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대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1. 중대에서 하대로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1. 중대에서 하대로
          • 1) 기로에 선 중대 전제왕권
          • 2) 혜공왕 말년(780)의 정변 ― 중대의 종말
          • 3) 하대의 개막과 원성왕계의 성립
        • 2. 귀족사회의 분열과 왕위쟁탈전
          • 1) 왕실가족에 의한 권력독점
          • 2) 무열왕계의 반발과 김헌창의 난
          • 3) 범진골 귀족세력 화합책의 시도
          • 4) 원성왕계 내부의 왕위계승쟁탈전
        • 3. 정치개혁의 실패
          • 1) 율령의 개정을 통한 집권체제의 정비 시도
          • 2) 근시기구와 문한기구의 합체화에 의한 권력집중 시도
        • 4. 골품제도의 퇴화
          • 1) 골품제의 사회적 기반의 축소
          • 2) 진골귀족의 분열
          • 3) 6두품세력의 성장
        • 5. 수취체제의 모순과 농민층의 피폐
          • 1) 귀족 및 사원의 농장경영과 왕경의 번영
          • 2) 농민층의 피폐와 자영농민의 몰락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1. 호족세력의 대두 배경
          • 1) 호족의 개념
          • 2) 호족세력의 대두 배경
        • 2. 호족세력의 대두
          • 1) 낙향귀족 출신의 호족
          • 2) 군진세력 출신의 호족
          • 3) 해상세력 출신의 호족
          • 4) 촌주 출신의 호족
        • 3. 장보고와 청해진
      • Ⅲ. 후삼국의 정립
        • 1. 후삼국기의 신라
        • 2. 후백제
          • 1) 후백제의 성립
            • (1) 견훤의 출신과 군사적 기반
            • (2) 후백제의 성립과정
          • 2) 후백제의 발전과 호족연합
            • (1) 영토의 확대
            • (2) 호족과의 연합
          • 3) 후백제의 대외정책
            • (1) 대신라정책
            • (2) 대고려정책
            • (3) 대중국·일본정책
          • 4) 후백제의 몰락
            • (1) 신검 형제의 정변
            • (2) 신검정권과 그 멸망
        • 3. 태봉
          • 1) 궁예의 출신과 사회적 진출
          • 2) 후고구려의 건국
            • (1) 자립과 세력기반의 확립―하층농민의 포섭
            • (2) 건국―호족들과의 제휴
          • 3) 마진과 태봉의 중앙정치조직
            • (1) 광평성체제의 성립과 호족연합정권-마진
            • (2) 광평성체제의 변화와 전제왕권―태봉
          • 4) 태봉의 몰락
            • (1) 궁예의 정교일치적 전제주의의 추구와 그 지지세력
            • (2) 반궁예세력의 동향과 918년 정변
      • Ⅳ. 사상계의 변동
        • 1. 유교사상의 변화
          • 1) 유교사상의 발달
          • 2) 숙위학생의 활동
          • 3) 유교사상의 변화
        • 2. 불교의 변화
          • 1) 교학 불교의 전개
            • (1) 화엄종
            • (2) 법상종
          • 2) 선종의 흥륭
            • (1) 북종선의 전래와 남종선의 도입
            • (2) 선종 유행의 사회적 기반
            • (3) 선종산문의 성립
            • (4) 선종사상의 경향
          • 3) 미륵신앙
            • (1) 미륵의 출현과 말법신앙
            • (2) 궁예의 이상세계 건설
          • 4) 유·불·선 3교의 융합
            • (1) 유·불 2교의 교섭
            • (2) 유·불·선 3교의 조화
        • 3. 풍수지리·도참사상
          • 1) 풍수지리설의 도입
          • 2) 유식론적 선사상의 성립
          • 3) 지방호족 중심의 국토 재구성안
          • 4)<삼국도>의 작성과 비보사상
          • 5) 도참사상의 전개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3) 하대의 개막과 원성왕계의 성립

