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대10권 발해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1. 발해의 건국1) 고구려 멸망 후 그 유민과 말갈족의 동향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1. 발해의 건국
          • 1) 고구려 멸망 후 그 유민과 말갈족의 동향
            • (1) 고구려유민의 동향
            • (2) 말갈 부족들의 상태
          • 2) 676년 이후 동북아 국제정세
          • 3) 대조영집단의 동주와 건국
        • 2. 발해의 발전
          • 1) 대외적 팽창
          • 2) 국가체제의 정비
        • 3. 발해국의 주민구성
          • 1) 요·금대의 발해인과 여진인
          • 2) ‘토인’과 말갈
          • 3) 발해 왕실의 출자
          • 4) 발해인의 귀속의식
          • 5) 발해국의 성격에 대한 인접국인의 인식
      • Ⅱ. 발해의 변천
        • 1. 발해의 융성
          • 1) 내분의 발생
          • 2) 해동성국의 구현
          • 3) 발해국의 위상
        • 2. 발해의 쇠퇴와 멸망
          • 1) 멸망의 배경
          • 2) 요동의 상실과 멸망
        • 3. 발해유민의 부흥운동
          • 1) 발해유민의 의미
            • (1) 발해유민과 발해유예
            • (2) 발해국 지배층의 성씨 분포와 그 유민
          • 2) 전기 부흥운동-후발해와 정안국-
          • 3) 후기 부흥운동-흥요국과 대발해국-
            • (1) 대연림의 흥요국
            • (2) 고영창의 대발해국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1. 신라와의 관계
          • 1) 발해 건국기의 남북교섭
          • 2) 발해 왕권확립기의 남북대립
          • 3) 신라 귀족항쟁기의 남북교섭
          • 4) 발해의 영토확장과 신라·당 밀착기의 남북대립
          • 5) 발해 멸망기의 남북교섭
        • 2. 당과의 관계
          • 1) 발해 건국 초기의 양국교섭
          • 2) 양국의 전쟁과 교섭
          • 3) 전쟁의 경과와 신라·발해의 대립
        • 3. 일본과의 관계
          • 1) 발해 건국 초기의 양국교섭
          • 2) 발해와 일본의 신라협공계획과 양국교섭
          • 3) 신라협공계획 무산 후의 양국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1. 중앙통치조직
          • 1) 조직의 정비과정과 성격
          • 2) 조직의 내용
        • 2. 지방·군사제도
          • 1) 지방제도
          • 2) 군사제도
        • 3. 사회·경제구조
          • 1) 사회구조
            • (1) 신분제도
            • (2) 토인과 수령
            • (3) 사회생활
          • 2) 경제구조
            • (1) 경제생활
            • (2) 대외무역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 불교와 기타 신앙
        • 2. 유학과 한문학
          • 1) 유학
          • 2) 한문학
        • 3. 예술
          • 1) 건축
            • (1) 성곽과 건물지
            • (2) 사원과 탑
            • (3) 고분
          • 2) 미술
            • (1) 회화
            • (2) 공예
          • 3) 음악과 무용
        • 4.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 국내의 발해사 인식과 연구
          • 2) 국외의 발해사 인식과 연구
          • 3) 주요 연구 주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1. 발해의 건국

