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대10권 발해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1. 발해의 건국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1. 발해의 건국
          • 1) 고구려 멸망 후 그 유민과 말갈족의 동향
            • (1) 고구려유민의 동향
            • (2) 말갈 부족들의 상태
          • 2) 676년 이후 동북아 국제정세
          • 3) 대조영집단의 동주와 건국
        • 2. 발해의 발전
          • 1) 대외적 팽창
          • 2) 국가체제의 정비
        • 3. 발해국의 주민구성
          • 1) 요·금대의 발해인과 여진인
          • 2) ‘토인’과 말갈
          • 3) 발해 왕실의 출자
          • 4) 발해인의 귀속의식
          • 5) 발해국의 성격에 대한 인접국인의 인식
      • Ⅱ. 발해의 변천
        • 1. 발해의 융성
          • 1) 내분의 발생
          • 2) 해동성국의 구현
          • 3) 발해국의 위상
        • 2. 발해의 쇠퇴와 멸망
          • 1) 멸망의 배경
          • 2) 요동의 상실과 멸망
        • 3. 발해유민의 부흥운동
          • 1) 발해유민의 의미
            • (1) 발해유민과 발해유예
            • (2) 발해국 지배층의 성씨 분포와 그 유민
          • 2) 전기 부흥운동-후발해와 정안국-
          • 3) 후기 부흥운동-흥요국과 대발해국-
            • (1) 대연림의 흥요국
            • (2) 고영창의 대발해국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1. 신라와의 관계
          • 1) 발해 건국기의 남북교섭
          • 2) 발해 왕권확립기의 남북대립
          • 3) 신라 귀족항쟁기의 남북교섭
          • 4) 발해의 영토확장과 신라·당 밀착기의 남북대립
          • 5) 발해 멸망기의 남북교섭
        • 2. 당과의 관계
          • 1) 발해 건국 초기의 양국교섭
          • 2) 양국의 전쟁과 교섭
          • 3) 전쟁의 경과와 신라·발해의 대립
        • 3. 일본과의 관계
          • 1) 발해 건국 초기의 양국교섭
          • 2) 발해와 일본의 신라협공계획과 양국교섭
          • 3) 신라협공계획 무산 후의 양국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1. 중앙통치조직
          • 1) 조직의 정비과정과 성격
          • 2) 조직의 내용
        • 2. 지방·군사제도
          • 1) 지방제도
          • 2) 군사제도
        • 3. 사회·경제구조
          • 1) 사회구조
            • (1) 신분제도
            • (2) 토인과 수령
            • (3) 사회생활
          • 2) 경제구조
            • (1) 경제생활
            • (2) 대외무역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 불교와 기타 신앙
        • 2. 유학과 한문학
          • 1) 유학
          • 2) 한문학
        • 3. 예술
          • 1) 건축
            • (1) 성곽과 건물지
            • (2) 사원과 탑
            • (3) 고분
          • 2) 미술
            • (1) 회화
            • (2) 공예
          • 3) 음악과 무용
        • 4.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 국내의 발해사 인식과 연구
          • 2) 국외의 발해사 인식과 연구
          • 3) 주요 연구 주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676년 이후 동북아 국제정세

 買肖城전투와 伎伐浦해전에서 신라에 패배한 것을 고비로 당은 한반도에서 철퇴하여 676년 안동도호부를 요동으로 옮겼다. 이후 당은 허갈해진 요동지역을 충실화하여 동북아지역으로 재진출하기 위한 전진기지로 삼으려 하였다. 그런 정책의 일환으로 당 내지에 강제 이주시켰던 고구려유민과 보장왕을 676년에 다시 요동으로 귀환시키고 요동의 주민들을 안정시키려 하였다. 같은 해에 義慈王의 아들인 夫餘隆을 熊津都督 帶方郡王으로 봉하고 당 내지로 끌고 갔던 백제유민을 요동의 建安城에 옮겨 웅진도독부를 이곳에 僑置시켰다.013) 그런 뒤 678년 재차 한반도에 대한 대규모 원정을 하려는 계획을 수립하였다. 그러나 예상되는 신라의 강력한 저항과 이 시기 당의 서부지역을 압박하는 吐蕃의 공세로 인하여, 이 계획에 대한 반대 의견이 당 조정 내에서 강하게 일어나 좌절되었다.014) 그 뒤 東征의 논의는 다시 제기되지 못하였고 당의 지배영역은 요동에 한정되어졌다.

