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대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1. 중대에서 하대로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1. 중대에서 하대로
          • 1) 기로에 선 중대 전제왕권
          • 2) 혜공왕 말년(780)의 정변 ― 중대의 종말
          • 3) 하대의 개막과 원성왕계의 성립
        • 2. 귀족사회의 분열과 왕위쟁탈전
          • 1) 왕실가족에 의한 권력독점
          • 2) 무열왕계의 반발과 김헌창의 난
          • 3) 범진골 귀족세력 화합책의 시도
          • 4) 원성왕계 내부의 왕위계승쟁탈전
        • 3. 정치개혁의 실패
          • 1) 율령의 개정을 통한 집권체제의 정비 시도
          • 2) 근시기구와 문한기구의 합체화에 의한 권력집중 시도
        • 4. 골품제도의 퇴화
          • 1) 골품제의 사회적 기반의 축소
          • 2) 진골귀족의 분열
          • 3) 6두품세력의 성장
        • 5. 수취체제의 모순과 농민층의 피폐
          • 1) 귀족 및 사원의 농장경영과 왕경의 번영
          • 2) 농민층의 피폐와 자영농민의 몰락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1. 호족세력의 대두 배경
          • 1) 호족의 개념
          • 2) 호족세력의 대두 배경
        • 2. 호족세력의 대두
          • 1) 낙향귀족 출신의 호족
          • 2) 군진세력 출신의 호족
          • 3) 해상세력 출신의 호족
          • 4) 촌주 출신의 호족
        • 3. 장보고와 청해진
      • Ⅲ. 후삼국의 정립
        • 1. 후삼국기의 신라
        • 2. 후백제
          • 1) 후백제의 성립
            • (1) 견훤의 출신과 군사적 기반
            • (2) 후백제의 성립과정
          • 2) 후백제의 발전과 호족연합
            • (1) 영토의 확대
            • (2) 호족과의 연합
          • 3) 후백제의 대외정책
            • (1) 대신라정책
            • (2) 대고려정책
            • (3) 대중국·일본정책
          • 4) 후백제의 몰락
            • (1) 신검 형제의 정변
            • (2) 신검정권과 그 멸망
        • 3. 태봉
          • 1) 궁예의 출신과 사회적 진출
          • 2) 후고구려의 건국
            • (1) 자립과 세력기반의 확립―하층농민의 포섭
            • (2) 건국―호족들과의 제휴
          • 3) 마진과 태봉의 중앙정치조직
            • (1) 광평성체제의 성립과 호족연합정권-마진
            • (2) 광평성체제의 변화와 전제왕권―태봉
          • 4) 태봉의 몰락
            • (1) 궁예의 정교일치적 전제주의의 추구와 그 지지세력
            • (2) 반궁예세력의 동향과 918년 정변
      • Ⅳ. 사상계의 변동
        • 1. 유교사상의 변화
          • 1) 유교사상의 발달
          • 2) 숙위학생의 활동
          • 3) 유교사상의 변화
        • 2. 불교의 변화
          • 1) 교학 불교의 전개
            • (1) 화엄종
            • (2) 법상종
          • 2) 선종의 흥륭
            • (1) 북종선의 전래와 남종선의 도입
            • (2) 선종 유행의 사회적 기반
            • (3) 선종산문의 성립
            • (4) 선종사상의 경향
          • 3) 미륵신앙
            • (1) 미륵의 출현과 말법신앙
            • (2) 궁예의 이상세계 건설
          • 4) 유·불·선 3교의 융합
            • (1) 유·불 2교의 교섭
            • (2) 유·불·선 3교의 조화
        • 3. 풍수지리·도참사상
          • 1) 풍수지리설의 도입
          • 2) 유식론적 선사상의 성립
          • 3) 지방호족 중심의 국토 재구성안
          • 4)<삼국도>의 작성과 비보사상
          • 5) 도참사상의 전개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1. 중대에서 하대로

1) 기로에 선 중대 전제왕권

 ≪三國史記≫의 찬자는 新羅本紀에 대한 기술을 끝맺으면서 신라 사람들이 자신의 역사를 上·中·下의 3代로 시대구분했다는 설을 싣고 있다. 이에 의하면 천년왕국인 신라의 전 역사 가운데 삼국을 통일하기까지의 최초 700여 년간이 상대에 속하며, 이에 후속하는 260여 년간의 통일기는 다시 중대와 하대로 나뉜다.

