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횡구식석실분
횡구식석실은 이미 경주의 신라 석실분에서 언급한 바 있다. 경주의 보문리 부부총과 같이 장방형이면서 짧은 연도형의 출입구 시설이 있는 梁山 부부총이나 禮安里의 方形 석실분과 같은 형식도 섞여 있지만606), 일반적으로 낙동강 유역의 횡구식석실은 경주의 그것과 몇 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 차이점만 열거하면, ①구릉이나 산정상부에 묘지를 선정한 것 ②석실이 더 긴 세장형인 것 ③석실의 벽체가 반 이상 지면 위로 올라오는 것이 일반적인 것 등이다. 횡구식 석실로 가장 잘 알려진 고분은 咸安의 末伊山 고분군이다. 말이산 34호분(4호)은, 석실의 길이 32척, 너비 5척7촌, 높이 5척5촌인데, 동서 長壁에 각각 2개, 後壁에 1개씩의 龕室을 설치하였다. 유물은 토기류와 다량의 철기류·마기류가 있으며, 특히 일본에서 자주 볼 수 있는 鹿角刀劍裝具가 있어 주목을 끈다. 또 같은 말이산의 33호(신8호)분은 구조와 형식은 34호분과 유사한데, 모두 6인의 유해를 매장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석실의 길이 11m, 너비 185cm, 깊이 190cm로 국내 최대형의 세장형석실이다. 유물 중에는 馬冑 短甲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 세장형의 횡구식 석실분은 5세기 후반경으로 추정되며, 이 지역 阿羅가야의 首長 墓로 추측하고 있다. 기원은 현단계로서는 앞의 수혈식 석실과 함께 양자강 하류지방의 석실토돈묘의 영향으로 추측한다.
606) | 金廷鶴,<金海禮安里古墳群發掘調査豫報>(≪韓國考古學報≫2, 1977), 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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