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대08권 삼국의 문화Ⅳ. 문학과 예술6. 건축2) 궁실·연못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1. 고구려의 토착신앙
          • 1) 천신신앙
          • 2) 조상숭배신앙
          • 3) 지신신앙
        • 2. 백제의 토착신앙
          • 1) 천신신앙
          • 2) 조상숭배신앙
          • 3) 지신신앙
        • 3. 신라의 토착신앙
          • 1) 천신신앙
          • 2) 조상숭배신앙
          • 3) 지신신앙
        • 4. 토착신앙과 불교와의 관계
          • 1) 토착신앙과 불교와의 갈등
          • 2) 토착신앙과 불교와의 융화
          • 3) 토착신앙과 불교의 교대
      • Ⅱ. 불교와 도교
        • 1. 불교
          • 1) 고구려의 불교
            • (1) 불교의 전래
            • (2) 교학의 발전
            • (3) 불교신앙
            • (4) 일본에 불교를 전파한 승려들
            • (5) 백제·신라에서 활약한 승려들
          • 2) 백제의 불교
            • (1) 불교의 전래
            • (2) 교학의 발전과 불교신앙
            • (3) 백제불교의 일본 전파
          • 3) 신라의 불교
            • (1) 불교의 전래
            • (2) 불교공인의 실상
            • (3) 진흥왕대의 불교
            • (4) 미륵신앙의 양상
            • (5) 신라 불국토설의 내용과 대두 시기
            • (6) 중고시대의 고승
            • (7) 불교의 대중화
          • 4) 가야의 불교
        • 2. 도교
          • 1) 도교의 전래와 수용기반
          • 2) 도교사상
            • (1) 고구려
            • (2) 백제
            • (3) 신라
      • Ⅲ. 유학과 역사학
        • 1. 역사개념의 출현
        • 2. 유학과 역사학의 관련
        • 3. 삼국의 유학
        • 4. 삼국의 역사편찬
          • 1) 고구려
          • 2) 백제
          • 3) 신라
      • Ⅳ. 문학과 예술
        • 1. 언어와 문학
          • 1) 언어
            • (1) 고구려어·백제어·신라어
            • (2) 삼국 언어의 상호관계
          • 2) 시가
            • (1) 한국시의 생성과 노래의 집단성
            • (2) 창작적 노래의 출현과 민족의 발견
            • (3) 삼국의 시가와 한국시의 전통
        • 2. 회화
          • 1) 고구려의 회화
          • 2) 백제의 회화
          • 3) 신라와 가야의 회화
        • 3. 서예
          • 1) 고구려의 서예
          • 2) 백제의 서예
          • 3) 신라의 서예
        • 4. 조각
          • 1) 청동기시대의 조각
          • 2) 삼국시대의 조각
            • (1) 일반 조각
            • (2) 불교조각
        • 5. 공예
          • 1) 금속공예
            • (1) 금속공예의 종류
            • (2) 금속공예의 기법과 공예품
            • (3) 금속제 그릇들
            • (4) 삼국시대의 동경
          • 2) 유리공예
          • 3) 도자공예
            • (1) 고구려의 토기와 도기
            • (2) 백제의 토기
            • (3) 신라의 토기
          • 4) 목칠공예
        • 6. 건축
          • 1) 사원건축
            • (1) 고구려
            • (2) 백제
            • (3) 신라
          • 2) 궁실·연못
            • (1) 궁실
            • (2) 연못
          • 3) 성곽
            • (1) 고구려 성곽
            • (2) 백제 성곽
            • (3) 신라 성곽
            • (4) 가야 성곽
            • (5) 삼국 및 가야 성곽의 성격
        • 7. 고분
          • 1) 고구려 고분
            • (1) 적석총
            • (2) 봉토석실분
          • 2) 백제 고분
            • (1) 토광묘
            • (2) 토축묘
            • (3) 주구토광묘
            • (4) 적석총
            • (5) 석곽묘
            • (6) 옹관묘
            • (7) 화장묘
            • (8) 석실분
            • (9) 전축분
          • 3) 신라 고분
            • (1) 토광묘
            • (2) 석곽묘
            • (3) 적석목곽분
            • (4) 횡혈식 석실분
          • 4) 가야고분
            • (1) 토광묘
            • (2) 석곽묘
            • (3) 석실분
          • 5) 원방형분
        • 8. 음악
          • 1) 향악의 기원과 상고사회의 음악문화
            • (1) 한민족의 기원문제와 향악
            • (2) 상고사회의 음악문화
          • 2) 삼국시대의 음악문화
            • (1) 고구려
            • (2) 백제
            • (3) 가야와 신라
          • 3) 삼국시대의 해외음악활동
            • (1) 중국에서의 고려악
            • (2) 일본조정에서의 삼국악
        • 9. 무용·체육
          • 1) 무용
          • 2) 체육
            • (1) 무예
            • (2) 놀이
      • Ⅴ. 과학기술
        • 1. 한국 과학기술의 형성
        • 2. 고구려의 과학과 기술
          • 1) 하늘의 과학
            • (1) 천문도를 만들다
            • (2) 천문관측제도와 활동
            • (3) 기상 관측
          • 2) 산업기술 및 생활과학
            • (1) 고구려척과 축조기술
            • (2) 금속기술
            • (3) 연단술
            • (4) 도구와 기계장치
          • 3) 의약학
          • 4) 지도의 제작
        • 3. 백제의 과학과 기술
          • 1) 천문학과 역산학
          • 2) 지리학과 의약학
          • 3) 산업기술
            • (1) 농업기술의 혁신
            • (2) 토목기술
            • (3) 금속기술
            • (4) 요업기술
        • 4. 신라의 과학과 기술
          • 1) 하늘의 과학
            • (1) 첨성대를 세우다
            • (2) 천문기상 관측
          • 2) 의약학
          • 3) 산업기술
            • (1) 농업기술
            • (2) 금속기술
            • (3) 요업기술
            • (4) 그 밖의 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1. 의생활
          • 1) 의생활의 기본구조
            • (1) 관모와 머리모양
            • (2) 저고리(유)
            • (3) 바지(고)
            • (4) 치마(상)
            • (5) 두루마기(포)
            • (6) 대
            • (7) 신(이·화)
          • 2) 고구려의 의생활
            • (1) 관모
            • (2) 의복
          • 3) 백제의 의생활
            • (1) 왕복
            • (2) 관인 복식
          • 4) 신라의 의생활
          • 5) 가야의 의생활
        • 2. 식생활
        • 3. 주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1. 선사시대 문물의 일본 전파
        • 2. 학문과 사상
        • 3. 역학·의약·기술
        • 4. 예술 문화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궁실·연못

