 중고시대의 무덤에 미륵석상을 안치하는 경우가 비교적 많았다면, 죽지랑의 경우 반드시 화랑과 미륵신앙이 직결됨을 보여주는 예로서 적합할지 의문이다.

 彌勒石像이 무덤에 놓여 있는 사례를 보도록 하자.

道中寺 僧 生義는, 어떤 스님이 생의를 南山으로 데리고 가서 풀을 묶어 표시한 뒤 자신이 여기에 묻혀 있으니 파내어 고개 위에 안치해달라고 하는 꿈을 꾸었다. 이튿날 친구와 함께 그 곳을 찾아가서 파보니 石彌勒像이 나와서 三花嶺에 모셨다. 그는 善德王 12년(643)에 여기에 절을 짓고 살았다(≪三國遺事≫권 3, 塔像 4, 生義寺石彌勒).

 일부 학계에서는 경주 남산 長倉谷에서 옮겨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는 미륵삼존이 바로 이 미륵상이라고 한다.141) 이 미륵은 出土處로 볼 때 원래 古墳의 石室에 모셨던 것이라고 이해되어 왔으나, 그 곳은 始原的 형태의 石窟이라는 주장도 제기되었다.142) 그러나 죽지랑이나 뒤에서 볼 調信의 예에서 보듯이 오히려 고분일 가능성이 더욱 크다. 경주 西岳里 고분에서는 앞·뒷면에 金剛力士像이 새겨진 돌문(石扉)이 나온 예도 있다.143) 따라서 고분에는 불상은 물론 神將像까지 모셔진 경우를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외에도 비록 통일 후의 이야기지만 洛山寺 大悲像 앞에서 꿈을 꾼 調信이 꿈속에서 죽은 아들을 파묻었던 곳으로 찾아가 파보니 돌미륵이 나왔다고 한다.144) 그러므로 신라인들이 무덤에 미륵상을 묻는 습속은 드물지 않았고,145) 그것은 죽은 이가 미륵 도솔천에 왕생하기를 기원하는 것이었다고 해석된다.146) 이와 같은 造像 의도는 삼국불교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되는 北魏의 미륵신앙이 도솔천 上生에 비중을 두면서도 상생의 대상은 發願者 자신이 아니라 돌아가신 부모 등 死者의 追善을 希求한 것이었다는 신앙 경향147)과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죽지랑의 부모도 그러한 관행에 따라 거사의 무덤에 미륵상을 모셨을 것이다. 그런데 죽지랑이 화랑이 된 뒤, 미륵하생 신앙자들이 거사 무덤의 미륵상에 특별히 의미를 부여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미륵상생신앙의 단적인 예가 바로 중고기에 많이 조성된 미륵반가사유상일 것이며,148) 이것은 현재 도솔천에서 수행중인 미륵보살상이라고 함은 익히 아는 바이다.149)

 미륵상생신앙과 관련하여 주목을 끄는 자료로서 斷石山 神仙寺 마애불과 그 造像銘記가 있다. 경주 단석산 거의 정상에 부처·보살 및 人物像까지 도합 10軀가 高浮彫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반가사유상은 일찍부터 주목되어 왔다. 이렇게 조상을 하게 된 인연과 發願을 적은 것이 조상명기로서 약 20行으로 되어 있다. 이 유적은 중고기의 왕비족인 岑喙部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최근에 밝혀졌다.150) 銘記의 내용은 滅罪·참회하고 福을 닦아 彼岸(도솔천)에 왕생하여 成佛할 것을 서원하면서, 미륵석상 1구와 보살 2구를 만든다는 것이다. 이들은 미륵하생집단 또는 화랑도와는 분명히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 이들의 참회주의적 계율관은 이른바 세속오계와 대조적이고, 이들이 정통 梵唄인「新曲」을 부르는 데 반해 화랑도는 향가를 즐겨 불렀다. 따라서 중고기의 미륵신앙을 下生 일변도로 보아서는 안되며, 그 실상은 출신 部나 신앙집단에 따라 생각보다 복잡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139)비슷한 이유를 들어서 화랑집단과 미륵신앙의 결합을 진평왕대 이후로 보는 견해가 있다(福士慈稔,<圓光の世俗の五戒と花郞集團について>(≪印度學佛敎學硏究≫37-2, 통권74, 1989, 644∼646쪽).

≪三國遺事≫彌勒仙花 未尸郞 眞慈師조를 분석한 글로 金煐泰,<彌勒仙花攷>(≪佛敎學報≫3·4합집, 1966)이 있다.
140)安啓賢, 앞의 글, 203쪽.
141)黃壽永,<新羅南山三花嶺彌勒世尊>(앞의 책), 256∼261쪽.
142)黃壽永, 위의 글, 255쪽.
143)中吉功,<三國時代の金銅佛>(≪新羅·高麗の佛像≫, 二玄社, 1971), 55쪽.
144)≪三國遺事≫권 3, 塔像 4, 洛山二大聖 調信.
145)金杜珍은 미륵「仙花」곧「神仙」이란 토착적 巫覡信仰에서 받아들여지는 神格의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하였다(金杜珍,<新羅 中古時代의 彌勒信仰>,≪韓國學論叢≫9, 國民大, 1987, 20∼21쪽). 장지훈은 國仙의 무리에 속하는 月明師가 鄕歌만 알 뿐 梵聲에는 익숙치 못하다고 한 점을 들어 화랑도가 불교와 별로 관계가 없다고 하였다. 또 죽은 사람의 영혼이 童子로 化하여 다시 인간세계로 와서 샤만이 된다는 동북아시아 신화 모티프를 예로 들어, 신라인의 종교관에서 볼 때 미륵은 불교적인 존재로서보다는 샤만적 존재로 인식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였다(장지훈,<신라미륵신앙의 사상적 특성>,≪宋甲鎬敎授停年退任紀念論文集≫, 高麗大, 1993).
146)金煐泰도 죽지랑 설화를 언급하면서, “死者를 위해서 (미륵상을) 安置한 것이라면 兜率生天을 祈祝했다고 볼 것이다.”고 하였다(金煐泰,<新羅 白月山 二聖 說話의 硏究>,≪曉城趙明基博士華甲紀念 佛敎史學論叢≫, 東國大, 1965, 58쪽). 그러나 그는 “거사를 생각한 것보다도 다시 자기 집에 태어날 새 생명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生天이나 往生을 위한 뜻이 아니라 하였다.
147)塚本善隆,<龍門石窟に現れたる北魏佛敎>(≪支那佛敎史硏究≫ 北魏篇, 弘文堂, 1942), 502∼503쪽.
148)이에 대해서는 黃壽永,<新羅半跏思惟石像>(앞의 책) 참조.
149)韓相吉은 甘山寺彌勒菩薩造像記(719)를 예로 들어, 亡者를 위해 미륵상을 조성하는 일은 보기 드문 경우라 하였는데, 오히려 중고기 이래의 일반적 현상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미륵반가사유상을 미륵하생신앙과 연결시켰다(韓相吉,<新羅 彌勒下生信仰의 연구>,≪伽山李智冠스님華甲紀念論叢 韓國佛敎文化思想史≫上, 伽山文庫, 1992, 327쪽).
150)辛鍾遠,<斷石山神仙寺 造像銘記에 보이는 彌勒信仰 집단에 대하여-新羅 中古期의 왕비족 岑喙部->(≪歷史學報≫143, 1994), 1∼26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