 그런데 중대와 하대는 惠恭王 말년(780)의 정변을 경계로 하고 있다. 이 정변에 의해서 太宗武烈王의 후손인 혜공왕은 거듭되는 내란 끝에 마침내 피살되어 새로운 왕통이 등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중대와 하대의 구분은 단순히 왕통의 변화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신라 국가의 運祚에 치명적인 낙인을 찍은 큰 사건이었다. 뒤에서 보게 되듯이 하대는 신라가 삼국통일의 여세를 몰아 정력적으로 이룩한 고도로 중앙집권화된 정치·사회체제가 동요하기 시작하고 이에 수반하여 중대 문화의 황금시대가 이윽고 쇠퇴의 길로 접어드는 그 자체 거대한 변혁을 의미하고 있다.

 주지하듯이 중대는 654년 金春秋가 眞德女王의 뒤를 이어 태종무열왕으로 즉위함으로써 개막되었다. 그가 즉위할 무렵 신라는 치열해진 삼국항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힘겨운 국가보위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善德女王 11년(642) 백제와 고구려에 의한 대공세가 있은 뒤로부터 신라는 줄곧 군사적인 위기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동왕 16년 정월에는 上大等 毗曇에 의한 내란이 일어나 관군과 반란군이 도성 안에서 서로 격돌하기까지 했었다. 무열왕은 이 같은 국가적인 위기 국면을 타개하기 위하여 지금까지의 수세에서 일약 공세로 전환했다. 바야흐로 지금까지의 국가보위전쟁은 삼국통일전쟁으로 대전환을 맞게 되었다.

 신라는 무열왕과 그 아들 文武王 양대에 걸쳐서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끝에 가서는 연합군으로 끌어들인 唐軍을 한반도에서 몰아냄으로써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룩했다. 이 때가 바로 문무왕 16년(676)이었다. 이제 진정 三韓은 一家가 되었으며, 太平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小康이라고 말할 수 있는 형편이 되었다. 신라는 이 때부터 혜공왕 16년(780)의 파국이 도래할 때까지 1백여 년간 국제평화와 안녕, 그리고 일찍이 누려보지 못한 정치적 안정과 번영을 누렸다.

 중대의 정치적 안정을 확고하게 보장하고 있었던 것은 다름아닌 왕권이었다. 사실 이 시기에 들어와 왕권은 크게 강화되었다. 상대등 비담을 대표자로 하여 일어난 眞骨귀족세력의 반란을 실질적으로 진압한 김춘추·金庾信 일파는 자신들이 옹립한 진덕여왕 때에 야심적인 정치개혁을 단행했다. 그것이 바로 진덕여왕 5년(651)의 관제개혁이었다. 이 때 종래 왕실의 家臣的 성격이 농후했던 稟主를 執事部로 개편하여 王政의 기밀사무를 맡게 한 것은 매우 주목되는 사실이다. 이에 따라 그 장관인 中侍(景德王 때 侍中으로 개칭함)는 병렬적으로 할거하고 있는 중앙의 제1급 행정관서인 여러 部·府를 유기적으로 통제하게 됨으로써 국가권력은 집사부를 통하여 국왕에 一元的으로 귀속하게 되었다. 더욱이 중시에게는 행정상의 失策뿐 아니라 국토를 기습적으로 강타한 천재지변의 발생에 대해서까지도 왕을 대신하여 책임을 지게 함으로써 왕권의 안전판과도 같은 구실을 맡게 하였다.001)

 현재 학계에서는 중대를 흔히 專制王權의 시대라고 부르고 있다.002) 신라가 이 시대에 들어와 일종의 전제왕권을 구축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는 첫째로 태종무열왕·문무왕 부자의 집념과 노력에 의해 통일의 대업이 달성됨으로 해서 무열왕 계통의 권위가 크게 상승된 점, 둘째로 삼국통일을 전후한 시기에 왕권 강화에 沮害되는 일부 유력한 진골귀족을 성공적으로 제거한 점, 셋째로 통일전쟁 기간 중에 결속을 강화한 지방세력과의 유대를 한층 긴밀하게 함으로써 국가권력의 지지기반이 王京 6部로부터 전국적으로 확대된 점, 넷째로 앞서 지적했듯이 집사부를 중심으로 하여 권력을 집중시키는 한편 儒敎政治理念을 도입하여 국왕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관료제도를 발전시킨 점등을 들 수 있다.

