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안홍(579∼640?)
安含으로도 알려진 安弘은 진평왕 23년(601)에 수나라에 유학가서 5년만에 胡僧과 함께 돌아왔다. 안홍의 저서에는 讖書라고 하는≪東都成立記≫한 권이 있다.≪해동고승전≫에 이 책의 일부가 실려 있지만, 원문과 후대의 해석문이 섞여 있어 판별하기가 쉽지 않다. 원문의 대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이 추측된다. 머지 않아 이웃 나라로부터 침공을 받을 것이며, 이에 대비하여 중국에 적극적인 외교를 펼칠 것, 그리고 비록 이러한 시련이 있더라도 희망찬 미래를 약속할 수 있는 까닭은 선덕왕이 忉利天女이므로 신라는 곧 불국토로서 부처의 보살핌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안홍은 황룡사에 9층탑을 세워 九韓의 침공을 막으라고 하였다. 이것은 그가 유학시절에 수나라의 國刹 大興善寺 탑을 보고 그러한 호국 인연을 본받고자 한 것이다.
隋 文帝는 새 왕조의 무궁한 발전을 빌고 아홉 오랑캐가 평정되었음을(九服) 스스로 칭송하는 詔勅을 내렸는데, 당시 수나라에는 천하통일의 당위성을 논하는 참서가 유행하였다. 즉 수 문제는 四天王의 보살핌과 도리천 덕분에 천자가 되었다고 하는 불국토설 등이 그 내용인데, 안홍은 이러한 견문을 그대로 신라에 원용하였다. 신라 불국토설은 자장으로부터 나온 것이라 하지만 자장의 발상도 실은 안홍의 그것을 이어받아 발전시킨 것이다.163) 9층탑 건립은 당나라에서 귀국한 자장의 건의에 의해서 이루어졌지만, 그 뒤 통일이 되자 이 모든 것을 예언했던 안홍과 그의 讖書가 새삼 높이 평가되었을 것이다. 비록 불교계측의 예언이기는 하지만 신라인들은 자신들의 나라가 불국토이기 때문에 외적방어의 차원을 넘어 聖域의 보전, 더 나아가 신라를 중심으로 欲界의 인간세상을 이룩하고자 한 것이다. 수 문제의 讖文은 이미 성취된 것에 대한 당위적 설명이지만, 신라의 불국토설은 미래상의 제시로서 이것은 전적으로 안홍의 공적이다.1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