1) 고구려 멸망 후 그 유민과 말갈족의 동향

(1) 고구려유민의 동향

 668년 고구려가 멸망한 이후 그 유민은 다음과 같이 몇 갈래로 나누어 흩어졌다. 첫째는 당에 의해 중국 내지로 끌려간 이들이다. 당과의 전쟁 기간 중 요동성 등과 같은 당군에 함락된 성의 주민과, 고구려 멸망 직전 男生이 이끌고 당에 투항한 국내성 일대의 주민들은 당으로 강제 이주되었다. 보다 대규모 이주는 평양성 함락 직후에 행해졌다. 당은 고구려인의 저항을 봉쇄하기 위하여 669년 2만 8천여 호의 고구려인들을 강제로 이주시켰다. 이 때 주된 대상이 된 이들은 평양 일대와 요동지역의 주민들로서, 고구려 상층부에 속하는 豪强한 민호들이었다. 당에 끌려간 고구려인들은 요서의 營州지역·회하유역의 황무지·甘肅省 회랑지역·黃河 상류지역 등지에 분산 정착되어졌다. 감숙성지역에 끌려간 이들은 그 뒤 이 지역 지방군의 유력한 병력원이 되기도 하였는데, 유명한 高仙芝장군은 바로 그 좋은 예이다. 그리고 왕족과 귀족들은 주로 당의 수도지역에 幽居되었다.

 둘째는 신라로 넘어간 이들이다. 당의 지배에 저항한 고구려유민들의 부흥운동은 평양성이 함락된 이듬해부터 일어났다. 평양지역에서는 劍牟岑이 봉기하여 귀족 安勝을 옹립한 뒤 당군에 저항하였다. 그러나 안승과 검모잠간의 알력과 당군의 압박으로 내분이 생겨, 안승이 검모잠을 죽이고 신라로 넘어갔다. 이 외에도 고구려 남부지역에서 부흥운동군이 당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는데, 673년 호로하전투 등에서 패배한 뒤 신라로 넘어갔고 평양 일대의 주민 다수도 함께 신라로 갔다001). 이후에도 평양 이남지역과 예성강유역 일대는 신라군과 당군간의 전쟁의 주된 무대가 되었다. 그에 따라 이 지역 주민들의 대부분이 신라로 가니 평양 일대는 황폐화되어 갔다.

 셋째는 요동지역에 계속 거주하였던 이들이다. 요동 일대는 598년 이래로 고구려와 수·당간의 전쟁의 주된 무대로서 전쟁의 피해를 가장 많이 받은 지역이다. 669년에는 당에 의해 이 지역 주민의 상당수가 중국으로 강제 이주되었고, 그런 당의 폭거에 대한 저항이 각지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의 고구려 부흥운동은 671년 安市城의 함락을 고비로 종식되었다. 한편 676년 당은 安東都護府를 이곳으로 옮긴 후, 남생을 도호부의 관리로 파견하고002), 寶藏王과 일부 유민을 귀환시키는 등 이 지역의 안정과 지배권 확립을 위한 일련의 조처를 취하였다. 그러나 보장왕이 反唐 모의를 하자 재차 그와 일부 유민을 당 내지로 이주시켰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당의 지배에 불복하여 이 지역 고구려인의 다수는 신라와 돌궐 및 동부 만주지역으로 이탈해갔다.003) 그에 따라 안동도호부 관내의 요동지역에는 소수의 빈약한 戶口만이 남게 되었다. 요동지역에 대한 당의 지배력은 8세기 중반까지 유지되다가, 安祿山의 난 이후 이 지역의 고구려인들은 점차 자립해가는 형세를 나타냈다. 그것이 이른바 小高句麗國이다. 그러나 소고구려국은 곧이어 8세기 초반 발해의 宣王대에 발해의 세력 아래로 들어가게 되었다.004)

 넷째는 고구려의 서북부지역인 요동과 부여성 일대에 거주하던 이들로서, 몽고고원 방면으로 이주해간 집단이다. 몽고고원으로 이주한 고구려인들은 돌궐의 可汗의 휘하에서 몇몇 집단으로 나뉘어져 자치를 영위하였다. 그 중 黙綴可汗의 사위가 된 高文簡의 경우 ‘高麗王 莫離支’라고 칭하기도 하였다. 이들 집단 중 일부는 8세기 전반에 다시 돌궐을 이탈하여 당으로 넘어가기도 하였다.005)