(1) 궁실

 宮室이란 용어는 우리 나라나 중국의 고대 문헌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말이다. 이들 문헌에 나타난「궁실」의 뜻은 쉽게 궁궐 또는 궁전이란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三國志≫高句麗條에는 고구려에 불교문화가 전해지기 이전의 상태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으며, 이 글 가운데 ‘궁실’은 궁궐이나 궁전이라고 이해하기 어렵다.

그 풍속은 음식을 절양하고 즐겨 궁실을 다스리며 거처하는 곳 좌우에 대옥을 세워 귀신과 영정 사직을 제사한다(≪三國志≫東夷傳 高句麗).

 여기에서의 궁실은 궁전건물을 포함한 당시 귀족의 주택건물을 총칭한 것인 듯 하다. 그리고 이 건물은 기와로 있고, 단청한 발달된 새로운 건축기법으로 된 화려한 건물이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새로운 건물 모습에 관해서는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고구려·백제·신라의 궁궐에 대해서만 말하기로 하겠다.

 고구려:고구려 건국시의 도읍은 沸流江 유역의 卒本지역으로 전하며 유리왕대(B.C. 19∼18)에 압록강 북쪽 通溝의 國內城으로 옮겼고, 山上王 13년(209)에는 丸都에 천도하고, 長壽王 15년(427)에 平壤으로 도읍을 옮겼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의 소재지는 확실하지 않고 현재 통구에는 國內城址라고 전하는 유적이 있다. 유적에는 성벽을 비롯한 문지와 角樓·稚城 등이 남아 있으나 궁궐터는 확실치 않고 건물들의 배치 상황도 전혀 알 수 없다.

 평양에 천도하고는 大城山 남쪽 기슭에 安鶴宮을 건립하여 정궁으로 삼았고, 平壤城을 축조하여 그 안에 牧丹台·萬壽台 등의 遺址들이 남아있다(<그림 1>). 그러나 이들 궁궐지 가운데 발굴되어 건물의 배치 등 궁궐의 모습을 알게된 것은 安鶴宮址뿐이다.420)

<그림 1> 대성산 주변 고구려 유적분포

 안학궁은 외곽 성벽의 일변이 약 610m의 마름모꼴 비슷한 평면이며, 그 속에 총 건평 31,500㎡ 가까운 58동의 건물터가 있다. 성벽은 밑이 약 9m로서 흙과 돌은 섞어서 쌓았고, 내외면 하부에는 일정한 높이의 석축이 있었다. 성곽의 남벽 중앙과 그 좌우, 그리고 동·서·북벽 중앙에 성문이 있었다.

