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가야고분
(1) 토광묘
가. 토광목관묘
土壙木棺墓는 낙동강하류지방인 김해지방에서 주로 조사되었다. 義昌郡 東面 茶戶里에서 27기, 金海郡 酒村面 良洞里에서 17기, 金海市 大成洞에서 27기 등 총 65기 정도가 조사·보고되었다.
①다호리의 토광목관묘는 野山(해발 20m정도)의 지맥 구릉의 자락 40m×150m 범위 내에 밀집 분포되어 있었다. 토광은 장축을 동서로 하고 東枕으로 매장되었다. 토광의 평면은 圓方形(抹角장방형)으로 묘광벽은 垂直이며, 광저 중간에 腰坑이 있는 것도 있다. Ⅰ형은 묘광의 규모가 크고, 요갱이 있는 것으로 길이 240∼290cm, 너비 86∼136cm, 현 깊이 75∼205cm이다. Ⅱ형은 묘광의 규모가 전자보다 약간 작고 요갱이 없으며, 묘광의 길이 200∼270cm, 너비 80∼160cm, 현 깊이 43∼170cm이다. Ⅲ형은 묘광의 규모도 작고 요갱이 없는 것으로, 묘광의 길이 160∼210cm, 너비 55∼80cm, 현 깊이 20∼80cm이다. 목관은 원목을 절개하고 속을 파낸 구유형으로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은 다양한 편인데, 토기·철기·청동기·장신구·칠기 등이 포함되어 있다. 토기에는 무문토기와 와질토기가 있다. 철기에는 鑄造의 梯形鐵斧와 鍛造의 환두도자·검·矛·과·촉·有肩철부·板狀철부·棒狀철부 등이 주요한 품목을 차지한다. 청동기에는 모·細形銅劍·劍附屬金具·劍把頭飾 등이 있다. 그리고 星雲鏡과 帶鉤가 있다. 칠기로는 붓·활·부채·豆·杯·鉢이 출토되었다. 연대는 대체로 기원전후한 시기로 추정되고 있다.591)
②양동리의 토광목관묘는 야산(해발 90m)의 남사면과 서사면에 정상으로부터 산자락까지 밀집 분포되었다. 2호분을 예로 보면, 묘광의 평면은 원방형이며, 장축은 동서로 하였다. 규모는 길이 310cm, 너비 125cm, 깊이 157cm인데, 분구는 削平되었으나 陷沒土로 관찰하면 낮은 분구의 존재를 추측할 수 있다. 출토유물로는 와질계의 우각형파수부호·단경호·주머니호 등이 있고, 주조와 단조의 철부·철겸·도자 등이 소량 발견되었다. 연대는 기원전 2∼1세기로 추정되고 있다.592)
③대성동의 토광목관묘는 김해평야의 중심지에 솟은 구릉의 자락과 주변 평지에 분포되어 있고, 구릉의 정상부에는 토광목곽묘가 분포되어 있다. 묘광의 평면은 원방형이고 규모는 길이 215∼270cm, 너비 62∼120cm, 현 깊이 30∼110cm이다. 분구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묘광에 함몰된 퇴적토로 미루어 볼 때 낮은 분구의 존재가 추정된다. 묘광 내에서는 板材로 된 목관의 흔적이 확인되었다. 출토유물도 묘광의 형상과 같이 대략 다호리나 양동리와 흡사하게 나타났다. 연대는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후 2세기 전반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5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