 혜공왕 16년 정변의 승리자인 상대등 김양상은 新王으로 즉위했다. 그가 곧 宣德王이었다. 그는 奈勿王의 10세손으로 중대 왕실의 입장에서 보면 傍系혈족에 지나지 않았다. 다만 그의 조부인 元訓이 성덕왕 원년(702) 9월에 집사부中侍에 임명되면서 중대 왕정에 참여하게 되었다.010) 더욱이 그의 아버지 孝方이 성덕왕의 딸과 혼인하면서 주목받는 가문으로 떠올랐다. 김양상은 이같은 가문의 후광에 힘입어 그의 외삼촌인 경덕왕 때 정계에 진출, 이윽고 동왕 23년(764) 정월 阿湌으로 집사부시중에 취임하여 혜공왕 4년(768) 10월까지 비교적 장기간 재임했다. 시중을 지낸 뒤에도 그는 계속 요직에 있었다. 혜공왕 7년 12월에 제작이 완료된 성덕대왕신종의 銘文을 보면 그는 당시 肅正臺(司正府의 개명)와 修城府(京城周作典의 개명)의 장관직(令)을 겸임했다. 앞에서 보았듯이 그는 혜공왕 10년 9월 伊湌으로 상대등이 되어 정치상의 실권을 장악했고, 이를 발판으로 하여 혜공왕 16년의 정변을 주도했다. 혜공왕과 외사촌 관계였던 그가 언제 어떠한 계기로 반왕파로 돌아섰는지는 잘 알 수가 없다.

 신라 中古시대에 확립된 정치적 전통에 비추어 볼 때 상대등은 태자와 같은 정당한 왕위계승자가 없을 경우 왕이 될 수 있는 잠재적인 제1후보자였다.011) 다만 法興王 18년(531)에 상대등직이 설치된 이래 실제로 상대등이 즉위한 예는 없었다. 그런데 김양상은 상대등직에서 왕위에 오른 것이다. 이처럼 하대의 출발 그 자체가 하나의 이변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뒤에서 보게 되듯이 하대를 통해서 태자가 없을 경우 상대등이 즉위하는 것이 거의 일반적인 관례처럼 되고 말았다. 이같은 점만 보더라도 하대라는 시대가 권력구조면에서 중대와 크게 다르고 또한 중고시대와도 달랐던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선덕왕대는 어찌 보면 일종의 과도기와 같은 느낌을 준다. 왕의 재위기간이 만 5년이 채 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가 죽은 뒤 왕통이 바뀌어 결국 一代에 그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내물왕계라고는 하지만 부친이 성덕왕의 사위가 됨으로 해서 중대 말기 정계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는 母系로 본다면 결코 중대 왕실을 배반한다거나 더욱이 부정할 처지는 되지 못했다. 그가 재위 5년(784) 4월 왕위를 禪讓하려고 한 것이라든지, 병석에서 내린 遺詔에서 자신은 본래 왕위에 야심이 없었으나 여러 사람들의 추대를 뿌리칠 수 없어 부득이 즉위하게 되었다고 토로한 것은 솔직한 심정에서 우러나온 것으로 짐작된다. 그는 재위 중에 중국의 祀典을 모방하여 社稷壇을 설치했는데, 이는 혜공왕 때 始祖廟에 대신하여 중국식의 5廟제도를 확립하려고 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종래의 神宮에 대체하려 한 것인 듯하다.012)

 선덕왕이 짧은 재위 기간 중에 시행한 주요 治績으로 주목되는 것은 다름아닌 서북변경지방의 개척사업이었다. 왕은 2년(781) 7월에 신하를 보내어 浿江 이남의 州郡을 安撫했고 그 이듬해 2월에는 친히 漢山州에 巡幸하여 民戶를 浿江鎭에 옮기게 했다. 그런 다음 그 이듬해 정월에는 일찍이 執事侍郞을 역임한 阿湌 金體信을 大谷鎭(황해도 平山)軍主 곧 초대 浿江鎭典 장관(頭上大監)에 임명하여 본격적인 서북변경지방 개척사업에 착수했다. 이 패강진의 개척과 경영은 신라가 성덕왕 34년(735)에 唐으로부터 소위 패강 이남의 땅에 대한 영유를 정식으로 승인받은 직후부터 차츰 추진하기 시작한 북방진출의 일단의 성취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당시 渤海의 영토 확장, 특히 그 남하정책으로 인한 변경 위협에 자극된 바도 적지 않겠으나, 그보다는 오히려 변경개척을 통해서 농경지를 확보함으로써 피폐해진 농민층을 구제하기 위한 사회경제적 동기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생각된다.013)