 한편 요동의 당 세력은 말갈족의 움직임에도 주의하였다. 특히 말갈족과 과거 그들이 지배하였던 고구려유민들이 연결하는 것을 방지하는 데 주력하였다. 만약 고구려유민과 말갈족이 재차 결합한다면 요동의 지배권은 물론이고 당의 동북면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었다. 실제 676년 요동으로 귀환한 보장왕이 곧 말갈족과 모의하여 당에 저항하는 거사를 도모하다 발각되었다. 위협을 느낀 당은 다시 보장왕과 고구려유민에 대하여 당 내지로의 대규모 강제 이주를 단행하였다. 그리고 677년 안동도호부를 요동성에서 그 북쪽에 있는 新城으로 옮겼다. 이는 요동의 고구려유민과 말갈족과의 교섭의 길목을 차단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내려진 조처였다. 이후에도 당은 이 가능성에 대처하였을 것이며, 그것이 안동도호부를 요동에 계속 유지하도록 한 주요 목적의 하나였다. 나아가 말갈족 내부의 동향에 대해서도 주의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요동지역 자체가 이미 戶口가 크게 감소되어 텅 빈 상태였으며, 말갈족에 대한 당의 영향력은 주로 요동지역 주변에 한정된 것이었다.

 696년 거란족의 봉기로 당의 요동 지배가 난관에 봉착하자, 정면으로 안동도호부 포기론을 내세운 狄人傑의 상소에서 “요동은 이미 돌밭(石田)이 되었고, 말갈은 먼 지역으로서 鷄肋과 같다”015)고 하였다. 이는 7세기말의 요동의 상태와 말갈에 대한 당의 관심과 영향력이 약하였던 일면을 전해준다. 당이 동만주지역의 말갈족에 대해 다시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된 것은 725년 흑수말갈에 黑水府를 설치한 이후부터이다. 따라서 7세기 종반 사실상 대부분의 말갈족사회는 당의 영향력 밖에 있었다.

 7세기 종반 신라의 세력 또한 동만주지역에까지 뻗칠 여유가 없었다. 신라는 당의 세력을 한반도에서 몰아낸 후 더 이상의 북진은 하지 않았다. 이는 신라 국내의 사정과 국력의 한계 그리고 신라정부 자체의 정책적 의도 등이 함께 작용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金春秋가 당 태종 李世民과 함께 신라와 당간의 군사동맹을 맺을 때, 평양 이남지역을 신라 영토로 한다는 협약을 한 바 있다. 이런 협약은 상황에 따라 파기될 수 있는 것이지만, 新·唐戰爭 중인 671년 문무왕은 唐將 薛仁貴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협약의 내용을 다시 환기시켰다.016) 이는 당의 압박을 완화시켜 보려는 의도를 담은 것이지만, 한편으로 당시 신라의 전쟁목적을 밝혀주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 신라군이 압록강을 넘어 진출한 적도 있지만 그것은 관위가 沙湌인 薛烏儒가 이끈 1만 명의 부대로서 고구려부흥군과 함께 행한 작전이었고,017) 대규모 병단을 대동강 이북지역에 진출시킨 일은 없다. 당군의 막강한 세력을 잘 알고 있고, 그리고 서남부 백제지역을 완전히 병탄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 이상의 진출은 신라군에는 무리라는 판단에 의한 것으로 여겨진다.

 당군을 패퇴시킨 후에도 신라는 새로 병합한 지역과 주민를 경영하는 데 주력하였고, 강력한 왕권을 정점으로 한 중앙집권체제 구축에 골몰하였다. 684년 고구려유민 집단의 자치국인 報德國을 해체시키는 등 전국을 9州 5小京으로 편제하였다. 한편 신문왕 원년(681) 金欽突의 난을 계기로 진골 귀족들에 대한 일대 숙청을 단행하여 왕권 강화를 꾀하였다.