 그렇지만 이같은 전제적 왕권에도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중대의 권력구조가 骨品體制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이었다. 골품체제는 기본적으로 진골귀족 萬能의 정치·사회적 체제였으며 국왕이라고 하더라도 진골의 신분을 결코 초월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사실 진골귀족들의 국왕에 대한 對等性의 의식은 中古시대 이래 매우 뿌리 깊은 것이었다. 그런 까닭으로 삼국통일 뒤에도 진골귀족들은 자기들 위에 군림하는 전제군주가 아니라 자기들의 특권을 보장하는 대표자로서의 국왕을 요구했다. 그런데 국가의 역량이 한층 증대된 통일기에 들어와 역대 국왕은 권력집중을 통한 전제정치의 기반을 다지기 시작했고, 이는 필연적으로 진골귀족에 대한 통제를 강화함으로써만 달성할 수 있었다. 이처럼 그 자체 골품체제에 기반을 두면서 그 체제의 기본원리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데에 중대 왕권이 당면한 정치적 딜레마가 도사리고 있었다.

 한편 삼국통일 후 약 1세기간은 국내적으로 안정되고 국제적으로도 평화가 깃든 시대였다. 그리하여 국민들은 오랜만에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 안정과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안일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사회적 모순이 차츰 쌓여 간 것도 사실이다. 통일 전 1백 년간에 걸쳐 가혹한 생존전쟁을 치르는 동안 농민층은 매우 피폐해졌고, 이에 따라 사회의 分化작용이 소리없이 진행되었다. 사실 농민들은 국가보위전쟁과 삼국통일전쟁의 役軍으로서 그토록 장기간에 걸쳐 국가에 봉사했으며, 또한 중대의 번영을 떠받치는 사실상의 주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생활의 진보는 이에 뒤따르지 못했으며, 오히려 唐制를 모방한 律令政治가 강화됨에 따라서 조세와 課役에 한층 더 시달리게 되어 피폐한 모습을 나타내게 되었다. 더욱이 농민의 궁핍에 기생하는 高利貸자본이 발달하고 성덕왕 때에 장기간 전국을 휩쓴 大災害로 말미암아 조정의 적극적인 구호 노력에도 불구하고 농민층은 광범위하게 몰락해 갔다. 삼국통일 시기를 전후하여 일부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아미타 淨土신앙이 8세기 중엽 무렵에 이르러 민중 사이에 공감을 얻어 널리 유행한 것도 이같은 사회상을 배경으로 나타난 현상이었다.003)

001)李基白,<新羅 執事部의 成立>(≪震檀學報≫25·26·27, 1964 ;≪新羅政治社會史硏究≫, 一潮閣, 1974, 151∼153·164∼167쪽).
002)李基白,≪韓國史新論≫新修版(一潮閣, 1990), 107∼108쪽.

전제왕권이 다만 中代에만 국한되어 나타난 현상이 아니라, 中古말(즉 上代말부터 下代의 귀족연립정치에서도 지속된 정치형태였음을 강조하는 어떤 논자는이 전제왕권이란 왕의 一人독재라기 보다는 오히려 관료제도의 뒷받침을 받으면서 소수의 귀족·외척세력의 정치적 지지와 타협 아래 존속될 수 있는 체제였다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는 申瀅植,<統一新羅 專制王權의 性格>(≪統一新羅史硏究≫, 三知院, 1990) 참조.
003)李基白,<淨土信仰의 諸樣相>(≪新羅思想史硏究≫, 一潮閣, 1986) 참조. 다만 아미타신앙을 계층간의 대립이라는 측면에서 파악하려는 경향에 반대하는 어떤 논자는 신라 중대의 정토사상 및 아미타신앙은 厭世的 성격보다는 현실긍정적인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는 金英美,<新羅 中代의 阿彌陀信仰>(≪新羅佛敎思想史硏究≫, 民族社, 1994) 참조.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