 선덕왕이 재위 6년 정월 13일 병으로 죽자 상대등직에 있던 金敬信이 즉위하니 곧 원성왕이었다. 그런데 이 왕위계승은 순조롭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三國史記≫ 元聖王本紀와≪三國遺事≫元聖大王條에 의하면 아들이 없는 선덕왕이 죽자 신하들은 처음 김경신보다 서열이 높은 上宰相 金周元을 추대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때 마침 폭우가 내려 閼川이 범람, 그 북쪽에 살고 있던 김주원이 왕궁에 이를 수 없게 되자 다시금 귀족회의가 열려 김경신을 왕으로 추대했다고 한다. 김경신은 비록 현직 상대등이었으나 당시의 공인된 서열로는 次宰相이었을 뿐이다. 김주원은 태종무열왕의 6세손으로 일찍이 혜공왕 13년(777) 10월에 侍中에 취임하여 혜공왕 16년의 정변 때까지 재직했다. 당시는 상대등 김양상(선덕왕)이 실권을 잡고 있었을 때이므로 그는 반왕파와 행동을 같이 했을 터이다. 어쨌든 김주원을 배제한 김경신의 즉위에 모종의 계략 내지 억지가 작용했을 것이 틀림없다.014) 김주원이 江陵에서 은퇴생활에 들어간 것이라든지, 뒷날 그의 아들 金憲昌이 부친이 왕위에 오르지 못한 것을 이유로 반란을 일으킨 것을 보더라도 이 점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원성왕은 내물왕의 12세손으로 선덕왕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중대 왕실에서 보면 방계혈족이었다. 다만 그의 증조부인 義寬(官)과 조부인 魏文이 중대 초기에 벼슬하면서 진골귀족사회에서 일정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즉 의관은 삼국통일전쟁 기간 중에 장군으로 활약했고 뒤에 그 딸은 신라에 歸服해 온 報德國王 安勝과 혼인했다. 또한 위문은 성덕왕 11년(712) 3월 집사부 中侍에 취임하여 1년 반 가량 재임한 일이 있다.015) 하지만 정작 원성왕 개인의 경력으로는 상대등밖에는 달리 알려진 것이 없다. 즉 그는 혜공왕 16년(780) 4월 伊湌으로서 김양상이 거병할 때 적극 가담하여 큰 공을 세웠고, 김양상이 즉위하면서 곧바로 상대등에 임명되었다.

 즉위 당시 이미 고령에 달했던 원성왕은 비록 음험한 성격이기는 했으나 정치적으로는 노련한 인물이었다. 그는 중대 말기부터 귀족들 사이에서 造塔·造寺 등 佛事활동이 성행한 데 주목, 즉위하자마자 政法典(일명 政官)을 정비하여 불교 교단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인 통제 의지를 내비쳤다.016) 하긴 그는 개인적으로는 불교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정치 이데올로기 면에서는 중대의 군주들과 마찬가지로 유교정치를 지향했다. 그가 재위 4년(788) 봄에 讀書三品科를 실시한 것은 그 현저한 例證이다. 독서삼품과는 國學 학생을 대상으로 하여 유교경전의 해독 수준에 따라 이를 上·中·下 세 등급으로 구분하는 제도였다. 이는 일종 국학의 졸업시험과 같은 성격을 띤 것이었는데,017) 어쩌면 그 시험성적에 따라서 仕官하는 것을 제도화한 조치가 아니었을까고 생각된다.018)≪삼국사기≫에 “前日에는 弓術로써 인물을 뽑더니 이 때에 이르러 개혁했다”고 한 것을 보면 그 때까지는 국학 수료자에 대한 확고한 관리 임용규정이 없었던 듯하다. 뒤에 소성왕 원년(799) 3월에 菁州 居老縣(현 巨濟)을 學生祿邑으로 지정한 것은 국학에 녹읍을 지급한 것으로 이해되며 역시 국학 진흥책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李基東>

010)李基東,<新羅 下代의 王位繼承과 政治過程>(≪歷史學報≫85, 1980 ;≪新羅骨品制社會와 花郞徒≫, 一潮閣, 1984, 147쪽).
011)李基白,<上大等考>(≪歷史學報≫19, 1962 ; 앞의 책, 1974, 99∼100쪽).
012)崔光植,≪고대 한국의 국가와 제사≫(한길사, 1994), 205∼209쪽.
013)李基東,<新羅 下代의 浿江鎭>(≪韓國學報≫4, 1976 ; 앞의 책, 221쪽).
014)李基白, 앞의 책(1974), 119∼120쪽.
015)李基東, 앞의 책, 151쪽.
016)郭丞勳,<新羅 元聖王의 政法典 整備와 그 意義>(≪震檀學報≫80, 1995), 33∼61쪽. 다만 이와는 달리 정법전의 설치를 종래 국가가 직접 불교계에 대해 통제를 가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승려들에 의한 자율적 운영을 인정한 획기적 조치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朴南守,<사원성전과 불사의 조영체계>(≪新羅手工業史≫, 신서원, 1996) 참조.
017)李基白, 앞의 책(1986), 230쪽.
018)木村誠,<統一新羅の官僚制>(≪東ァジァ世界における日本古代史講座≫6, 學生社, 1981), 148∼152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