 궁궐의 중요건물들은 남문을 통과하는 중심축상에 기본적으로 좌우대칭이 되도록 배치하고 있으나 궁궐 중앙부 이외에는 지형에 따라 적절히 건물을 배치하고 있었다. 건물은 남문 북쪽에 남궁과 중궁·북궁이 일직선상에 놓이고, 이들 궁은 서로 궁에 따른 건물과 복랑의 회랑과 문에 의해 서로 연결되고 있었다. 궁궐 안 서북 모서리와 동변 중앙부에는 각각 좌우에 翼舍가 붙은 두 동의 건물이 있고, 이들 건물에는 문이나 회랑이 없었다.

 남궁의 동서 길이는 280m나 되고 그 제1궁전은 정면 11칸, 측면 5칸의 건물로써 안학궁의 가장 큰 건물이고 그 좌우에는 翼廊이 달려 있었다. 제1궁전의 회랑은 남북 114.5m, 동서 85m의 복랑이며 남회랑 중앙에 전면 5칸, 측면 2칸의 문이 설치되었다. 제1궁 서쪽에는 회랑으로 연결되어 남향한 건물이 있고, 건물 앞에는 造山과 연못이 있는 정원이 있었다. 제1궁 동쪽에도 남궁 동휘랑을 공용하여 그 동쪽으로 편면이 日자형의 회랑으로 둘러쌓인 일군의 건물이 있었고 이 남회랑 중앙에 문이 있고, 중앙회랑 중심에는 좀 작은 건물, 그리고 북회랑 중앙에는 좀 큰 건물이 있었다. 이 남궁은 왕의 공식 업무를 위한 궁전이었을 것으로 추측되었다.

 중궁과 북궁은 남궁에 비해 규모가 작으며, 북궁은 서궁과 한 덩어리가 되어 남북으로 긴 여러 채의 행랑 사이에 남향한 크고 작은 건물들이 배치되었다. 북궁 북단과 북문 사이에도 조산을 만든 정원터가 있었다. 왕의 사적인 정원 즉, 禁苑인 듯 했다. 동궁은 성곽 안 동북쪽 모서리인 좀 낮은 지대에 있었다. 궁궐 중심에서 동쪽으로 떨어진 곳에 있는 것으로 보아 동궁 즉, 태자를 위한 궁으로 보이며, 성곽 동남 모서리에는 장방형의 연못터가 있었다.

 이와 같은 안학궁의 건물 배치로 보아 고구려 궁궐은 주위에 성벽을 쌓아 궁성을 형성하여 그 내부 중앙부에 주된 궁전건물을 질서 있게 배치하고 그 좌우 북쪽에 사적인 궁전이나 부속시설 등을 배치하며 정원도 만든 어느 정도의 규칙적 배치방법이 정착되고 있었던 사실을 알 수 있었다(<그림 2>).

<그림 2>안학궁 배치도

 백제:백제 도읍은 건국당초 한강 연안의 慰禮城에 정했으나 近肖古王 26년(371)에 漢山下에 도읍을 옮겼다고 한다.421) 그러나 위례성이나 漢山城의 위치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분분하여 통일된 견해는 없다. 다만 석촌동이나 방이동의 고분군에 주목하여 그 부근의 어느 곳이 도읍지였을 것이라는 견해가 많으며, 이들 고분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몽촌토성이나 풍납동 토성을 도성으로 비정하는 견해도 있다.422) 그러나 이들 유적에서도 당시의 확실한 궁궐터로 보이는 유구가 발견되지 않았다. 이 밖에도 廣州郡의 二聖山城을 발굴하여 여러 건물터가 발견되어 도성으로 추정하기도 했으나 확실한 것이 못되었다.

 文周王 원년(475)에 고구려에 의해 한산성이 함락되자 도읍을 공주로 옮겼고 그때의 도성이 公山城이라 생각되고 있다. 이 공산성 내부 건물터의 발굴에서 여러 건물 유구가 발견되었으나 대부분이 후대의 건물터였고, 성내 서남쪽의 臨流閣터로 추정되는 곳에서 백제 숫막새 1점이 출토되어 이 곳이 公州期의 궁궐터라는 의견도 있으나423) 이론도 많다. 종래 이 시기의 궁궐은 이 산성 남쪽기슭에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으나 그에 대한 발굴이 실시되지 않아 아직 단정할 수는 없는 상태다.

