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구조와 형식
적석총을 축조하는 방식은 초기의 소형인 경우는 먼저 지면의 부토층을 걷어내고 고르게 정지한 후 냇돌을 사용하여 기초가 되는 墓壇(墓臺)을 만들고, 그 위에 槨室을 만든 후 그 주위와 위에 적석의 분구를 축조한다. 적석총은 주로 압록강 유역의 고구려 지역에서 유행하였다.
적석의 분구는 일정하지 않으나 초기의 것들은 단순한 돌무지처럼 되었고, 다음 단계에는 피라밋형에 그 머리를 잘라 낸 것과 같은 方臺形(截切頭方錐形)의 무지형태를 이루며, 중기 이후로 내려가면 분구는 定型을 이루며 계단형으로 변한다. 규모는 방대형의 一邊이 대략 13∼15m 정도이다. 계단식의 경우, 돌도 治石하여 長臺形의 돌을 사용하였다. 계단은 3단이 일반적이고 通口의 장군총과 같이 7단을 이룬 것도 있다.505)
내부 시설로는 석곽과 석실이 있는데, 석곽의 경우는 묘단 위에 설치하며 장방형이다. 석실의 경우는 將軍塚에서 보는 바와 같이 橫穴式으로서 羨道와 玄室로 이루어진 것도 있다. 이 경우는 봉토분의 횡혈식 석실이 출현한 후에 축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압록강 유역에 분포하고 있는 적석총 중에는 두 종류의 異形 분구가 있다. 한 종류는 四隅突出形 고분이고, 다른 한 종류는 前方後圓形 고분이다. 전자는 慈江道 楚山郡 蓮舞里에서 발견되었는데, 분구는 無基壇 적석총으로 깬돌로 축조한 묘곽이 있고, 분구의 네모서리에 일정한 면적의 돌을 깔아서 돌출시킨 부분이 발견되었다. 후자는 자강도 초산군 雲坪里 6호분과 慈城郡 松岩里 고분군의 33호분·88호분·106호분 등이 전방후원형 고분으로 밝혀졌다. 무기단 적석총인 이들 고분은 圓丘 앞에 方壇이 부설된 형식을 하고 있다. 앞의 異形 고분들은 특히 일본 고분의 원류로서 주목되고 있다.506)
위와 같은 구조로 된 적석총은 일반적인 형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분구와 내부 시설의 구조 형식의 차이에 기준을 두고 적석총의 형식을 분류한다. 이에 대해서 鄭栢雲507)·鄭燦永508)·朱榮憲509)·李殿福510)·姜仁求·田村晃一511)·魏存誠512) 등 비교적 많은 연구자들의 형식 분류가 제출되어 있다.
505) | 姜仁求,<平壤學界의 高句麗古墳 調査硏究의 成果分析>(≪北韓의 韓國學 硏究成果 分析≫(역사예술편),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91). |
---|---|
506) | 위와 같음. |
507) | 정백운,<조선고대 무덤에 관한 연구>2 (≪문화유산≫1957-2, 과학원 고고학 및 민속학연구소). |
508) | 정찬영,<고구려적석총에 관하여>(≪문화유산≫1961-5). |
509) | 주영헌,<고구려 적석 무덤에 관한 연구>(≪문화유산≫1962-2). |
510) | 李殿福,<集安高句麗墓硏究>(≪考古學報≫1980-2). |
511) | 田村晃一,≪高句麗の東 アジアの考古學≫(東京六興出版, 1990). |
512) | 魏存誠,<高句麗積石墓的類型和演變>(≪考古學報≫1987-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