 이런 대내적 체제정비에 주력하기 위해서는 대외적 안정이 무엇보다 필요하였다. 그런데 676년 이후에도 신라와 당 사이에는 이면적인 대립이 지속되었다. 당은 신라의 대동강 이남지역의 병합을 인정하지 않았고, 720년대까지도 고구려와 백제의 왕손을 각각 ‘고려조선군왕’과 ‘백제대방군왕’으로 봉하여 당의 수도에 幽居시켜 놓고 있었다.018) 때가 되면 다시 이들을 앞장 세워 한반도로 쳐들어갈 수도 있다는 의도를 내포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라는 朝貢使를 파견하는 등 당과 관계개선을 위하여 노력하면서, 일면으로는 당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한편 신라는 663년 백제부흥군을 지원한 일본군을 白江 하구에서 격파한 이후, 일본과 직접적인 충돌은 더 이상 없었지만 일본에 대한 경계도 늦추지 않고 있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신라는 그 북방지역에 대한 적극적인 정책을 취하지 않았다. 신라가 그 북부 국경선지역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을 나타낸 것은 발해가 등장한 이후인 8세기 전반부터였다. 그런만큼 7세기 종반 신라의 세력이 동만주지역에 뻗칠 여지는 없었다.

 7세기 후반 북아시아지역의 형세를 살펴볼 때, 돌궐 세력의 消長이 주목된다. 돌궐은 630년 㓤利可汗이 당군에 격파된 이후 그 세력이 붕괴되어 당에 복속하게 되었다. 640년대에는 薛延陀의 세력이 일시 강대해져 고구려와 연합하여 당에 대항하기도 하였으나,019) 이 또한 당에 격파되어 급속히 약화되었다. 그후 몽고고원지역은 당의 지배 아래 있었다. 그러다가 680년대에 들어 돌궐이 다시 일어나 고비사막 이북지역에서 세력을 떨치며 당을 압박하였다. 당시의 돌궐은 서로는 天山山脈에 이르고 동으로는 興安嶺을 넘어 서북부 만주지역에까지 세력을 뻗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돌궐은 長城 일대에서 당과 치열한 대립을 벌이고 있었고, 그 주력도 여기에 집중되었다. 그래서 서북부 만주지역에 대한 영향력은 그리 컸던 것 같지 않다. 서북 만주에 있던 室韋族이 7세기 종반 당으로부터 이탈하였지만, 곧 당군에 의해 격파되어 다시 복속하게 되었음을 볼 때 그런 면을 알 수 있다.020) 돌궐이 흑수말갈에 그 지방관인 吐屯(tudun)을 둔 것은 8세기초였다. 따라서 그 이전에 돌궐의 세력이 동부 만주지역까지는 도저히 미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렇듯 676년 이후 동만주 일원은 당·신라·돌궐 중 그 어느 쪽도 세력을 뻗치지 못하는, 국제 역관계에서 일종의 힘의 공백지대였다. 대내적으로도 통일된 세력이 형성되지 못한 형편이었다. 그러한 여건에서 새로운 정치세력 형성의 모체가 될 수 있는 힘의 구심점이 등장할 때, 그것은 이 지역 사회에 급속한 변화를 몰고 올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 새로운 구심력은 營州 방면에서 東走해온 大祚榮집단이었다.

013)≪資治通鑑≫권 202, 唐紀 18, 儀鳳 원년 2월 갑술.
014)≪舊唐書≫권 85, 列傳 35, 張文瓘.

≪資治通鑑≫권 202, 唐紀 18, 儀鳳 3년 9월.
015)≪舊唐書≫권 89, 列傳 39, 狄人傑.
016)≪三國史記≫권 7, 新羅本紀 7, 문무왕 11년 7월.
017)≪三國史記≫권 6, 新羅本紀 6, 문무왕 10년 3월.
018)≪舊唐書≫권 23, 禮儀 3, 開元 13년 11월 임진.
019)盧泰敦,<高句麗·渤海人과 內陸아시아 住民과의 交涉에 관한 一考察>(≪大東文化硏究≫23, 成均館大, 1989).
020)≪新唐書≫권 219, 列傳 144, 北狄 室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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