 聖王 16년(538)에는 도읍을 공주 남쪽 白馬江의 부여로 옮겨, 義慈王 20년(660)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의 도읍이 되었다. 부여도성은 종래의 백제도성과는 달리 중국 고대도성의 제도에 따라 扶蘇山城을 후진으로 그 남쪽과 백마강 서안 일대를 둘러싼 羅城을 축조하고 그 안에 五部五巷의 구획을 만들어 그 속에 일만 여 호를 넣어 관아와 사원 등을 배치한 條坊制를 실시했다. 그러나 현재 조방제 흔적은 찾을 수 없고 궁궐의 위치가 부소산 남쪽 기슭으로 전해질뿐이다. 최근 이 부근에 궁궐에 속하는 시설의 일부로 생각되어지는 유구들이 발견되기도 하였으나 그 실태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와 같이 백제 궁궐의 유적으로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없으나,≪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해 초기의 궁궐은 검소하고 소박한 것이었으나424) 후에는 못을 파고 조산하여 진기한 짐승과 화초를 기르는 정원도 꾸미고,425) 泗沘宮에서도 그 말기에 들어서는 화려한 원지를 궁남에 파기도 하고,426) 호화로운 태자궁을 짓는 등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궁궐을 경영하였다.

 신라:신라의 도읍은 건국에서 멸망할 때까지의 근 천년 동안 경주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것은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것은 경주가 동쪽에 明活山, 북쪽에 金剛山(北岳), 서쪽에는 玉女峰과 仙挑山(西岳) 그리고 남쪽에 金鰲山(南山)에 둘러싸인 분지로서 천연적 요새를 이루고 있으며, 이들 산악에는 각기 견고한 산성이 축조되어 도성 방어에 유리하였기 때문이다.

 신라 궁궐에 관해서는 赫居世가 처음에 南山 서록 高虛村에 왕궁을 마련했고,427) 그 뒤 21년(B.C. 37)에 토성인 金城을 축조하고 26년에는 그 속에 왕궁을 건립했다고 한다.428) 금성의 위치는≪東京雜記≫에 ‘府東四里’라고 되어 있고, 일설에는 閼川 유역에 있었으나 하천의 범람으로 유구가 유실된 것이 아닌가 하고 혹은 시가지 동쪽의 南古壘를 그것으로 비정하기도 한다.

 신라 도성의 대표적인 것은 月城이다. 월성은 금성 동남에 婆娑王 22년(101)에 축조하였고429) 그 후로는 왕궁이 月城 안에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월성은 경주 남쪽을 흐르는 南川의 망곡부 북안을 남변으로 한 구릉지에 반월형으로 축조된 토성으로 토성 정상에 女墻처럼 굵은 냇돌로 담장을 쌓았고 밖에는 인공으로 만든 垓字가 있고 북변에는 습지를 이용한 자연해자가 있었다. 토성의 길이는 약 2㎞이고 내부 넓이는 20만㎡정도로서 궁궐의 궁성으로는 작은 규모이다. 따라서 성내에는 궁궐의 주요 건물들이 있었고, 그 밖의 시설은 성밖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삼국사기≫등에 의하면 성내에는 남문과 서문(歸正門) 북문이 있고, 정사를 집행하는 남당 (都堂)과 궁궐을 관장하는 內省과 중요한 의식을 거행하는 朝元堂, 시각을 알리는 鼓樓들이 있다고 했고, 그 밖에도 많은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믿어지나 그 유지들은 전혀 알 수 없다.

 신라 왕경은 조방제에 의해 계획되었고 월성을 서남 끝으로 그 동북쪽에 전개되었으며, 황룡사가 그 중심부에 놓인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그 조방의 흔적이 남았고, 일부 당시의 도로들이 발굴에 의해 확인되고 있다.

420)≪조선고고학개요≫(과학·백과사전출판사, 1977), 216∼220쪽.
421)≪三國史記≫권 24, 백제본기 2, 곤초고왕 26년.
422)金元龍,<風納里包含層調査報告>(≪서울대학교 考古人類學叢刊≫3, 1967), 9쪽.
423)≪公山城百濟推定王宮址發掘調査報告書≫(公州師範大 博物館, 1987).
424)≪三國史記≫ 권 23, 백제본기 1, 온조왕 15년.
425)≪三國史記≫ 권 25, 백제본기 3, 진사왕 7년.
426)≪三國史記≫ 권 27, 백제본기 5, 무왕.
427)≪三國遺事≫赫居世.
428)≪三國史記≫ 권 1, 신라본기 1, 혁거세 21·26년.
429)≪三國史記≫권 34, 잡지 3, 지리 1.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