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신라 고분
(1) 토광묘
신라지역의 土壙墓는 백제지역과는 달리 청동기시대 후기로부터의 전통을 갖고 있다. 九政洞·入室里·竹東里 등지의 세형동검출토 토광묘들이 바로 신라토광묘의 직접적인 祖型이 된다. 1980년대에 들어와서 알려지기 시작한 朝陽洞·隍城洞 등지의 고분은 斯盧國단계의 근거가 된다.569)
조양동의 토광묘는 산록의 낮은 평지성 구릉에 위치하였으며, 목관토광묘와 목곽토광묘의 두 종류가 있다. 목관토광묘는 I형과 Ⅱ형으로 분류되는데, Ⅰ형 묘는 토광의 길이 2m, 너비 0.75m, 깊이 2m이며, 평면은 장타원형이고 후기의 무문토기가 출토되었다. Ⅱ형 묘는 토광의 길이 2.5∼3m, 너비 1∼1.5m, 깊이 1∼1.5m로 평면은 세장의 장방형이며, 후기 무문토기·瓦質土器·약간의 청동기·漢鏡 철기·유리 제식옥 등이 출토되었다. Ⅰ형 묘는 남부지방 무문토기의 下限 연대인 B.C 1세기 후반으로, Ⅱ형 묘는 38호묘에서 출토된 前漢鏡과 무문토기 종말기의 黑色磨硏長頸壺 등으로 A.D 1세기후반으로 각각 추정하고 있다. 목곽토광묘인 Ⅲ형 묘는 길이 4m, 너비 1.2m, 깊이 0.6m의 토광 안에 목곽을 설치하였으며, 다량의 철기와 와질토기가 출토되었는데, 철촉의 형식으로 보아 3세기대로 추정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하여야할 것은 Ⅱ형 묘에 속하는 5호분에서 지면 위에 두 겹 정도의 적석이 있고, 또 토광에 타락한 돌들이 있었다고 하는데,570) 이것은 적석목곽분의 적석부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571) Ⅰ형 묘는 구조와 무문토기의 출토로 보아 재래식으로 보이고, Ⅱ형 묘와 Ⅲ형 묘는 전한경과 흑도 등이 출토되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대동강 유역으로부터 後來한 형식으로 보인다.
황성동에서 발견된 토광은 목곽토광묘이며 와질토기가 출토되었다.5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