 다섯째는 동부 만주의 고구려인들이다. 동만주지역은 직접 전쟁의 무대가 된 곳은 아니었으며, 668년 후 당의 지배 영역에 실제상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지역의 고구려인과 말갈족이 고구려군의 주요 병력원이었던 만큼, 오랜 전란과 망국의 여파는 이 지역 주민들의 생활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두만강유역과 길림 등지와 같이 고구려의 주요 성이 있었던 곳에는 고구려인들이 많이 살았지만, 그 외의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주민의 다수가 말갈족이었다. 광대한 지역에 걸쳐 말갈족 사이에 산재하여 고구려의 지배조직과 연관을 가지며 생활하고 있던 고구려인들은 기존 정치조직이 해체되고, 말갈족이 크게 동요하는 상황에서 그들의 종전의 우월한 위치를 그대로 유지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들간의 횡적 연대를 맺어 새로 통합된 정치조직을 형성하기도 어려운 상태였다. 따라서 이 지역의 고구려인들은 말갈족 사이에 산재하여 고립된 생활을 영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006)

 7세기 후반 동만주지역에서 있었던 또 하나의 큰 변화는 많은 수의 고구려인들이 이 지역으로 유입된 사실이다. 전란의 와중에서 그리고 당의 압제를 피하여 원 고구려의 중심지였던 서·남부지역에서 많은 유민들이 흘러 들어왔다. 이들은 대규모 집단으로 조직적 이주를 해온 것이 아니라, ‘散奔’007)이라는 표현처럼 소규모로 각 방면에서 간헐적으로 이주해와 각지에 분산 거주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668년 이후 서·남부지역의 상층부 호강한 민호의 다수는 당에 강제 이주되었거나 부흥운동의 주력이 되었기 때문에, 동으로 이주해온 이들은 기존의 빈약한 호구나 전란으로 피폐해진 민호들이 다수였다고 여겨진다. 자신들의 생활 터전을 박탈당하고 기존 조직이 와해된 채로 뿔뿔이 각처에 散居한 이들 유민들이 곧 어떤 조직적인 세력으로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전란을 피하여 혹은 생존을 위하여 각지에 은거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한두 세대가 흘러 전란의 상흔이 어느 정도 회복되고, 동만주 신개척지에서 그들의 우월한 생산기술로 생활의 터전을 다져나갈 때, 그들은 이 지역의 새로운 활력소와 변수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들 이주해온 유민들은 당과의 격렬한 투쟁을 경험하였기 때문에 고구려인으로서의 강한 自意識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동만주지역에는 말갈족이 주민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우월한 문물과 빛나는 역사를 지녔고 얼마전까지도 이들 말갈족을 지배하여 왔던 고구려유민들은 자연 수적인 열세 속에서 그러한 자의식을 더욱 강하게 느꼈을 법하다. 바꾸어 말하면 어떤 유민집단의 정치적 움직임이 있으면 그들간에 쉽게 결합할 수 있는 내적 응집력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요소들이 구체적인 정치세력으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광대한 동만주지역의 각지에 산재해 있는 소수의 고구려유민들을 결집시킬 수 있는 새로운 힘의 구심점이 필요했으나 이 지역에서는 아직 형성되지 못하였다.

001)≪舊唐書≫권 5, 本紀 5, 高宗 下 咸亨 4년 윤5월 정묘.
002)<泉男生墓誌銘>(≪譯註 韓國古代金石文≫Ⅰ, 韓國古代社會硏究所, 1992), 495쪽.

≪新唐書≫권 110, 列傳 35, 泉男生.
003)≪新唐書≫권 220, 列傳 145, 東夷 高麗.
004)盧泰敦,<高句麗遺民史硏究-遼東·唐內地 및 突厥方面의 集團을 중심으로-> (≪韓㳓劤博士停年紀念史學論叢≫, 1981).
005)위와 같음.
006)盧泰敦,<渤海 建國의 背景>(≪大丘史學≫19, 1981).
007)≪新唐書≫권 220, 列傳 145, 東夷 高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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