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서예
우리 나라의 書藝史는 삼국시대로부터 시작된다. 물론 고조선시대로부터 중국과의 문화교섭을 통해 문자가 전래되었지만, 이를 확인시켜주는 유물은 전하지 않는다. 현존하는 유물은 고구려·백제·신라 등의 고대국가가 형성되었던 삼국시대 이후의 것인데 아직까지 原삼국시대의 것으로서 두드러진 예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의 유적에서 명문이 있는 秦·漢代의 청동기가 발견되었고 경남 창원의 茶戶里古墳(B.C. 1세기 후반)에서 글씨를 쓰기 위한 것으로 여겨지는 毛筆이 출토되는 등 문자를 이해하고 사용했음을 짐작하게 하는 자료들은 전하고 있다.
한편 경상남도 남해군에는 연대미상의 古刻石이 전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19세기말 淸나라 금석학자들에 의해 “徐市起禮日出” 등으로 해독되어 우리 나라 최고의 문자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각석은 여러 면에서 볼 때 문자라기보다 岩刻畵의 일종으로 판단되고 있어 서예사료로서 다루기 어렵다. 또한 경남 창녕의 校洞古墳에서 출토된 鐵製環頭大刀에는 금으로 상감된 명문이 몇 글자 있는데, 삼국시대 鐵劍銘으로서 희귀한 예이지만 서예사료로서의 가치를 논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삼국시대의 서예사 자료는 石碑 등을 비롯하여 刻石·墓誌·造像記 등의 금석문으로 전한다. 이들은 고대사의 사료로서 중요할 뿐만 아니라 글씨에 나타난 書風을 통해 당시의 문화적 성향과 수준을 짐작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