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토광묘의 성격
낙동강하류 지방에 분포되어 있는 이들 토광묘는 축조 연대상으로 볼 때,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양동리 70호분은 가야의 전단계로서 초기철기시대로, 다음의 다호리와 양동리의 대부분의 토광목관묘는 早期 가야단계로, 대성동의 대형 목곽묘는 3세기 후반∼4세기 중엽대의 가야 전기의 묘제로 판단된다. 그러므로 기원직후에 이미 가야국을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출토 유물상으로 본다면, 조기가야단계에 한경과 그 방제품이 섞여 있는 점으로 미루어 낙랑·대방 등 漢系세력과 무역 등의 교류가 이루어졌음을 짐작하게 한다.597)
597) | 林孝澤, 앞의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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